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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존버헨리 May 21. 2024

맥주 마시려고 한강 러닝 하는 사람

내가 처음 달리기를 시작했을 때 나의 러닝 루틴은 밤에 뛰는 것이었다. 원래 나는 아침형 인간도 아니고, 일찍 출근하는 와이프대신 내가 아이들 등원, 등교를 맡아서 하기 때문에 선택의 여지가 없었다. 아이들 재우고 10시 넘어서 달리기 시작했고, 처음엔 일주일에 한 번, 그리고 두 번 이렇게 차츰 횟수도 늘려 나갔다.


밤에 나가서 뛴다는 것은, 뛰기 전에 술을 마시지 않겠다는 의미이다. 육아로 인해 타의적 집돌이라, 밖에서 술약속은 가뭄에 콩 나듯 어쩌다 한 번 있는 일이지만, 집에서 저녁 먹으며 반주는 얼마든지 마실 수 있다. 사실, 이것도 처음이 힘들지 나중이 되니 횟수가 늘어났다. 특히 더운 여름에는 달리기만 아니면 매일 마실 수도 있을 것 같다. 맥주가 물리면 집에 있는 위스키로 하이볼을 만들어서 반주로 마시기도 한다.


처음에는 고작 일주일에 한두 번을 뛰니, 맥주 한 번 참는 것쯤은 일도 아니었다. 그런데 일주일에 한 번이 두 번이 되고 이틀에 한번 꼴로 뛰게 되니, 매일 저녁 심리적 갈등이 생기기 시작했다. 아 오늘 마셔? 뛰어? 미시고 뛸까? 아직까지 마시고 뛴 적은 없다. 술을 마시고 뛰어도 되는 건지 아닌지 의학적 소견을 찾아보지는 않았지만 왠지 안될 것 같은 느낌이고, 굳이 술 마시고 뛰고 싶은 생각은 들지 않았다.


러닝 후에 술을 마시는 방법이 있기는 하지만, 10시 넘어서 나가서 뛰고 들어와서 샤워하면 12시가 다된 시간인데 굳이 그 시간에 맥주를 마시고 싶은 생각은 딱히 들지 않는다. 술 vs 잠이라면 잠이 압승인 셈이다.


작년 여름즈음에는 집에서부터 한강 쪽으로 좀 더 멀리, 오래 뛰기 시작했다. 물론 와이프가 야근 안 하는 날에만 가능한 일이었다. 그런 날은 아이들을 재울 필요가 없으니 집에서 일찍 나와서 뛰기 시작했다. 뛸 생각이니 저녁은 알아서 적.당.히 먹고 신용카드 한 장을 바지 주머니에 하나 넣고 나가서 뛰었다. 반환점 없이 그냥 뻗은 길을 따라 한강까지 내달리고 한강 편의점에서 맥주를 한 캔 마시고, 버스를 타고 집으로 돌아오는 루트를 만든 것이다. 아, 러닝도 하고 맥주도 마시고.... 얼마나 좋은가.


한강 편의점 캔맥주가 일반 편의점에 비해 종류도 별로 없고 가격도 비싸지만, 그렇다고 맥주를 사들고 뛸 수는 없으니 한강 편의점에서 맥주를 사는 방법 이외엔 다른 방법이 없었다. 그래도 혼자서 러닝 후에 에어팟으로 음악을 들으며, 한강을 바라보며 마시는 맥주 한 캔은 정말 꿀맛이었다. 매번 한 캔 더 마실까 말까를 고민하게 될 정도니 말이다. 큰 캔과 작은 캔 하나가  딱 나에게 적당량이지만 한강 편의점에서는 그런 선택권 따위는 고객에게 주지 않는다. 큰 캔으로 맥주 종류도 보통 2-3개 정도 있을 뿐이다. 안 비싸면 두 캔 사서 한 캔 반을 마시고 버리면 될 텐데, 안 그래도 다른 편의점보다 비싸니 굳이 그렇게까지 마시지는 않았다.


사실 처음에 러닝 직후 맥주를 마시는 것에 대해 조금은 조심스러웠다. 격렬한 유산소 운동을 하고 나서, 바로 알코올을 섭취하는 것이 과연 건강에 괜찮은지 의문이 들었다. 이것저것 찾아봤지만, 딱히 시원하게 마셔라 마시지 마라라는 칼 같은 답은 없었다. 알코올은 사용한 근육의 회복을 느리게 한다는 사실을 발견했을 뿐, <절대 마시지 말 것>이라는 뉘앙스의 아티클은 찾을 수 없었다. 찾고 싶지 않았던 건지도 모르겠지만, 맥주 한 캔 정도야..라고 생각하며 러닝 후 맥주를 마시기 시작했다. 하루키 책에서도 러닝 후 맥주를 마신다는 얘기를 본 것 같기도 하고 말이다.


겨울에도 한강을 가끔 뛰었지만, 겨울에는 한강에서 맥주를 마실 수가 없었다. 너무 추우니까 당연한 소리다. 게다가 겨울에 러닝 후 땀이 식으면 더욱 춥고, 감기에 걸리기 십상이다. 이제 다시 여름이다. 한강으로 뛰어가서 맥주 한 잔 마시기 딱 좋은 그런 계절이다.


한강에 가지 않아도 러닝 후 동네 편의점 앞에서 맥주를 마실 수도 있고, 집에 와서 맥주를 마실 수도 있지만 한강 맥주가 아니라면 굳이 러닝 후 맥주를 마시고 싶은 생각은 들지 않는다. 한강이 있고 없고의 차이가 아니다. 낭만이 있고 없고의 차이 아니겠는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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