믿음이 무너져도 나를 의심하지 않기
Balmorhea – “Truth“
사람을 믿는 일이 이렇게 피곤할 줄은 몰랐다.
그리고 그 믿음이 틀렸을 때 내가 나를 의심하게 될 줄도 몰랐다.
교통사고를 당했다.
그리고 몸보다 마음이, 내가 품었던 ‘믿음’이 정면으로 부서졌다.
여느 때의 퇴근길. 갑작스러운 충격.
순간의 당황 속에서도 ‘별일 아니겠지’라는 안일한 생각이 먼저 들었다.
차에서 내리신 머리가 희끗하신 기사님.
숨 가쁘게, 다급하게 다가오시며 연신 미안해하셨다.
아버지 정도의 나이 같아 보이셨다.
‘그래, 누군가의 아버지 이 실 테지, 남편이시고, 가장이실 테고… 잘 마무리되면 좋겠다.’
미안함이 묻어나는 목소리, 진심 어린 걱정의 표정.
‘이런 분이라면 괜찮을 거야. 복잡하게 하지 말고 조용히 넘어가자.’
보험 처리보다는 개인적으로 해결하자는 말씀에 고개를 끄덕였다.
큰 사고도 아니었고, 무엇보다 그분의 진심이 느껴졌기 때문이었다.
나는 그날 내가 손해 보는 쪽을 택했다.
그리고 그 선택을 ‘내가 괜찮은 사람이라서’라고 믿고 싶었다.
다음 날 걸려온 전화 한 통.
“블랙박스를 보니까 많이 다친 것 같지도 않은데, 내가 사람을 치어 죽인 것도 아니고..
보험접수 안 할 거니까 맘대로 하시오. 난 벌점 먹고, 딱지 하나 끊으면 끝이야.”
어제의 그 어르신이 맞나 싶을 정도로 달라진 목소리와 억양.
어제 보였던 미안함과 걱정은 온데간데없고, 차갑고 무책임한 말들만 쏟아졌다.
아무 말도 할 수 없었다. 억울하기보다 서글펐다.
속았다는 생각보다는 내가 잘못 생각했다는 자책감이 먼저 들었다.
‘내가 사람을 너무 성급하게 판단했나?’
‘그냥 남들처럼 원 했어야 했나?’
어제의 나를 원망하는 마음이 커졌다.
짧은 전화 한 통이었을 뿐인데, 머릿속에서 생각이 가시질 않았다.
‘사람을 믿는다는 건, 나에게 이 정도 스트레스를 주는 일이었나?’
내가 잘못한 게 아닌데도 잘못된 기분이 드는 상황은 생각보다 자주 찾아온다.
주변 사람들은 위로라는 꼬리표를 붙여서 말한다.
“그래도 좋은 마음으로 했잖아”
어떤 위로도 되지 않았다.
오히려 나를 더 바보처럼 보이게 만드는 말 같았다.
‘좋은 마음으로 했으니 손해 봐도 괜찮다’는 식으로 들렸다.
며칠 동안 그 일이 머릿속에서 떠나지 않았다.
잠들기 전, 자꾸 그 순간이 되돌아와 다른 선택을 상상해보곤 했다.
‘그때 내가 더 냉정했더라면…’
‘처음부터 경찰에 신고했더라면…’
그러다 문득, 나와 비슷한 경험을 했던 친구의 말이 떠올랐다.
“내가 착해서 당한 게 아니라, 그 사람이 그럴 줄 몰랐던 거지 뭐.. “
그래, 내가 잘못된 것은 그 사람을 믿었기 때문이 아니라, 그 사람이 나의 믿음을 저버렸기 때문이구나.
내 선택에는 문제가 없었다.
문제는 상대방의 변질에 있었다.
“상대의 무례를 내가 품을 이유는 없어.”
“내가 사람을 믿는 방식은 바꿀 필요 없어.”
우리는 누군가를 믿는다는 것이 피곤한 시대에 살고 있다.
양보하고 배려하는 마음이 무능처럼 보이는 세상.
조금만 고개를 돌려보면 신뢰를 배신하는 이야기들이 넘쳐난다.
사기, 배신, 무책임한 행동들.
‘역시 사람은 믿으면 안 돼’라는 생각이 자연스럽게 드는 것이 이상하지 않은 세상.
그럼에도 불구하고 우리는 계속 관계를 맺고 살아간다.
의심부터 시작하는 관계는 진정한 관계가 아니기 때문에..
믿음 없이는 진정한 소통도, 깊은 유대감도 불가능하다.
우리는 여전히 누군가를 믿고, 의지하고, 함께 살아가야 하는 존재들이다.
당신이 믿었던 사람이 틀렸다고 해서 당신이 틀린 사람은 아니다.
세상엔 무례한 사람이 있고, 그렇다고 해서 우리가 의심을 먼저 배우는 사람이 될 필요는 없지 않은가.
물론 경계심을 갖는 것도 필요하다.
하지만 그것이 불신을 기본값으로 삼는 것과는 다르다.
우리는 여전히 사람을 믿을 수 있고, 믿어야 한다.
다만 조금 더 현명하게, 조금 더 신중하게.
당신의 온도는 그 사람의 냉기로 평가받을 수 없다.
당신이 따뜻한 마음으로 누군가에게 다가갔다가 상처를 받았다면, 그것은 당신의 따뜻함이 문제가 아니라 상대방의 차가움이 문제일 것이다.
그 차가움에 맞춰 당신까지 차가워질 필요는 없다.
이 글을 쓰면서도, 내가 내 마음을 지키기 위해서 얼마나 많은 설명이 필요한 시대에 살고 있는지를 느낀다.
착하게 사는 것이 바보 같아 보이는 시대.
믿음이 순진함으로 치부되는 시대.
하지만 그런 시대일수록 우리의 온기는 더 소중하다.
다음에 누군가를 믿으려 할 때, 오늘의 일이 이유가 되어서 내가 나를 의심하지 않기를 바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