살아있는 움직임, 발효의 미학

by 허훈

발효와 부패. 두 단어는 너무나 비슷하게 들리지만, 그 결과는 극과 극이다. 아니다 같다. 언뜻 보면 둘 다 무언가 변질되는 과정 같지만, 그 내면의 에너지는 완전히 다르다. 발효는 긍정적인 변화를 이끌어 내고, 부패는 한없이 머무르게 하는 정체를 의미한다. 우리의 삶 역시 이 두 갈래 길에서 끊임없이 시험받는다.


인체를 보라. 먹고 싸지 않으면 똥으로 가득 찬다. 이는 생물학적 진리이며, 정신적인 진리이기도 하다. 새로운 지식을 습득하고(먹고), 낡은 생각과 고집을 버리지 않으면(싸고), 우리의 정신은 소화되지 않은 찌꺼기, 즉 고독한 '꼰대'가 된다. 지식 창고에 과거의 정보만 쌓아두고 새로운 것을 탐구하지 않는다면, 그 내면은 썩어가는 부패와 다를 바 없다.


과거 지식에 머무르지 않고 끊임없이 배우고 탐구하는 사람의 눈에는 세상이 달리 보인다. 어제의 지식이 오늘의 깨달음과 만나 새로운 의미를 만들어 낸다. 이러한 성장의 순환은 마치 치즈나 김치가 익어가듯, 세상을 더 깊이 이해하고 사랑하게 만드는 발효의 과정이다. 발효는 변화를 통해 가치를 창출한다.


반면, 과거 지식에 갇혀 '내가 옳다'는 아집만 붙들고 변화를 거부하면, 세상의 흐름과 적응하지 못하는 고독한 존재가 된다. 이는 부패다. 부패는 정체에서 오며, 결국 주변과의 단절, 즉 고립이라는 죽음으로 이끈다.

발효는 협력과 공존의 상징이기도 하다. 서로 지혜를 모아 더 나은 결과를 만들면 발효다. 그러나 자기주장만 내세우며 갈등이 심화되어 싸우면 부패다. 발효균들이 복잡하게 얽혀 깊은 맛을 내듯, 인간 사회도 서로 다른 의견들이 조화롭게 섞여야 건강하게 진보한다. 가장 중요한 차이는 움직임에 있다.


발효는 살아있다. 지금 이 순간도 멈춤이 없다. 미생물들이 쉼 없이 활동하듯, 발효하는 정신은 늘 질문하고, 도전하고, 시도한다. 그 에너지는 살아있는 역동성이다.


부패의 결과는 죽음이다. 어느 순간 멈춰버려 움직임이 없다. 썩어가는 것은 더 이상 미래를 향한 에너지를 가지지 못한다.


시간의 흐름이 멈춤이 없듯, 자아도, 자연도, 사회도, 우주도 멈춤이 없다. 지금도 세상은 팽창하고 변화하고 있다. 살아 있는 것은 움직이고, 죽은 것은 움직이지 않는다. 이 단순한 명제가 삶의 모든 현상을 설명한다.

살아 있는 것은 현재이고, 죽은 것은 과거의 흔적이다. 우리가 '성인'이라 부르는 역사 속 위인들이 아무리 훌륭해도, 그들은 이제 움직이지 않는 과거형이다. 그들의 지혜는 현재를 사는 우리에게 영감을 주지만, 그들 스스로는 이미 멈춰버린 기록이다.


살아 숨 쉬는 너와 나는 현재형이다. 우리는 실수하고, 고민하고, 또다시 몸을 움직여 무엇인가를 만들고 깨트린다. 이 역동성이 곧 우리의 존재 증명이다. 살아 움직이는 것은 발효요. 움직이지 않는 것은 부패다. 즉 죽은 것이다.


우리는 지금, 과거의 기록인 '역사'라는 거대한 토대 위에 서 있다. 우리가 딛고 선 이 역사는 부패하지 않고 끊임없이 발효되어 온 결과다. 이제, 역사 위에 서 있는 너와 나는 선택해야 한다. 낡은 지식과 고집에 갇혀 부패할 것인가, 아니면 끊임없이 배우고 사랑하며 시대를 발효시켜 나갈 것인가.


멈춤은 없다. 움직이는 현재만이 우리를 발효시킨다. 살아있다는 것은 곧 발효하고 있다는 증거다. 우리는 죽어 멈춘 과거가 아니라, 살아 움직이는 현재의 발효균이 되어야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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