육아를 하는 유부남, 유부녀 러너들은 참 시간이 없다.
시간이 없어서 선택한 운동이 러닝인데, 그 러닝 할 시간조차 확보하기가 어렵다니 참 아이러니하다.
나도 지금까지는 약간의 의지와 노력으로 애들 재우고 밤 10시 정도에 러닝을 했는데, 요즘은 아이들 자는 시간이 점점 늦어지니 러닝 하러 나가는 시간도 계속 늦어진다. 10시 30분만 돼도 대문 박차고 나가는데 10시 50분, 11시 넘어가면 <아, 나갈까 말까> 고민에 빠지게 된다. 아 언제 나가서 언제 뛰고 언제 자냐.... 5km 30분만 뛰어도, 준비시간과 샤워시간까지 합치면 1시간이다. 그러니 장거리는 2시간은 족히 필요하다. 11시에 나가면 새벽 1시에나 잠들 수 있다.
어디 시간뿐인가? 요즘 날씨가 풀려서, 아이들과 저녁 먹고 나가서 공놀이를 가끔 하고 있다. 아이들이 아직 어려서 축구라고 할 수는 없지만, 그래도 공놀이를 하고 나면, 밤에 뛸 힘이 없다. 열심히 러닝 해서 살도 빠지고 체력도 좋아진 줄 알았는데 어쩔 수 없는 나이 탓인건지…
그래서, 차라리 아침에 뛰면 어떨까 요새 고민을 좀 하고 있다. 고민만 한 게 아니라, 실제로 아침에 몇 번 뛰어 봤다. 한평생을 올빼미로 살아온 내가 아침에 일찍 일어날 수 있을까? 새벽 6시에 알람을 하나, 6시 10분에 알람을 또 하나 맞추고 잤다. 난 일어날 수 있을 것인가?
아침에 러닝을 한 4번 정도 했는데 승률은 5할이다. 두 번시도하면 한 번은 실패하고 한 번은 성공했다. 원래 매일 뛰는 루틴이었으면 오히려 더 수월했을까? 나는 이삼일에 한 번 뛰는 러너다 보니 모닝런 루틴 만들기가 참 쉽지 않았다. 안 뛰는 날도 새벽 6시에 일어나야 하나..
그리고, 6시에 일어나서 준비해서 뛰다 보니, 몸이 밤보다 좀 많이 뻣뻣하다. 자고 일어나서 온몸의 근육들이 경직되어 있는 느낌이다. 한 달 동안 깁스를 하고 푼 느낌처럼, 팔근육도 다리 근육도 뭔가 좀 어색한 느낌이 있다. 그리고 출근 시간과 출근 준비 시간을 계속 머릿속으로 생각하면서 뛰게 되니까 뭔가 마음이 조급해진다. 뛰면서도 자꾸 시계를 보게 되고, 뛰면서도 출근 생각에 러닝에 집중하기도 힘들고 러닝을 즐기기도 힘들었다.
이론적으로는 그럼 더 일찍 일어나서 뛰면 되지만, 더 일찍 일어나고 싶은 생각이 나는 전혀 없다. 굳이 왜?
차라리 그럴 바에는 밤에 뛰는 게 오히려 나의 스타일에 맞는 것 같다. 그래도 아침에 몇 번 뛰어보니 깨달은 바가 하나 있다. 밤에 <뛸까 말까> 고민하고 대문 열고 나가는 일은 새벽에 이불 박차고 일어나는 일에 비하면 정말 식은 죽 먹기라는 거다. 새벽에 알람이 울리고, 눈도 뜨지 못한 채 머릿속으로 <일어날까 말까> 백만 번 고민하고 이불을 박차고 일어나는 일은 밤에 대문을 박차고 나가는 일보다 몇 십배, 몇백 배의 의지가 필요한 일이었다.
모닝런을 하지 않았다면, 밤러닝이 이렇게 쉬운 일인지 아마 몰랐을 것이다. 그렇다고 내가 모닝런을 포기한 것인가? 그건 또 아니다. 당분간 밤러닝과 아침러닝을 적당히 번갈아서 할 예정이다. 새벽에 일어나는 일에 실패를 하고 나니 이상한 오기가 생긴다. 아, 이것도 못하다니, 억울하기도 하고 이게 뭐라고 이걸 못 일어나나 하는 생각도 든다. 아침에 시간에 쫓겨서 5-7km 정도만 뛰었는데, 뛰고 나서, 출근해 보니 생각보다 피곤하지는 않았다. 아침에 뛴 날이랑 뛰지 않은 날의 차이를 크게 느끼지 못할 정도였다.
매일매일 뛰는 루틴을 가진 분이나, 단거리 위주로 뛰시는 분들은 모닝런 루틴이 아마 잘 맞을 것 같다. 그리고 밤에 뛰러 나갈까 말까 매번 고민하시는 러너분들! 모닝런 꼭 뛰어 보시기 바란다. 밤러닝이 얼마나 쉬운지 바로 깨달음을 얻을 수 있을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