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러너의 생일 선물

by 존버헨리

생일 선물을 고르는 방법에는 두 가지가 있다. 내가 사주고 싶은 것을 골라서 서프라이즈로 선물을 해주는 방법과, 상대방에게 원하는 걸 물어보고 원하는 걸 사주는 방법 이렇게 두 가지로 나눌 수 있다.


나는 보통 서프라이즈로 선물하는 걸 좋아하는데, 와이프는 반대로 나에게 무얼 갖고 싶냐고 묻는 편이다. 얼마 전, 내 생일에도 와이프는 역시 나에게 갖고 싶은 게 있냐고 물었다. 사실 러닝화 살 때가 되긴 했는데, 러닝화보다 더 필요한 것이 있어서 <나이키 에어포스1>이 갖고 싶다고 말했다. 주로 비가 오거나 눈이 올때 장화 대용으로 내가 즐겨 신는 신발인데, 원래 신던 에어포스1은 바닥이 갈라져서 올해 초에 버렸다. 오래 신으면 이상하게 바닥이 쫙 갈라지는 운동화들이 있다. 안 그래도 겨울이고, 눈도 오는 터라 당장 필요하다 싶어서 에어포스1을 사달라고 말한 것이다.


와이프가 온라인으로 주문을 했는지, 집에 택배 상자가 왔다. 그런데 나이키 택배 상자가 두 개가 왔네?

하나는 역시나 에어포스1이었고, 다른 하나는 러닝용 패딩 재킷이었다. 와이프는 내가 갖고 싶은 선물과 서프라이즈 선물까지 두 가지나 고른 것이다. 생각지도 못한 선물을 받으니 황송할 따름이었다. 사실 고맙긴 한데 다른 한편으로는 아 이 비싼 걸 사면 가계 지출이...... 란 생각도 좀 들었다.


입어보니, 사이즈가 좀 작은 듯하지만 타이트하게 잘 맞았다. 겨울철 러닝에 보온이 잘 되려면 아무래도 타이트한 편이 나을 듯싶어서 사이즈 교환 없이 그냥 입기로 했다. 그동안 나는 러닝용 패딩 재킷은 없었고, 긴팔셔츠에 바람막이, 그리고 그 위에 패딩조끼를 입고 겨울 러닝을 했었다. 사실 패딩조끼도 러닝용은 아니었지만 딱히 문제 될 건 없었다.


장인장모님에게도 선물을 돈으로 받았다. 이 나이에 장인장모님에게 선물 받는 게 좀 낯부끄럽지만, 어쨌든 감사히 받았고, 아무래도 무얼 사겠다고 말씀드리는 게 예의인 거 같아서, 안 그래도 러닝화를 사려고 했었다고 감사하다고 말씀드렸다. 안 그래도 에어포스1과 러닝화 사이에서 고민했었는데, 결국 둘 다 얻게 된 셈이다.


처제 부부는 나에게 러닝 양말, 비니 그리고 스누드를 선물했다. 스누드는 넥워머 같은 건데, 입까지 가릴 수 있는 그런 제품이다. 사실 처제 부부는 외국에 살고 있는데, 집안에 일이 있어서 잠시 한국에 들어와 있었던 상황이다. 마침 내 생일이 끼어 있었고, 그즈음에 가족 모임도 있어서, 선물까지 받게 되었다. 헝그리 러너인 나는 역시 비니나 모자 같은 것도 없었고 스누드도 없었다.


사실 뛰다 보면 머리는 추운지 잘 모르겠어서 모자를 살 생각은 해 본 적이 없었다. 그리고 그동안 입던 패딩조끼가 나름 목이 얼굴 쪽으로 올라오는 스타일이라 넥워머도 살 필요성을 못 느끼고 있었다. 사실 휴대폰도 스마트 워치도 없어도 사는데 지장은 없지만, 있다가 없으면 불편하지 않은가. 내가 이런 장비들을 써보지 않아서 그렇지 한 번 쓰기 시작하면, 겨울철 러닝에 필수품이라고 생각할 수도 있을 것 같다.


안 그래도 이번 달에 여행도 다녀오고, 연말이라 이것저것 바빠서 러닝을 많이 못했는데, 이렇게 장비빨로 동기 부여가 된다. 패딩조끼는 벌써 입고 몇 번 뛰었는데, 진짜 너무 가볍고 따뜻하다. 본의 아니게, 러닝 용품 부자가 되었다. 사실 생일 선물로 사달라고 한 건 에어포스1 하나뿐이었고, 러닝용품의 '러'자도 꺼내지 않았는데 이렇게나 많은 러닝 용품이 한꺼번에 생겨버린 것이다.


생일이 좋긴 좋구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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