저는 7년 차 AE입니다.
너는 도대체 무슨 일 하니? 기자 비슷한 거 한다고 하지 않았어?
오랜만에 걸려온 친구가 대화 중 나에게 건넨 말이다. 내가 하는 일은 ‘홍보 대행사 AE’이자 ‘디지털 마케터’다. 업계를 잘 모르는 사람들은 AE가 무슨 일을 하는지 잘 모르는 경우가 많다. 그래서 오늘은 AE라는 직무에 대해 소개해보려고 한다.
아 이것도 제 일인가요?
국내 업계에서는 홍보/마케팅 직종에서 근무하는 기획자를 AE라고 부른다. AE(Account Executive)는 은행 계좌를 관리해주는 직원을 부르던 말에서 유래했다. 어원처럼 AE는 고객사가 의뢰한 홍보 및 마케팅 활동 전반의 다양한 업무를 수행한다.
여기서 주목할 건 다양한 업무다. AE는 '이것도 나의 일인가?' 싶을 정도로 다양한 업무를 소화한다. 기획자인 AE가 다양한 범위의 업무를 처리할 수밖에 없는 이유는 다음과 같다.
첫째는 마케팅 에이전시에 업무를 위탁해준 고객사가 요청한 업무의 범위가 매우 넓기 때문이다. AE는 요청받은 마케팅 업무 중 소셜미디어 채널 관리, 디지털 배너 광고 관리(DA), 검색 광고 관리(SA), 콘텐츠 기획, 이벤트 당첨자 발표, 상품 배송, 제세공과금 처리, 견적서 작성, 기획서, 보고서 작성 등 영상이나 디자인 콘텐츠 제작 업무를 제외한 프로젝트 운영에 필요한 전반의 업무를 모두 수행한다. 쉽게 말해면 프로젝트에서 필요한 업무 중 제작 업무를 제외한 나머지 모든 업무가 AE의 몫이다.
둘째는 광고 에이전시의 수익구조 때문이다. 에이전시 수익의 대부분은 고객사의 의뢰를 통해 창출된다. 예산 규모가 큰 마케팅 과업도 있지만, 마케팅 과업 자체가 수익성이 높지 않기 때문에 (이 부분은 별도의 회차를 통해 설명할 계획이다) 에이전시는 현재 가지고 있는 프로젝트를 운영하면서 새로운 프로젝트 수주를 추진한다.
새로운 프로젝트를 수주는 비딩 시스템을 거쳐 결정된다. 비딩 시스템은 고객사가 몇몇 마케팅 에이전시에 과업에 대한 마케팅 제안서를 요청(이 과정을 Invitation이라고 부른다) 후 경쟁 PT를 통해 파트너사를 선정하는 시스템이다.
이런 수익 구조 때문에 AE은 프로젝트 운영과 동시에 신규 프로젝트 수주에 나선다. 경쟁에서 이겨야 하기 때문에 신규 프로젝트 수주 업무(보통 제안 업무라고 부른다)를 병행해야 하는 시즌에는 업무량이 폭발적으로 증가한다.
프로젝트 수주 이후가 더 문제다. 하나의 프로젝트가 높은 수익률을 올리기 어렵기 때문에 한 AE가 여러 가지 프로젝트를 동시에 운영해야 해 업무량이 과중되는 경우도 자주 발생한다.
이렇게 다양한 업무를 동시다발적으로 진행해야 하는 AE에게는 다음과 같은 덕목이 요구된다.
이게 다 가능한 사람이 있다고요? AE에게 필요한(있으면 좋은) 능력들
첫 번째는 새로운 업무에 빠르게 적응하는 적응력이. 기업 내부에서 사업을 담당하는 홍보/마케팅 담당자라면 관련 사업군에 대한 폭넓은 이해가 필요하겠지만, 마케팅 에이전시는 다르다. 스포츠나 뷰티 같이 전문성을 요구하는 산업군만 담당하는 전문 에이전시도 있지만, 대부분의 마케팅 에이전시는 다양한 브랜드를 회사의 상황과 예산 규모에 맞춰 수주하고 운영한다.
