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라산엔 아직 가을 단풍이 눈에 확연히 보이진 않았지만 창문으로 느껴지는 서늘함은 가을이었다.
앞에도 뒤에도 뒤따르는 차량이 없게 아무도 없는 혼자 까만 밤길을 여유롭게 달렸다. 행여나 뒤에 차가 오면 앞서 내달릴 수 있게 비켜주며 어둠 속의 길을 즐겼다.
환하게 불 켜진 정류장엔 아무도 기다리는 이가 없었고, 불빛에 굽은 길을 안내하는 《《《《《표지판은 유난히 빛났다.
어둠 속을 달리며 나는 그사람 생각을 했다. 그냥 생각이 났다. 이틀 동안 암막 커튼을 드리운 채 혼자 고립의 시간을 보냈다. 잠이 깨면 TV를 보고... 아무 생각조차 하지 않고 그냥 쉬고 싶었다. 그렇게 일상에서 도망친 나는 나를 작은 공간에 가둔 채 하루를 보내고 또 하루를 보냈다.
문득문득 순간순간해야 할 일들이 생각나기도 했지만 아무것도 하고 싶지 않았다. 계획된 그 어떤 일도 없는 오로지 빈 시간을 보내고 싶었다.
사촌 누나가 마트에서 정년퇴직을 하고 제주도에 여행 온다고 카톡이 왔다. 시간 되면 잠시 얼굴이나 보자며... 그래서 예기치 않은 일정이 생겨 제주시에 다녀왔었다. 스무 살의 누나는 고단한 삶 속에서도 지금까지 부지런히 살아왔고 우리들의 삶은 누구 하나 할 거 없이 녹록지 않았지만 그래도 좋은 방향으로 살아오고 있다.
어둠 속에 길은 차량의 불빛이 비치는 거리만큼 항상 밝았고, 나는 그 길을 아주 느긋하게 편안하게 여유롭게 즐겼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