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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허정구 Oct 16. 2023

내이름이박힌책한권

밤길운전

어젯밤엔 한라산을 넘어갔다가 다시 돌아왔다.

한라산엔 아직 가을 단풍이 눈에 확연히 보이진 않았지만 창문으로 느껴지는 서늘함은 가을이었다.


앞에도 뒤에도 뒤따르는 차량이 없게 아무도 없는 혼자 까만 밤길을 여유롭게 달렸다. 행여나 뒤에 차가 오면 앞서 내달릴 수 있게 비켜주며 어둠 속의 길을 즐겼다.


환하게 불 켜진 정류장엔 아무도 기다리는 이가 없었고, 불빛에 굽은 길을 안내하는 《《《《《표지판은 유난히 빛났다.


어둠 속을 달리며 나는 그사람 생각을 했다. 그냥 생각이 났다. 이틀 동안 암막 커튼을 드리운 채 혼자 고립의 시간을 보냈다. 잠이 깨면 TV를 보고... 아무 생각조차 하지 않고 그냥 쉬고 싶었다. 그렇게 일상에서 도망친 나는 나를 작은 공간에 가둔 채 하루를 보내고 또 하루를 보냈다.


문득문득 순간순간해야 할 일들이 생각나기도 했지만 아무것도 하고 싶지 않았다. 계획된 그 어떤 일도 없는 오로지 빈 시간을 보내고 싶었다.


사촌 누나가 마트에서 정년퇴직을 하고 제주도에 여행 온다고 카톡이 왔다. 시간 되면 잠시 얼굴이나 보자며... 그래서 예기치 않은 일정이 생겨 제주시에 다녀왔었다. 스무 살의 누나는 고단한 삶 속에서도 지금까지 부지런히 살아왔고 우리들의 삶은 누구 하나 할 거 없이 녹록지 않았지만 그래도 좋은 방향으로 살아오고 있다.


어둠 속에 길은 차량의 불빛이 비치는 거리만큼 항상 밝았고, 나는 그 길을 아주 느긋하게 편안하게 여유롭게 즐겼다.

마치 삶처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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