이런 상황은 AE에게 다양한 브랜드의 마케팅 활동을 담당하게 만든다. 작년에는 식품 브랜드를 했던 사람이 내년에는 일반 의약품을 담당하기도 하는 식으로 다양한 활동을 담당하고 운영한다. 이렇게 브랜드의 성격이 회사 사정에 따라 변화하기 때문에 AE는 새로운 업무에 들어가는 것에 거부감이 없고 빠르게 적응할 수 있는 적응력이 필요하다. 본인이 좋아하는 브랜드가 아니고, 관련 지식이 없어도 브랜드 담당자가 될 수 있다. 그렇기 때문에 짧은 시간에 빠른 공부로 업무에 필요한 지식을 습득해야 한다.
두 번째는 기획력이다. AE의 주 업무가 기획이기 때문에 기획하는 능력은 필수다. 기획은 좋은 레퍼런스와 진행 경험을 통해 축적되어 나온다. AE의 기획은 철저히 고객사의 요구사항, 더 나아가 고객사의 고객의 요구사항에 맞춰야 한다. AE들 중 대부분은 본인의 취향이 강한 사람들이 많은데, 간혹 고객사의 요구사항과 벗어나 '내가 선호하는' 아이디어를 기초로 기획안을 쓸 경우가 있다. 이런 기획안은 좋은 기획이라 할 수 없다. 좋은 기획은 한순간에 만들어지지 않는다. 평소에도 꾸준히 좋은 인풋 소스들을 보고, 인사이트를 축적해야 발견할 수 있기에 평소에 좋은 콘텐츠를 많이 보고 기록하는 습관이 중요하다.
세 번째는 커뮤니케이션 능력이다. AE의 업무의 범위가 넓다는 건 협력해야 할 사람이 많다는 뜻이다. AE는 프로젝트의 중심이 되어 디자이너, 영상 촬영 편집자, 협력 업체 (ex-디지털 광고 운영에 필요한 랩사나 인플루언서 마케팅을 담당하는 MCN ) 등 다양한 업체들과 협력하여 프로젝트를 성공적으로 이끌어야 한다. 그렇게 때문에 커뮤니케이션 능력이 필수적이다.
에이전시 업무 대부분은 디지털 기반으로 이뤄지고, 사람들의 이목을 끌어야 하기 때문에 업무 실행 속도가 빠르게 진행된다. 그래서 기획자의 정확한 커뮤니케이션 능력은 매우 중요하다. 상대방과 커뮤니케이션을 할 때 애매한 부분을 남기면 안 된다. 애매한 부분은 끝까지 확인하여 명확하게 만들어 놓아야 오해로 인한 문제가 생기지 않는다. 중요한 부분은 구두로 이야기하더라도 메일 등을 통해 2차 커뮤니케이션해 기록으로 남기는 버릇이 필요하다.
AE로 사는 삶
기획자의 삶은 편안하지 않다. 어느 날은 커뮤니케이션 (메일, 문의, 협조)만 하다 하루가 다 가기도 하고, 어느 날은 보고서만 쓰다 하루가 다 가기도 한다. 좋은 아이디어는 쉽게 떠오르지 않아 회의를 반복하다 보면 야근하는 날도 많아진다.
협력업체라는 이름이 붙어있지만, 철저히 '을'의 입장이기에 힘든 점도 있다. 업무 일정은 무조건 고객사의 일정에 맞춰야 한다는 점, 고객사의 요청사항에 맞춰서 움직여야 한다는 점이 그렇다. 무엇보다 고객사는 1년 뒤 계약을 종료할 수 있어 이를 악용해 불합리한 요구를 하는 고객사들도 간혹 있다.
개인적으로는 안주하면 도태되기 쉬운 직업라고 생각한다. 항상 새로운 트렌드에 예민해야 하고, 트렌드를 반영한 기획이 돼야 한다. 변화하는 사회 흐름을 기획안에 반영되어야 하기 때문에 업무의 틀은 유사하지만 늘 새로운 업무를 해야 한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AE라는 직업이 가지는 매력도 크고, 그 매력 덕분에 나도 7년째 이 일을 하고 있다. 내가 생각하는 AE의 매력은 다음 회차를 통해 이야기해보겠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