러닝을 하면 할수록 느끼는 건데, 스마트폰, 러닝앱, 이어폰, 스마트워치 없던 시절에는 무슨 재미로 러닝을 했을까? 그래서 그때는 러닝붐이 없었던 걸까?
나는 러닝 할 때 사용하는 전자기기들이 세 가지이다. 아마도 대부분 1~3개 정도 사용하지 않을까 싶다. 스마트폰+무선이어폰+스마트워치 순으로 1개에서 3개까지 사용하는 사람들이 대부분일 것이다. 실시간으로 나의 심박수, 페이스를 체크할 수 있고, 러닝이 지루하지 않게 나만을 위한 맞춤 BGM까지 들을 수 있어서 너무 편리하다. 옛날 러너들은 초시계를 들고 머릿속으로 노래를 흥얼거리며 뛰었을까?
스마트 기기들이 있어서 러닝에 재미를 붙인 건 사실인데, 러닝을 하다 보니, 러닝 때문에 장비 욕심이 생기기도 한다.
내가 처음 21km를 달린 날이었다. 반환점 없이 노빠꾸로 양재천에서, 탄천, 탄천에서 한강까지 뛰었다. 잠수교를 지나 이촌한강공원까지 뛰었는데, 반포 쪽에서 에어팟 한쪽이 배터리가 방전되었고 잠수교를 건너고 조금 지나니 나머지 한쪽도 배터리가 방전되었다. 아, 음악이 없는 러닝이란 100m가 1km처럼 느껴진다. 안 그래도 후반부라 힘이 딸려서 기진맥진인데 날 응원해 주던 음악마저 없으니, 더더욱 맥이 빠졌다. 급기야 21km 지점에 도착하니 아이폰 배터리마저 방전... 집에 가는 방법도 몰라서 버스노선과 지도를 봐야 하는데 이게 무슨 일이람....
그때 처음으로 편의점에서 일회용 스마트폰 배터리 충전지를 샀다. 사실 그런 게 있는 줄도 몰랐다. 평상시에는 주로 자동차를 타고 다니고, 대중교통을 이용할 때는 보조배터리를 가지고 다니니 딱히 이런 걸 살 이유도 없었다. 게다가 그동안 주로 뛰었던 10km 언저리의 러닝에서는 에어팟과 아이폰이 방전되기 전에 러닝이 끝났으므로, 이런 일이 일어날 거라고는 상상도 못 했다.
참고로 말하자면, 나의 스마트폰은 아이폰 11프로로 출시된 지 햇수로 5년째가 된 폰이다. 배터리 성능이 떨어질대로 떨어졌다는 얘기... 사실 사용하는데 아무 문제없고 고장도 없으므로, 러닝만 아니면 배터리를 갈 필요가 없는데, 5년 된 스마트폰에 돈을 들여 배터리를 바꾸는 게 맞는 건지, 차라리 그 돈을 보태서 새 폰을 사는 게 맞는 건지 잘 판단이 서질 않는다.
지난겨울에는 21km를 뛰는데, 19km 언저리에서 아이폰 배터리가 방전되었다.
순간 드는 생각이
<아, 러닝 앱 내 기록 어쩔?????>
아마 러너라면 누구나 이 생각이 제일 먼저 들 것이고, 모두 공감할 것이다. 러닝 도중에, 러닝 앱 기록 도중에 스마트폰 배터리가 방전된 경우는 처음이었다. 게다가 평소 잘 뛰지 않던 21km를 웅장한 마음으로 뛰고 있었는데 이게 무슨 일이람... 다행히 사무실(그 날은 퇴근 전 사무실 근처에서 러닝을 했다.)에 10분 정도 걸어와서 아이폰을 바로 충전시켰다. 기록이 살아 있었을까?
다행히 기록은 살아 있었다. 내가 사용한 나이키 러닝클럽 앱(NRC) 기준으로 말이다.
거리, 페이스 등의 기록은 스마트폰이 꺼지기 직전까지의 기록으로 남아 있었고, 시간은 흐르고 계속 흘러 스마트폰 켰을 때의 시간으로 기록이 되었다. 시간 때문에 약간의 아쉬움이 남았지만, 기록이 사라지지 않고 남아 있었던 것만으로 참 다행이란 생각이 들었다.(내 기록은 소중하니까..)
인터넷을 좀 검색해 보니, 스마트폰 배터리(아마도 에어팟도)가 겨울에는 더 빨리 닳는 경향이 있다고 한다. 아마도 배터리 구조, 원리와 온도와의 상관관계가 있는 것 같다. 다행히 21km라는 장거리는 자주 뛰는 일도 아니라 그 후에는 보통 충전을 100% 한 후에 장거리 러닝을 하고 있으며, 봄이 오고 여름이 오니 배터리 성능이 다시 조금 더 좋아진 것 같기도 하다.
에어팟도 그동안 에어팟 2를 쓰고 있었는데, 이건 도저히 못 참겠다 싶어 에어팟 프로 2로 거금을 들여서 바꿨다. 그냥 바꿨으면 훈훈했을 얘기지만, 이것도 돈 아낀다도 중고거래로 에어팟2로 샀다가 몇 달 못 가고 에어팟 프로 2를 샀다. 앞서 말했듯이 평소에 자동차를 타고 다니기 때문에 사실 러닝만 아니면 에어팟도 그다지 많이 사용하질 않는다. 많은 러너분들이 사용한다는 골전도 이어폰을 살까 하다가, 골전도 이어폰은 러닝 할 때 아니면 쓸 일이 없을 것 같아서, 범용으로 생각해서 에어팟으로 결정을 했다. 가격차이가 많이 났으면 골전도 이어폰을 러닝용으로 샀을 텐데, 검색을 해보니 일반적으로 많이 사용하는 모 골전도 이어폰의 가격은 거의 에어팟의 2/3 가격이었다. 게다가 음질도 별로니(개취입니다), 차라리 나는 에어팟을 사는 게 낫다는 결론을 내렸다.
지금은 에어팟 프로 2로 음악을 들으며, 여전히 아이폰 11프로를 러닝 벨트에 넣고 뛰고 있다. 겨울이 지나 배터리가 그나마 오래가서 일단 사용 중이며, 배터리 교체를 할지 말지 여전히 고민 중이다.
그리고 마지막으로, 스마트 워치 얘기를 하자면 나는 애플워치7을 사용 중이다. 이것도 벌써 3년이 지났는데 언제부턴가 퇴근하고 집에 가면 배터리가 빨간불이 들어오는 날이 많아졌다. 그래서 밤러닝을 하기 전에 꼭 20-30분씩 충전을 해두고 나간다. 이 정도 수고야 할 수 있는데, 문제는 충전해 놓고 깜박하고 그냥 나가는 경우가 있다는 사실....
스마트 시대의 러닝이 좋기도 하지만, 한 편으로는 이렇게 돈이 많이 든다.
러닝이 돈 안 드는 운동이라고 누가 함부로 말하는가?
러닝화, 카본화만 사야 하는 게 아니다.
스마트폰, 무선이어폰, 스마트워치도 주기적으로 관리해주어야 한다.
이러다가 다들 가민이나 코로스 사는 거겠지?
그런 거겠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