내이름이박힌책한권

한라신에 첫눈이 쌓였다.

by 허정구

서울에 올라와서 ○○건설 본사 빌딩의 현장소장을 하라고 하셨다.

수없이 많은 사람들이 살고 있는 서울을 떠난 건 12년 전인 거 같다. 많은 차. 지하철. 빽빽한 건물들. 그리고 사람들.


처음 서울에 간 건 실습생이었다. 관광과를 다닌 나는 여행사의 실습생으로 95년인가 96년인가 서울에 갔었다. 그땐 서울로 가고 싶었다. 연고지도 없었고, 아는 사람도 없는 서울이었지만 그땐 기대감이 있었나 보다.

처음 살았던 동네는 자하문터널을 지나면 나오는 삼청동이었고, 그리곤 사직터널 옆 효자동에 살다가 북아현동에 살다가 신림동에 살다가 봉천동에 살았다.


10년 넘게 광화문 종로가 일터였고, 나중엔 삼성역 대치동이 일터였다. 그렇게 서울에 사는 사람들 속에 묻혀 나도 살았다. 25살인가 올라가 마흔이 넘어 떠나왔으니 20년을 채우지는 못했지만 한참을 살았다.


그리곤 서울에 가지 않았다. 아마 서울 떠난 뒤 채 10번도 가지 않았던 거 같다. 전북 김제. 전남 광양. 제주 서귀포에서 일했지만 모두 일하는 곳의 본사는 서울이었음에도 굳이 서울에 갈 필요 없이 주어진 맡겨진 일을 책임감 있게 했었다.


그렇게 고향인 대구에서 젊은 날 상경했다가 떠돌고 떠돌아 서울에서 가장 먼 이곳 서귀포에 산 지도 6년 하고도 반년인데... 이제 다시 서울 그것도 양재동에 큰 빌딩이 일터로 정해지기에 서울에 갈 수도 있단다.


지금 내게 서울은 가고 싶은 아무런 흥미가 없는데...

그 넓은 도로를 꽉 채우고도 움직이지 못하는 차들

쉴 새 없이 다니는 지하철을 꽉 채운 사람들.

그곳에 다시 내가 가서 난 뭘 할까.


스무 살의 내게 서울 생활은 기대감. 설렘이 있었다면 지금의 서울 생활은 두려움이 앞선다.


굳이 다시 서울로 가기엔 난 너무...


모든 것의 중심인 서울이지만 내겐 그냥 여기나 거기나 객지일 뿐이기에 굳이 객지 생활을 한다면 서울이 아닌 곳에서 하려 한다. 도시를 떠나보니 도시로 가고 싶은 마음이 없다. 난 쇼핑을 안 해도 되고, 난 문화생활을 하지 않아도 되고, 지금의 난 학교에 얽매이지 않아도 되기에 굳이 직장이 서울일 필요는 없다.

서울에 살아야 할 이유가 없는 나는 서울이 가진 그 무수한 이점이 내겐 아무런 의미가 없다. 오히려 단점만 가득하다.


지난겨울이 끝나고 오늘 처음으로 한라산 정상은 하얗게 눈이 쌓였다. 아마도 어제 오후부터 날린 눈발과 비가 한라산에는 눈으로 내려 하얀 모자를 쓴 듯 오늘 보이는 한라산은 하얗게 덮여 있었다.


스무 살의 나는 까만 머리카락이었는데 오십 중반의 내 머리카락은 희끗희끗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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