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대에게서 나란 존재는
이젠 무색해질 만큼
이렇게나 거리를 두는 그대였다.
"지금의 난
그대에게 있어서 어떤 존재인가요?.."
나는 물었다.
"애초에 나를 의식하지 않았던 당신은
내겐 어떠한 존재도 아니었어요."
그대가 차갑게 말했다.
내 존재의 의의는 그대 때문인 것인데
그대 입에서 직접적으로
내 존재를 부정하는 말이 튀어나오니
어찌할 바를 모르는 나였다.
몹시나 수치스러운 마음에
몸은 달아올랐지만
왠지 모르게 한기를 느끼고 있었다.
사랑하는 사람에게서
내 존재가 한없이 작아지는 것이
이토록 시리고 서러우며
고달픈 것이었구나.
갑자기 눈물이 흘렀고
동시에 그대가 말했다.
"당신이 흘리는 그 눈물,
계속 흐르도록 내버려두세요."
이제 내 눈물을 닦아줄 그대는
어디에도 없었다.
존재 자체를 부정당한 나이기에
그대에게 나의 슬픔은 와 닿지 않는 것일까.
나는 물었다.
"내 눈물을 그대한테 보이고 싶지 않아요.
어째서 내버려 두라는 거죠?.."
그대가 말했다.
"당신이 느끼는 그 슬픔,
그저 흘러가도록 놔둔다면
언젠가 먼 훗날에
한 곳으로 모이게 되어
커다란 연못을 이루게 되겠죠.
그때 그 수면을 들여다보세요.
당신 자신이 아닌
내 모습이 비쳐질 테니까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