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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hyeon Sep 20. 2016

부모님과의 산책

경주 산림환경연구원에서


휴가를 받아 경주에 내려온 지 나흘째, 태풍의 영향으로 내리는 비가 그칠 줄 모른다. 그치는가 싶더니 갑자기 소나기를 흩날리고 햇빛이 나는가 했더니 다시 구름이 드리운다. 이번 휴가에는 1박 2일 충주 여행을 계획했는데 자연스레 태풍에 쓸려갔다. 혼자 가는 여행이 그렇게 좋으냐고 입을 삐죽 내밀던 엄마가 아쉬워하는 내 앞에서 슬쩍 미소를 짓는다. 생각해보니 긴 휴가 동안 부모님과 어디라도 갈 생각을 하지 않았던 내가 한심했다. 그것도 명절에, 슬쩍만 움직여도 갈 곳이 천지빼까리인 경주에서 말이다. 그래서 오늘 산림환경연구원에 가기로 했다. 살짝 비가 와도 나무에 숨으면 괜찮을 것 같고, 그리 넓은 곳은 아니니 날씨가 내어준 찰나에 잠시 다녀오기 좋은 곳이었다. 나도 경주에 살면서 한 번도 가보지 못한 곳이라 궁금하기도 했다. 엄마는 시큰둥한 척하더니 어느새 씻고 나와서 평소엔 입지도 않는 원피스로 갈아입었다. 아빠는 어울리지 않게 무슨 원피스냐 했지만 어울리든 어울리지 않든 원피스를 입은 엄마는 보기에 좋았다. 아직도 엄마가 고와 보여서 기분이 또 좋았다. 아무리 오랜 시간이 흘러도 그 마음은 여전하겠지만. 아빠는 일 때문에 같이 가지 못할 뻔했지만 다행히 시간이 나서 중간에 올 수 있었다. 외할머니도 댁으로 돌아가시기 전에 비가 그쳤다면 같이 모셔올 수 있었을 텐데. 그리고 햇빛이 났다면 얼마나 좋았을까! 개인적으로 칙칙한 날씨를 좋아하지만 오늘은 부모님의 사진을 찍어드릴 작정이었으니 날씨가 너무 아쉬웠다. 그래서 평소엔 하지 않는 떡보정을 해서 살렸다! 부모님을 칙칙하게 담을 순 없으니까.



산림환경연구원에 들어서자마자 반겨준 꽃. 이 친구말고는 예쁘게 피어나있는 꽃들이 몇 없었다.



부모님들은 참 바쁘다. 같이 슬렁슬렁 마실이나 하재놓고는 끊임없이 걸려오는 통화를 받느라 정신이 없다. 부모님도 부모님의 부모님 문제로 속이 복잡할 때가 있고, 일 문제로도 속이 복잡할거다. 그래도 오늘만은 내려놓길 바랬는데 역시 그건 불가능한가 보다. 아들로서 도와드리고 싶지만 나는 아무 능력이 없다. 얼른 지나가는 시간을 알차게 보내야 부모님 앞에서 떳떳할 수 있을 텐데. 엄마도 엄마의 엄마에게 그런 역할을 충실히 하고 있는 것이겠지. 집으로 돌아가면 엄마폰 벨소리나 바꿔야겠다. 생각해보니 몇 년 전에 바꿔준 벨소리를 아직도 쓰고 있다. 분명히 질렸을 텐데. 엄마의 뒷모습을 담으며 그런 생각을 하다 보니 어느새 엄마가 저만치 멀리가 있다. 아니, 같이 좀 가자고 그렇게 불러도 대답도 없다. 아들이 오든지 말든지. 결국 그러든지 말든지 나도 엄마를 졸졸 따라간다.





사실 이 곳은 수목원 목적으로 만들어진 곳은 아니니 애초에 대단한 풍경을 기대하진 않았다. 그런데 막상 가보니 스리슬쩍 산책하기엔 좀 많이 괜찮은 곳이었다. 나무 길이 여기 말고도 많았는데 개인적으로 여기가 제일 괜찮았다. 비가 온 후라 흙이 있는 곳은 너무 질퍽질퍽해서 다니기도 별로였고. 여기서 부모님의 사진도 찍어드렸다. 평소엔 서먹서먹해도 카메라를 들이밀면 아빠는 이내 자연스럽게 포즈를 잡는다. 엄마는 그럴 때마다 항상 멋쩍게 웃는 포즈 말고는 할 줄을 모른다. 내가 그것을 빼닮았나 보다. 그럴 땐 한두 번 셔터를 눌러 엄마의 긴장을 풀어주면 그나마 자연스러운 포즈가 나온다. 하지만 오늘같이 아빠와 사진을 찍을 때면 그런 과정없이 엄마도 자연스럽게 사진에 담긴다. 티격태격해도 서로가 서로를 자연스럽게 품는 것이 부부다. 매일이 하하호호는 아니지만 우리 부모님에게도 그런 면이 있으니 참으로 다행이다.



여기는 산림환경연구원에서 가장 유명한 포토존이다. 이곳에 오면 다들 저 통나무에 앉은 사진을 남긴다.



