내이름이박힌책한권

모든게 다 아름다운 완벽한 점심

by 허정구

짝사랑. 첫사랑. 풋사랑.

아니 사랑이란 이름자체마저도 너무 야하다. 하얀 함박 첫 눈같은 느낌. 손끝만 닿아도 스르르 녹아 사라지는 그런 느낌이였다.


고2 학교앞 분식 라면집에서 어느날 우연히 마주친 소녀는 지금 생각해도 천사였다. 하얀 드레스 같은 옷을 입고 남고생들이 잔뜩 있는 분식집에 들어서는 여학생. 나도 어렸지만 더 어렸고 하얀 백옥같은 피부에 젓살이 포동포동한 동그란 얼굴에 단발머리...소녀


세일러문처럼 마법봉을 돌린듯 주변에 광채가 나타나는 그런 소녀였다. 그 소녀는 라면집 큰 딸이였고, 그날이후 등교하는 매일매일 야간자율학습전 저녁시간엔 기필코 라면을 먹었다. 학교 구내식당 라면과 달리 계란이 풀어져 있고, 더 꼬들꼬들해서 맛있었지만 목적은 그 소녀를 보고 싶어서였다. 세살차이. 난 고2 소녀는 중2. 매일 라면을 먹는다고 매일 볼 수 있는 것도 아니었지만...그 첫 순간이후로 그 소녀는 내 짝사랑이 되었다. 당시 분식집 아주머니는 초등학교 2~3학년쯤 되는 막내 아들이 있었는데 난 그 소녀의 마음(?)을 얻기위해 꼬맹이와 같이 놀아도주며 누나가 할 수 없는 형의 역활을 해주기도 했었었다. 누나가 둘인가 셋인가 그랬고 막내인 철이는 그래도 날 잘 따라주었고 내게 쉽게 포섭되었던듯하다. 소녀의 이름도 다니는 학교도 학년도 모두 철이를 통해 알게되었고 수시로 낭만가득 연애쪽지편지도 전해주었으니까...


그렇게 한동안 짝사랑했던 그 소녀와의 첫 만남...어떻게 진행과정을 거쳐 만남 약속까지 했었는지 이젠 그 기억마저 없지만 시내 도서관앞에서 만나 당시 최고의 경양식집(레스토랑)에 들러 돈가스를 먹었던 것 같은데...


아무튼...다 잊어버렸는데...딱 하나 그 첫순간 분식집으로 들어서던 그 찰라의 순간 그 소녀의 첫느낌은 지금 생각해도 가슴이 두근거린다.


오늘 점심때 그냥 구내식당에서 그 소녀의 기억이 나게끔 한 어떤 아가씨가 있었다. 밝은 표정과 화사한 웃음. 단아한듯 단정한듯 싱그러운



저 멀리 떨어져 있었지만 《참! 곱다》라는 생각과 함께 아주 오래전에 그리고 오래동안 잊고 있었던 고2 시절 그 소녀의 추억이 떠올랐다.


그래서 오늘 점심은 모든게 다 완벽한 아름다운 시간이였다. 밥도 적당히 맛있었고, 반찬도 불고기 반찬에 튀김옷이 아주 바싹바싹하게 입혀졌고 달달했던 고구마튀김. 그리고 감자수제비 국과 누룽지 듬뿍 담긴 숭늉까지...이 모두가 군중속에서도 빛나는 어떤 아가씨의 밝은 표정과 환한 미소 때문이겠지만 참 맛있는 점심 한끼였다...햇살 만큼이나 따스한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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