친구의 기준은 오랫동안 만나지 못했다 해도 그것이 1년이건 2년이건 10년이건 다시 만난 그 순간에 1도 낯설지 않아야 하고, 어색하지 않아야 하고, 불편하지 않아야 친구라 생각된다.
근 2년 만에 만났다. 제주 서귀포에 가족과 놀러 온 친구 이젠 어여쁜 처자가 다 된 두 딸의 아빠. 그리고 여전히 잘 살아가고 있는 한 가정의 든든한 가장.
어릴 적 그때 마냥 늘 변함없는 생각을 하고 있고 삶에 필요한 역할들을 잘 추스르며 살아가고 있는 이야기들 속에 오랜만에 소주를 마셨다. 그리곤 소주 2병이 넘어선 어느 시점부터 친구는 그 옛날처럼 우리들의 이야기를 하고 있지만 아마도 다음날 이면 기억하지 못할 것이다. 늘 그랬던 것처럼... 어느 한 수제 맥줏집에 갔었는데... 그곳에 갔었던 걸 친구는 기억할까... 택시를 타고 숙소로 가며 술이 취해 반은 졸고 있는 친구를 보며... 여전히 변함없이 잘 지내고 있구나 하는 생각을 했다.
숙소를 준비해 주진 못했지만, 내가 머무는 곳 인근에 숙소를 정한 친구를 숙소까지 데려다주고 나는 밤길을 터벅터벅 걸어 내가 머무는 곳으로 왔다.
제주도에 살면서 그때도 지금도 아쉬운 건 누군가 날 찾아왔을 때 하룻밤 편히 쉬어 갈 방 한 칸 내어줄 집이 없다는 게 아쉬웠다.
그래서 친구는 오늘 우리의 이야기 결론을 돈이라 했나 보다. 나 역시 돈일지 모르지만 여전히 삶이라 이야기하는지 모르겠고.
내 꿈은 過勞死라 말하는 나나, 먼 훗날의 노후를 차근차근 준비하고 있다는 친구나, 모두 표현과 정의 방법은 달랐지만 최종 목적은 주어진 하루하루에 최선을 다하며 「스스로에게 쪽팔리지 않는 삶을 사는 것」이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