어제까지 한동안 비가 온 탓에 물이 뒤집어져 흙탕물이 돼버렸다. 원래는 깨끗한 물인데 똥물처럼 보인다. 그래도 다음이 언제일지 모르는 만큼 부모님을 찍어드리려고 했다. 그런데 아빠는 시큰둥하게 옆 벤치에 앉아버리고 엄마는 통나무에 올라가기가 무섭단다. 손을 잡아줄 테니 올라가 앉아보랬다. 예쁘게 담아주겠다고 꼬셨다. 그렇게 큰 결심을 한 듯 내 손을 잡고는 겨우 한 발자국을 내딛고 울상을 짓는다. 어머니, 인생의 모진 풍파는 어떻게 견디셨는지요. 그렇게 무서워하던 엄마의 소녀 같은 모습이라도 담아둘 걸 그랬다. 옆으로 맨 가방이 포인트였는데. 옆에서는 우리처럼 나들이 나온 가족들이 꺄르르댔다. 그 가족들의 주인공은 아기였다. 아버지의 카메라를 보니 사진을 꽤나 좋아하시는 분인 것 같은데, 아버지가 그랬던 것처럼 그 아이도 커서 부모님을 담아주길! 내가 해보니 참 좋단다! 아가야. 하지만 내가 굳이 그런 얘기를 할 필요가 없다는 생각이 들 정도로 화목해 보였다.



여기가 수목원이 아니라 산림환경연구원이라는 것을 다시금 일깨워주는 규모의 서식지(?)다.
온실도 규모의 서식지인 것은 마찬가지다. 작은 솔나무들이 모여있으니 괜시리 따끔따금해지는 것 같다.
하나쯤 가져가도 모를 것 같다. 집에 하나 갖다 두고 싶다. 너무 예쁘다.



마찬가지로 규모의 서식지였던 온실에서 관리사분을 카메라에 담았다. 추석 연휴가 끝났다는 것이 실감 났다. 사진의 아주머니도 추석을 잘 보내셨을까 하는 생각이 잠깐 스쳐갔다. 명절 스트레스로 이러쿵저러쿵 말이 많지만 우리 집은 제사도 지내지 않고 친척도 별로 없어 그다지 스트레스 받을 일이 없다. 그렇다보니 이 아주머니도 마냥 행복했을 것 같았는데, 사진을 찍고 쪼그려 앉은 아주머니 등이 괜스레 굽어 보였다. 우리 엄마도 공장을 다닐 땐 그렇게 굽어 보였는데. 이제는 그때처럼 피곤한 어머니의 발을 밟아줄 수 없을 만큼 몸무게가 불어났다. 대신 다른 것을 할 수 있겠지.





아빠도 마찬가지다. 아버지들은 언제나 기억 속에서 뒷모습이다. 연휴 내 쉬고 오셨으면 몸도 찌뿌둥하실 텐데, 괜스레 마음이 그랬다. 각종 알레르기에 시달리는 난 이런 곳에 오면 눈물이 나고 코가 간지럽다. 괜찮으실까.





우리 집의 기둥! 우리 아빠다. 다행히 큰 키 덕분인지 우리 아빠의 뒷모습은 아직 굳세 보인다. 그 덕분에 좋은 경치를 모두 가려버리기도 하지만. 그래서 아빠밖에 안 보이는 사진이 됐다. 사실 어지간한 사진에서 아빠는 항상 제일 눈에 띄는 사람이다. 아빠 세대에서 아빠만큼 키와 덩치가 큰 사람이 잘 없기도 하고 코가 매우 높아서 얼굴이 이국적이다. 그래서 좋다. 크게 느껴지는 존재감처럼 나에게도 아빠는 그런 사람이니까. 근데 나는 왜 이럴까. 여튼 그래도 시간은 한순간이니. 근데 내 전역은 언제일까. 아빠가 건강에 신경을 썼으면 좋겠다. 건강검진도 정기적으로 받고. 습관처럼 마신 술 때문에 나온 배에 익숙해졌지만 걱정이 되는 것은 어쩔 수가 없다. 



그리고 별 기대 없이 다녀온 산림환경연구원이 생각보다 좋았으니 사진을 좀 늘어 놓아야겠다. 지진 때문에 경주에 오란 말은 못하겠으니 사진으로라도 맘껏 보시기를. 방금도 여진때문에 밖에 다녀왔다. 그럼에도 별 수 있나. 어제는 '그리고 삶은 계속된다'라는 영화까지 봤는데. 죽을 땐 죽더라도 경주가 터전인 우리들은 여기저기 쏘다니며 최대한 즐겨야지.



