내 인생의 30년 동안, 아내의 밥상은 공기와 같았다. 아침을 깨우는 구수한 밥 냄새, 허기진 저녁을 채워주는 따뜻한 국물. 그것은 너무나 당연하고 일상적인 풍경이어서, 나는 그 노동의 무게를 감히 짐작조차 하지 못했다. 아내는 묵묵히 그 30년의 세월을 하루 세끼, 1년에 천 번 가까운 밥상 차림으로 채워냈다. 그리고 이제, 그 오랜 봉사의 시간이 잠시 멈추고, 내가 그 바통을 이어받기로 결심했다.
"이제부터 삼시 세 끼는 내가 책임질게.”
어쩌면 너무 늦은 다짐이었다. 아내의 몸은 지난 몇 년간 크고 작은 고난을 겪어왔다. 5년 전 진단받은 왼쪽 귀의 난청은 그녀를 세상의 소리로부터 조금씩 멀어지게 했다. 3년 전 화장실에서 넘어져 다친 다리 골절과 인대 파열은 그녀의 활동 반경을 크게 좁혔고, 그리고 작년여름, 우리 부부의 삶에 드리운 가장 짙은 그림자, 유방암 진단이었다. 수술과 치료로 지금 아내는 6개월의 삶을 이어가는 과정을 견디고 있다.
갑작스러운 난청과 함께 동시에 찾아온 메니에르병으로 세상의 소리로부터 조금씩 멀어지는 시기, 나는 문득 깨달았다. 지난 30년간 나는 단 한 번도 '밥 걱정'을 해본 적이 없다는 사실을. 나의 하루는 아내가 차려준 식사로 시작하고 끝났지만, 아내의 하루는 '무엇을 차릴까'라는 무거운 질문과 함께 시작되었을 것이다. 냉장고에 재료가 가득하든 비어있든, 아내는 항상 시간에 맞춰 밥상을 준비해 내는 마법사였다.
이제 그 마법이 멈춘 자리에, 빈자리를 내가 메꿔야 한다는 다짐을 했다. 아내에게는 몸보다도 마음의 안정이 절실했다. 삶의 균형이 송두리째 무너진 시점에서, 나의 일은 그 무엇보다 뒤로 밀릴 수밖에 없었다. 돈을 버는 일이나 사회적 성취 따위는 더 이상 중요하지 않았다. 그저 흔들리는 그녀의 곁을 굳건히 지키는 것이, 나에게 남겨진 유일하고도 선택의 여지가 없는 당연한 결정이었다.
먹을 때까지만 산다. 하지만, 먹거리에 대한 소중함을 생각해 본 적이 없다. 그저 먹는다는 것은 당연한 것이었다. 당장 내일의 삼시 세끼가 걱정이다. 아내의 몸과 마음을 치유하기 위해 입맛을 달래야 한다. 단순히 배를 채우는 음식이 아니라, 심신을 달래는 '약(藥) 밥'을 차려야 하는 것이다.
처음 부엌에 들어섰을 때의 막막함은 40년 전 내가 사회생활을 처음 시작했을 때보다 더 컸다. 지난 30년 집안의 일은 아내의 일이라고 당연시해 왔고, 오랫동안 정리된 아내의 스타일이 있기에 모든 일을 마음에 들게 할 수 있을지 막막했다. 왜 아내가 요리할 때 옆에서 한 번이라도 더 거들지 않았을까, 후회감이 파도처럼 밀려왔다.
하지만 좌절할 시간은 없었다. 나는 돈을 벌어야 하는 가장이자, 집 안에서는 아내의 밥을 챙기는 셰프이자, 집안일을 챙기는 살림꾼이 되어 가고 있었다. 프리랜서 강연자인 나에게는 신기하게도 이런 이중생활이 새로운 활력을 주고 있다.
