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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허원준 Apr 04. 2019

'육아'가 '불안'한 사회

이틀 전, 아내로부터 충격적인 뉴스 하나를 접했다.

"이제 아이돌봄 서비스도 불안해서 못하겠어..."
"왜?"
"아이돌보미가 아이를 때렸다나 봐. 지금 청와대 청원에 올라왔대."
"..."
"영상도 있는데 그건 차마 못 보겠더라. 너무 마음 아플 것 같아서..."

아이돌봄 서비스. 아직 이용해본 적은 없지만 우리도 맞벌이 부부이기에, 그리고 최근 둘째도 생겼기에 고려해본 적이 있었다.

베이비 시터는 다른 루트를 통해서도 구할 수 있지만, 아이돌봄 서비스는 정부에서 시행하는 것이기 때문에 그나마 믿을 만하다고 생각했다.

그런 와중에 접한 '아이돌보미 아동 학대' 뉴스는 충격적일 수밖에 없었다. 나뿐만 아니라 전 국민이 경악을 금치 못했다. '금천구 아이돌보미'라는 검색어는 하루 종일 포털사이트 실시간 검색어 순위 상위에 노출되었다.

피해 아동의 부모가 올렸다는 유튜브 링크를 통해 영상을 확인해보았다. 분노가 치밀었다. 영상 속 아이돌보미(라는 이름의 아동 학대범)는 수 차례 아이의 뺨을 때리고, 이마를 쥐어 박고, 발로 차고, 또 폭언을 일삼았다. 아이는 울음으로 의사표현을 해보았지만 소용이 없었다.

폭행과 폭언은 계속되었다. 급기야 아이는 아이돌보미를 피해 도망을 가는 모습을 보였다. 기껏해야 이제 돌이 막 지났을 뿐인 아기가, 무서워서 도망을 갔다. 도망을.

정부에서 지원하는 보육 서비스조차도 그 실태가 이 모양인데, 저출산이 아닌 게 이상하지 않은가. 뭘 믿고 아이를 낳는단 말인가.




부모로서 아이를 키우다 보면 수많은 '불안함'을 마주하게 된다. 맞벌이 부부의 경우 더욱 그렇다.

내가 육아휴직을 제대로 쓸 수는 있을까. 쓴다면 얼마나 가능할까.
쓰더라도 그 기간이 끝나면 아이는 누가 봐주지.
출퇴근 시간에 맞춰 어린이집 등하원을 잘 해낼 수 있을까.
퇴근하고 아이를 데리러 갔는데 우리 아이 혼자 덩그러니 남아있는 건 아닐까.
베이비 시터를 구하면 괜찮을까. 그들은 믿을만할까.

불안과 걱정이 꼬리에 꼬리를 문다.

그런데 그 '불안함'이 좋지 않은 결과로 눈 앞에 나타나면, 죄책감에 시달리는 건 결국 부모다. 내가 아이를 직접 돌보지 않아서 그런 거라고, 자책한다.

왜 아이를 키우는 부모는 '불안감'을 필수로 달고 살아야 하는가.
왜 아이 가진 부모는 죄인이 돼야 하는가.

이번 사건 피해 아동의 부모가 올린 청와대 청원 글을 보면 '제도적 불임'이라는 표현이 나온다. 제도의 한계 때문에 아이를 낳고 싶어도 낳지 못하는 현상을 일컫는 말이다. 이런 표현이 등장한다는 건, 출산 및 보육에 관한 제도가 그만큼 부실하다는 의미일 것이다.

올해 초 '출산장려금 250만 원'을 정부 차원에서 지원하자는 얘기가 나온 적이 있다. 기가 차서 웃어버렸던 기억이 난다.

금전적 지원, 물론 있으면 좋다. 하지만 그렇게 해서 출산율을 높여보겠다는 건, 아이 키우기 좋은 환경을 만들어보겠다는 건 본질에서 한참 벗어난 생각이다. 그런 일시적 지원으로는 예비 부모들의 여러 가지 '불안감'을 말끔히 제거하지 못하기 때문이다.

그보다는 영유아 보육 환경 개선에 힘써야 한다. 어린이집 보육교사, 아이돌보미와 같이 어린아이들을 가까이서 보살피는 사람들의 자격 심사를 강화하고 교육 또한 철저히 해야 한다. 지속적 관리 감독은 필수다.

상습적으로 아이를 폭행하는 사람이 6년 동안 아무 문제없이 아이돌보미로 활동하는 일은, 더 이상 없어야 한다.



젊은 세대들에게 '왜 결혼하지 않느냐'라고, '결혼은 했으면서 아이는 왜 낳지 않느냐'라고, '그러니까 저출산이고, 위기인 거 아니냐고' 말하면 안 된다. 그건 순서가 잘못돼도 한참 잘못된 얘기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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