날씨 덕에 햇빛에 반짝이지 못한 나무들이지만 그럼에도 좋았다. 왜냐하면 오늘은 부모님과 기분좋게 산책을 했으니까.
연구원이다보니 만날 수 있는 이색적인 풍경 1. 쌓아놓은 모래와 초록색깔이 너무 잘 어우러진다.
이색적인 풍경 2. 호수인 척하는 물탱크다. 자연스럽진 않지만 이질적인 무엇들은 언제나 재미있다.
 잘 모르겠지만 축처진 저 나무는 아마 버들나무 비슷한 종인 것 같다. 하지만 나무가 아니다. 호수에 쏟아지는 폭포다.
폭포가 쏟아지는 호수인 척하는 물탱크 옆에 있던 버섯들의 집이다. 구멍이 뽕뽕 나있는 것이 귀엽다. 근데 왜 하나도 제대로    튀어나온 것이 없을까.
아, 그리고 이건 아까 온실에서 봤던 것. 엄마가 집에서 취미생활로 하기 딱 좋은 것 같다. 다음 생일선물 예약.
그리고 이건 메콰세타이어길. 원래 이번 휴가 여행에 담양도 생각했었는데, 여기를 보니 담양 (안)가고 싶다.
그리고 이건 바닥에 널브러져 있던 꽃무릇. 이름이 되게 무릇무릇하다. 엄마가 맘에 들어했는데, 혼자 몇 개를 주워들더니           부케를 만들어 가지고 다녔다.
그리고 아재스럽게 1.
그리고 아재스럽게 2.
마지막 사진. 혹시나 이번 지진으로 넘어진 것이 아닐까하는 돌기둥(?). 엄마도 같은 생각을 했단다. 근데 지진난 지가 일주일인데, 아닐거다. 아니겠지?



사실 여기까지 써뒀다가 갑자기 4.5 규모의 여진이 일어나서 엄마와 누나와 함께 집 밖으로 나갔다. 일주일이면 안정기라는 전문가의 헛소리는 역시 개소리다. 왜 하필 휴가를 나온 이때 태풍에, 지진에 난리통인지. 억울하다. 하지만 저번 지진의 경험으로 다들 스스로 조심하는 수밖에 없다는 것을 느꼈는지, 안전한 곳으로 가기 위한 차들로 도로가 가득 찼다. 우리는 어디로 가야 할지를 확실히 정하지 못해 조금 우왕좌왕했다. 하지만 이게 진짜 재난상황이라면 신속히 움직여야 할 것 같아 쓸데없는 말은 거두고 지금 우리가 해야 할 일들에 대해서만 이야기하기로 했다. 사실 아빠가 외출한 상태여서 아빠를 데리러 가기로 했다. 그렇게 아빠를 태워오면서부터 아빠와 나는 엇갈리기 시작했다. 아빠와 나의 관계는 솔직히 그다지 좋지 않다. 서로 마음속에 품어둔 불만이 조금씩 있다. 하지만 그것들을 제대로 풀어낸 적이 없다. 그래서 평소에 은근하게 부딪힐 때가 많다. 심각하게 어긋날 때면 때때로 강진이 발생한다. 오늘이 그런 날이었다. 서로 생각하는 것이 달랐던 우리는 맞춰지지 않을 것을 알면서도 죽어라 싸웠다. 맞지 않는 판끼리 부딪히니 별 수 있나. 지진의 규모는 계속 높아졌고 서로 악만 남았다. 우리 모두 더 얘기해봐야 상황만 악화될 것임을 알지만 여진은 계속됐다. 그래서 엄마가 판을 두동강 내 서로를 멀리 던져버렸다. 우리 엄마는 그런 엄마다. 그런 엄마라서 남들에게 우리 엄마라고 떠벌릴 수 있다.


처음에는 혈기를 죽이지 못하고 배신감에 가득 찼다. 그래서 이 글도 엎으려고 했다. 다 무슨 소용이냐고. 말로만 효도하며 가식 떨지 말자고. 김애란 작가의 표현을 빌리자면 마냥 새끼 같은 나를 엄마와 누나는 쉴 새 없이 다독였다. 아빠와 붙어 있었을 때는 이런 꼴이 날 것을 예상하면서 말을 뱉었고, 엄마와 누나가 하는 이야기를 들을 땐 그들이 틀리지 않았음을 알면서도 나는 새끼답게 계속 우겨댔다. 자식이기는 부모 없다지만 나는 부모를 이기지 못하는 자식이다. 시간이 지나 차분함을 되찾으니 또 후회할 짓을 저질렀다는 생각이 들었다. 하지만 이번에는 후회라고 생각하지 않기로 했다. 차라리 잘된 일이라고, 이제는 나의 태도를 바꿔야 할 때라는 생각이 들었다. 이제까지의 방법이 통하지 않을 것을 알면서도 나는 끝까지 고집을 부렸다. 그래서 이번 기회에 조금이라도 덜 어린 새끼가 되자 생각했다. 그래서 이 글을 완성했다. 사랑하지 않는 사람에게는 실망도 없다. 크게 실망했다는 것은 그만큼 사랑한다는 뜻이다. 순간순간에 미운 감정이 치밀어도 결국은 사랑의 감정으로 덮어버린다. 그러니 아직까지도 궁상맞게 함께 살고 있는 것이다. 지리한 관계가 얼마나 남았을지는 모르겠지만 오늘의 일을 통해 나는 미래를 조금 더 낙관할 수 있게 됐다. 다음번에는 나도 이 사진에 함께 담겨야겠다는 생각을 했다. 그리고 누나도. 내일은 날씨가 맑을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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