하루 강의를 마치고 집에 들어오는 길, 나는 늘 발길이 바쁘다. 마트나 재래시장을 들러 신선한 채소를 고르고, 아내가 좋아할 만한 재료를 세심히 확인하고, 비용까지도 꼼꼼히 챙겨야 한다. 이전에는 아내가 메모해 준 목록대로 물건을 '줍는' 것에 불과했지만, 요즘의 시장보기는 일종의 창조적인 즐거움이랄까. 어떤 재료가 신선할까 가격은 어떤지, 주꾸미를 먹고 싶다고 했는데 고민하며 장바구니를 채우는 순간순간이 즐겁다. 행복하고 감사하다. 이는 아내를 생각하는 귀한 시간이기 때문이다.
아내가 돌려둔 세탁기에서 소리가 나면 반사적으로 일어나 빨래를 꺼내고, 기계처럼 아내와 함께 빨래를 널고, 잘 마른빨래를 개어 각자의 서랍에 정리하는 소소한 집안일 역시 이제는 아내와 함께 하는 완벽한 일상이 되었다. 빳빳하게 마른 수건을 반듯하게 접어 갤 때, 섬유유연제 냄새가 밴 아내의 옷을 조심스레 갤 때, 나는 비로소 지난 30년간 아내가 이 집안을 얼마나 섬세한 애정으로 돌보았는지 깨닫는다. 이런 작은 가사 노동 하나하나가 이 집의 평화를 지탱해 왔던 것이다. 이 일들은 결코 귀찮거나 버거운 짐이 아니다. 오히려 집이라는 공간에 나의 애정과 돌봄의 흔적을 남기는 행위이며, 이를 통해 내가 여전히 아내와 가정을 굳건히 지키고 있다는 무언의 선언이다.
부엌에서의 시간도 마찬가지다. 밥솥에서 김이 모락모락 피어오르고 찌개 냄새가 온 집안에 퍼질 때면 가슴이 벅차오른다. 특히 아내가 "여보, 오늘 국물 시원하다", "이 반찬은 오랜만에 먹네"라고 말하며 밥 한 숟가락을 더 뜰 때의 기쁨은, 강의 중간 큰 박수를 받을 때보다 더 큰 희열을 느낀다.
이전에는 밥을 먹는 행위가 당연한 일상이었다면, 이제는 삼시 세끼를 준비하는 일 자체가 아내에 대한 나의 가장 확실한 사랑의 표현이자, 우리 가족이 살아 있다는 증거가 되었다. 돈을 벌어 가족을 부양하는 것만큼, 따뜻하고 정갈한 밥상을 차리고 집안을 정돈하여 아내의 치유를 돕는 일은 나의 새로운 사명이 되었다. 힘든 치료를 견디는 아내를 보며 무력감을 느끼던 나에게, 이 밥상 차리기와 살림은 내가 능동적으로 할 수 있는 유일하고 가장 중요한 '치료 행위'가 되었다.
나는 '내가 살고 가족이 살기 위해' 이 일을 결심했다. 아내가 건강을 되찾는 것이 곧 내가 사는 길이며, 내가 아내의 밥상과 살림을 책임지는 것이 우리의 남은 삶을 지탱하는 일이다. 아내가 보기에 어설퍼 보일 수도 있다. 하지만 나는 매일 아침, 점심, 저녁, 밥상 위에 사랑과 정성과 에너지를 담아 올린다.
아내의 몸과 마음의 치유와 지난 30년 아내의 밥상에 대한 고마움을 표현하기 위해 새로운 30년의 밥상을 차리기로 결심한 순간, 부엌과 살림은 더 이상 낯선 공간이 아니었다. 지난 세월 내가 당연하게 받아왔던 아내의 헌신처럼, 이제는 내가 아내에게 주는 가장 따뜻하고 확실한 위로가 될 것이다.
나는 오늘도 서툰 요리를 시작한다. 아내를 위한, 그리고 우리 가족의 건강하고 따뜻한 미래를 위한 30년의 새로운 밥상이 벌써 만 5년이 되어간다. 이 밥상은 단순한 식사가 아닌, 우리의 희망이자 사랑의 증거가 될 것이다.
요즘은 아내가 “나는 전생에 나라를 구했나 ‘라는 말을 자주 한다. 나라를 구했지.
오늘도 외출 나간 아내가 돌아 올 시간에 맞춰 가스렌즈 위에 사랑의 불꽃을 피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