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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허원준 Sep 15. 2018

좋은 남편이 된다는 것

둘째 임신 20주 차의 기록

벌써 20주가 훌쩍 지나다니. 둘째 임신 소식을 들었던 게 엊그제 같은데 회사 일로 바쁘게 지내다 보니 시간 가는 줄도 몰랐다.


뱃속의 둘째에게 미안하지만, 첫째 임신했을 때만큼 신경 써주지 못하고 있는 게 사실이다. 일이 바쁜 탓도 어느 정도 있겠지만 아무래도 눈 앞의 첫째를 돌보는 것만 해도 적잖이 손이 가다 보니 그런 것 같다. 의식적으로 마음을 써야 하는데, 그래야 하는데 쉽지가 않다.


임신한 아내에게도 소홀했나 보다.


얼마 전, 서운함을 표현하는 아내에게 '나도 힘들다'는 티를 팍팍 냈다. 하필 나도 이런저런 일이 겹쳐 힘든 한 주를 보낸 뒤 맞이한 주말이었다.


임신 6개월. 초기와 같은 입덧 증상은 아내에게서 보이지 않았다. 임신 중기, 안정기라고 표현하고들 하는 시기. 배는 점점 더 불러오고 조금씩 태동도 느껴진다고 했다.


그런데 그런 신체의 변화보다 남편이 신경 써야 할, 더 중요한 부분이 있었다. 아내의 감정이었다. 나는 그걸 간과했던 것이다.


아내는 한동안 집에만 오면 직장에서의 스트레스를 호소했다. 그런 일이 워낙 빈번히 일어나는 곳이라 나는 `거긴 정말 왜 그렇게 바람 잘 날이 없냐`는 식으로 맞장구 쳐주고 넘어가곤 했다.


그러는 동안 아내는 스트레스가 점점 쌓여갔던 것 같다. 주말이 오기만을 기다리며 꾹꾹 누르기까지 했나 보다.

그 와중에, 남편이라는 사람은 주말인데 정오가 다 되어가도록 침실에서 나오지 않으니 감정이 폭발할 수밖에. 그런데 나는 그 순간, 좋은 남편이 되어주지 못했다. 며칠 째 잠을 잘 못 잔 탓인지 내가 피곤하다는 사실, 그런 아내의 모습에 내가 서운하다고 느끼는 감정이 먼저였다.

그때로 돌아가 그 상황이 똑같이 반복된다면, 나는 다르게 행동할 수 있을까?


좋은 남편이 되는 길은 멀고도 험하다. 육체적 피로 앞에 쉽게 굴복하고 마는, 나의 작디작은 그릇을 바꿔야 하기 때문이다.

임신 중기 이후에 생긴 우울증은, 잘 해소하지 못하면 아기를 낳은 후에도 6개월 정도 계속될 수 있다고 한다. 그리고, 그 기간을 최소화하고 우울증의 정도를 완화하는 데에는 배우자의 역할이 무엇보다 중요하다고 하니, 좀 더 책임감을 가지고 생활해야겠다는 생각이 든다.


임신과 출산으로 인한 신체적, 심리적 부담을 느끼고 있을 아내에게는 좋은 남편, 곧 태어날 둘째 아이에게는 좋은 아빠가 되어 주고 싶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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