우리 집 막내 녀석과 단 둘이 여행을 다녀왔다. 나의 항공사 마일리지 중 4만 마일 정도가 올해 12월 31일에 소멸된다고 문자가 몇 번이나 와서, 가까운 일본으로 여행을 다녀왔다. 우리 집에서 유일하게 비행기도 못 타본 녀석이 막내라, 막내 녀석까지 보너스 항공권을 마일리지로 구매해서 3박 4일로 가게 되었다. 물론 우리 식구 5명이 모두 함께 여행을 갔으면 더 즐거웠겠지만, 먹고살기 힘든 우리 가족에게 5명이 해외여행을 가는 건 너무나 사치스러운 일이다. 그래도 첫째, 둘째 녀석은 올해 봄에 외할머니, 외할아버지랑 동남아시아 여행을 다녀왔기 때문에 막내만 가게 된 이번 여행에 대해 큰 불만도, 질투도 없었다. 나름 아이들이 기특하기도 하고, 상황을 이해해 줘서 고맙다는 생각도 들었다.
여행 준비를 하면서 든 생각은 역시 <아, 여행 가서 러닝 할 수 있을까?>였다. 사실 마일리지 쓰려고 가는 여행이었고, 막내 녀석 디즈니랜드 하루 구경, 내가 가고 싶은 미술관 한 번 가는 것 말고는 스케줄은 따로 없었다. 아이가 아직 너무 어려서 무리하게 다니고 싶은 생각도 없었고, 그냥 쉬엄쉬엄 길거리 돌아다니는 것 자체만으로도 아이에게는 좋은 경험이 될 것이라고 생각했기 때문에 시간적으로는 러닝을 할 수 있을 것 같았다.
와이프는 나한테 <설마, 아이 혼자 호텔방에 놔두고 러닝 할 건 아니지?>라고 물어봤다. 순간 뜨끔했다.
물론 나도 그럴 생각은 없었지만, 혼자 방에 놔두고 잠깐 뛰고 올까도 생각 안 해본 건 아니었기 때문이다. 아이랑 단 둘이 여행이지만 러닝은 하고 싶고... 이를 어찌해야 할까?
내가 생각해 낸 러닝을 할 수 있는 방법은 두 가지였다. 첫 번째 방법은 호텔 프런트 데스크에 아이를 잠깐 봐달라고 부탁하는 것이다. 이건 호텔 가봐야 상황판단이 될 것 같았지만, 좀 고객 프렌들리 한 호텔분위기에 그리 바쁘지 않은 시간이라면 가능할 것 같기도 했다. 내가 예약한 숙소는 그렇게 규모가 크거나 한 호텔은 아니었으므로 융통성 있게 30분 정도는 봐줄 수 있지 않을까 싶었다.
그리고 두 번째 방법은 숙소 근처 작은 공원 혹은 운동장 트랙을 찾아서 뛰는 것이었다. 그런 곳에서는 제한된 공간을 뺑글뺑글 돌게 되니 뛰면서 내 시선 안에 아이를 계속 둘 수 있으니 마음껏 뛸 수 있을 것 같았다. 물론 여행 와서 좀 더 넓은 곳에서 뛰면 좋겠지만, 그래도 이 상황에서 이 정도만 돼도 만족할 수 있을 것 같았다.
결국, 캐리어에 러닝복장을 챙기고 백팩에 러닝화를 고이 모셔서 여행을 갔지만, 다시 그대로 집으로 돌아왔다. 호텔 프런트 분위기가 그리 프렌들리 하지도 않았고, 무척 바빠 보였다. 게다가 호텔 근처는 편의점 말고는 제대로 둘러보지도 못했다. 아침에 일어나면 호텔 조식시간에 맞춰서 밥 먹으러 가기 바빴고, 얼른 지하철을 타고 어디론가 구경을 가게 되어서, 주변에 공원 트랙이 있는지 없는지 끝까지 체크를 못했다. 사실 주변이 그런 곳이 있었다 한들, 하루 평균 1만 5 천보를 걸은 이번 여행에서 뛸 에너지가 없어서 못 뛰었을 것이다.
여행을 안 다녀봐서 내가 너무 나이브하게 생각했던 게 아닌가 싶다. 물론 아이라는 장애물이 있었기는 하지만, 어찌 보면 나의 의지력 문제였을 수도 있다. 그렇게 여행지에서의 러닝은 나에게 허락되지 않았고, 4일 동안 러닝을 하지 못해서, 이번 달 러닝 마일리지에 빨간불이 들어왔다. 4일 동안 못 뛰어서 보복심리(?)로, 여행 다녀오자마자 자고 일어나서 러닝을 했다.
아이가 아니었어도, 여행 가서 러닝을 한다는 건 참 쉬운 일은 아닐 것이다. 보통 여행 가면 일정도 빡빡하고 밤에 술도 한 잔 마셔야 하니 말이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여행 가서 러닝 한 후기들을 온라인에서 자주 접하는데, 정말 의지력이 남다른 분들임이 분명해 보인다.
한국의 추운 날씨에 비하면, 도쿄의 날씨는 정말 러닝 하기에 따뜻하고 좋았는데 너무 아쉽다.
여행 가서 러닝 한 후기 말고, 이렇게 여행 가서 러닝 못한 후기도 하나쯤 있어도 되지 않을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