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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hyeon Dec 14. 2016

STILL FLOWER

그럼에도 여전히, 강인하게.


트렁크 바퀴가 바닥과 부닥치는 소리는 요란하다 못해 시끄럽다. 트렁크를 차분히 끌고 가는 것조차 버거워 보이는 한 여자는 영화의 주인공 '하담'이다. 그 어떤 곳도 자신을 허락하지 않는 세상에서 '하담'은 필사적이다. 더럽고, 춥더라도 제 몸 하나 뉘일 곳을 찾기 위해 '하담'은 밑창이 나가 떨어진 신발을 신고 트렁크를 끌며, 온거리를 헤맨다. 그렇게 겨우내 찾아낸 곳은 높은 언덕 위에 위치한 빈 집이다. 노숙과 별 다를바 없는 생활이지만, 아직 물이 끊기지 않았다. '하담'의 처지에 대한 동정과 연민으로 마지못해 흐르는 듯한 그 물길만이, '하담'이 가진 유일한 희망이다.


'하담'은 어디에서 와서 어디로 가는가. '하담'이 정처없이 헤매는 모습만이 담겨있는 영화의 초반부를 보고 있노라면, '하담'에 대해 궁금해지는 것이 당연하다. 그러나 영화의 주인공 '하담'을 무어라 설명할 길이 없다. '소녀'라는 부드러운 어감의 단어로 설명하기에는 '하담'의 삶은 너무나도 거칠고, '그녀'라고 하기엔 아직은 앳되보인다. 그렇다고 공부를 하는 것도 아니니, '학생'이라 부를 수도 없다. '하담'을 표현할 수 있는 말은 '정하담'이라는 세 글자의 이름. 단지 그 뿐이다. 사실 그것조차 배우의 본명에 지나지 않는다. 그러니 영화 속 '하담'이라는 인물은 철저히 무(無)에 가까운 존재다. 그 무(無)는 비어있음이 아니다. 영화 속 '하담'의 삶은 오히려 얽힐 대로 얽혀버려 어떤 형태라고도 할 수 없는 어떤 '뭉치'에 가까운 형태, 22년이라는 짧은 시간동안 긍정과 즐거움의 원유라고 볼 수 있는 삶의 요소들을 제외한 모든 것들만이 복잡하게 얽히고 설킨, 그런 '뭉치'로밖에 표현할 길 없는 삶이다.



사실 '하담'을 설명하려는 시도 자체가 무용한 일이다. '하담'에 대해서 알게 된다고 한들, 그 누구도 '하담'의 삶에 동정 비슷한 것이라도 던져주지 않는다. 길거리에서 그렇게 시끄럽게 트렁크를 끌고 다녀도 돌아 보는 이 하나 없다. 아르바이트를 하기 위해 들어간 일식집에서는 면접을 보다가 쫓겨난다. '하담'에게 전단지를 맡기고 사라진 아주머니는 돈을 달라는 '하담'을 모른척 잡아떼며 경찰까지 부르려고 한다. 장어구이집에서는 일을 하고도 정당한 을 받지 못했다. 그런 '하담'이 분노를 표출한 방법은 장어를 몇 마리 훔쳐 다른 가게에다 파는 것이 아니라, 장어 한 마리를 훔쳐 바다에 풀어주는 일이었다. '하담'은 '죽음'이라는 운명을 앞둔 장어의 삶에서 자신이 떠올랐을 것이다. '하담'은 장어를 놓아줬다. 장어가 다시는 그물에 걸리지 않기를 바라고 바라며, 자신의 삶희망했을 것이다.


그런 '하담'에게도 기회처럼 보이는 것이 찾아온다. 종종 '하담'에게 식당 한구석에 있는 자리를 내주고, 음식을 챙겨주곤 하던 빈대떡집에서 일하게 된 것이다. '하담'은 자신에게 찾아온 기회를 놓치지 않기 위해, 이번에도 필사적이다. 열심히 그릇을 나르고, 손님들에게 음식을 서빙한다. 다시는 거리를 헤매지 않기 위해, 자신이 해낼 수 있음을 스스로에게 증명하기 위해.



시리도록 시퍼런 색감의 영화처럼 칼바람만이 부는 '하담'의 삶에도 꿈이라고 할만한 것이 하나 있었다. 자신의 집으로 돌아가는 길에 있는 탭댄스 학원에서 들려오던 경쾌한 소리, '하담'은  그것을 꿈꿨다. 한 켤레에 6만원하는 탭댄스용 구두를 사기 위해 자신이 이제까지 모은 돈을 모두 내놓았다. '하담'은 탭댄스 구두로 갈아 신고, 그 경쾌한 소리를 즐긴다. 일할 때도, 집으로 돌아갈 때도, 꼭 그 신발을 신었다. 그렇게 '하담'의 삶도 이제는 나아질 것처럼 보였다.


하지만 잠깐동안 일했던 장어구이집에서 마주친 사장의 여자가 가게로 찾아 온다. 사장이 자신을 외면하 된 것을 모두 '하담'의 탓으로 돌리며 '하담'을 원색적으로 비난한다. 그녀는 '하담'과의 몸싸움 끝에 결국 '하담'을 가게 밖으로 내쫓으며 기어이 자신의 분노감을 아무런 잘못도 없는 '하담'에게 쏟아낸다. 경쾌하던 탭댄스 구두의 소리가 불규칙적으로 바뀌면서 시끄러워졌다. 이번에도 식당 안에 가득했던 손님들 중 '하담'을 도와주는 이는 아무도 없다. 사장님도 어디로 갔는지, '하담'은 그 모든 수모를 혼자서 견뎌야 했다.



그렇게 또 한 번 갈 곳을 잃은 '하담'은 바다로 간다. 그곳에서 '하담'은 거대한 삶과 맞서면서도 넘어지지 않는다. '하담'과 맞닿은 삶은 청춘의 표상도 아니고, 불공평한 처사에 치이는 노동자를 대변하지도 않는다. 다양한 삶의 일면, 그 끄트머리에 서있는, 단지 그 누군가가 강인하게 살아가는 모습을 보여줄 뿐이다. 무엇에도 흔들리지 않는 단단한 꽃. 박석영 감독은 '하담'을 'STEEL FLOWER'라고 부른다. 나는 끝이 아니라고 믿는다. '하담'이 일하던 빈대떡집 사장은 '하담'을 믿고 잠시를 가게를 비웠을 뿐이라고. 그럼에도 여전히 강인한, '하담'을 곧 찾을 것이라고 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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