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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허원준 Jul 10. 2019

왜 바퀴벌레만 보면 소름이 돋을까

퇴근 후 저녁을 먹고 뒷정리를 하고 있었다. 세탁실 테라스 쪽으로 가 쓰레기를 버리려는데 바닥에 걸레들이 어지럽게 널려있는 게 보였다. 한쪽으로 몰아놓기 위해 손으로 스윽 걸레들을 밀었는데 큼직하고 시커먼 벌레가 빠른 속도로 기어 나왔다. 바퀴벌레였다. 나도 모르게 소리를 질렀다. 온몸엔 소름이 돋았다.


식탁에 앉아있던 첫째가 영문을 몰라 어리둥절해하며 물었다.


“아빠, 무슨 일이야?!”
“여기 바퀴벌레가 있어! 아빠가 제일 싫어하는 건데. 으으으으 바퀴벌레가 있다고!!”
“어디, 어디?! 나도 볼래!”


부모님과 같이 살았을 당시에는 이럴 때마다 엄마 아빠를 호출하곤 했다. 안 그래도 징그럽게 생긴 그 녀석을 때려잡아야 한다는 게 말처럼 쉬운 일이 아니었기 때문이다. 또 속도는 좀 빠른가.


그런데 이제는 내가 부모 입장이 되니 아이들과 함께 살고 있는 집에서 바퀴벌레가 도망가 숨는 꼴을 마냥 보고만 있을 수는 없었다. 테라스에 있는 슬리퍼가 눈에 띄었다. 조금 전 빨랫감 아래로 녀석이 숨어 들어가는 걸 확인했던 터라 그곳을 1순위 타격 포인트로 삼고 조심조심 다가갔다.


옷을 들추면 또 금세 도망갈까 싶어 대충 슬리퍼로 한번 내려쳐보았다. 명중하진 못했지만 효과가 있었는지 약간의 타격을 입은 듯한 녀석이 그리 빠르지는 않은 속도로 나와 다시 모습을 드러냈다.


정면 승부를 펼칠 차례였다. 녀석은 긴장을 했는지 시커멓게 그림자가 진 곳으로 들어가 몸을 숨기고는 움직이지 않았다. 회심의 일격이 필요한 순간이었다. 그런데 손에 들고 있던 슬리퍼는 명중률이 떨어져 무기(?)로 적합하지 않은 것 같다는 생각이 들었다.


특별한 자극이 없는 한 녀석이 도망가지 않을 거라고 확신한 나는 얼른 방으로 가 신문지를 집어 들었다. 다시 테라스로 돌아와 조금 전 녀석이 숨어 들어간 곳을 보니 역시나, 아직 그대로 자리를 지키고 있었다. 생각보다 겁이 많은 녀석이었는지도 모르겠다.


바퀴벌레와의 승부를 벌일 때는 한 번에 큰 타격을 입히는 것이 중요하다. 공격이 빗나가면 빛의 속도로 도망가버리기 때문이다. 녀석의 은폐 엄폐 능력은 생각보다 뛰어나서 한번 그렇게 숨어버리면 다시 찾아내기가 쉽지 않다.


신문지를 잡은 손에 힘을 쥐고 내려치기 전, 내 공격이 얼마나 정확하게 들어갈 수 있을지 대략의 각도를 가늠해보았다. 일격에 녀석을 제압하기란 쉽지 않아 보였다. 너무 구석진 곳에 몸을 숨기고 있었기 때문이다. 따라서 1차 공격은 녀석을 밝은 곳으로 유인하기 위한 것으로 목표를 수정했다. 이어지는 2차 공격부터가 승부수였다.


힘을 싣지 않고 1차 공격을 가했다. 위협을 느낀 녀석은 불빛이 닿는 쪽으로 기어 나왔다. 예상대로였다. 여전히 잽싸게 움직이는 녀석. 그 빠른 움직임에서 ‘사사삭’ 소리가 들리는 듯해 또다시 소름이 돋았다. 하지만 나는 침착하게 2, 3차 공격을 가했고 결국 나의 승리로 끝이 났다.


긴장이 풀리면서 온몸에 알싸한 기운이 맴돌았다. 바퀴벌레와 정면승부를 펼치고, 끝내 내 손으로 잡아내다니. 학창 시절 때만 해도 있을 수 없는 일이었다. 아니, 만약 내가 여태 부모님과 살고 있었다면 서른이 한참 넘은 이 나이에도 바퀴벌레를 보고 벌벌 떨었을지도 모를 일이다.




바퀴벌레는 왠지 모르게 징그럽게 느껴지는 그 생김새 때문에 많은 사람들로부터 혐오의 대상이 되고 있다. 나는 혐오를 넘어 '극혐'하는 수준이다. 아마 성장 과정에서 겪었던 바퀴벌레에 대한 경험들이, 일종의 트라우마로 남아있기 때문일 것이다.


가장 강렬한 기억은 아주 어렸을 적, 유년기로 거슬로 올라간다. 당시 우리 집은 전통시장 안쪽에 위치해 있었다. 그래서인지 집안에 벌레들이 많았다. 하루는 정말 엄지손가락만 한, 더듬이까지 포함하면 검지, 중지 크기 정도 되는 바퀴벌레가 나타났는데 나는 그날, 그 녀석이 날개를 활짝 펴고 요란한 소리를 내며, 나를 향해 날아오는 모습을 보고야 말았다. 아직도 그때를 떠올리면 머리카락이 쭈뼛 서는 것 같다. 그 정도로 끔찍한 장면이었다.


이후 나는 내 손으로 바퀴벌레를 잡아본 적이 없었다. 잡으려 노력하지도 않았고 심지어 보고도 못 본 척하기도 했다. ‘오늘 나는 널 못 본 것이다… 살려줄 테니 제발 그냥 지나가라...’ 하고 현실 부정에 정신승리까지 하기에 이르렀다.


이번에 바퀴벌레와의 승부에서 승리(?)해낸 경험이 과연 트라우마 극복에 도움이 되었을까? 그럴 거라고 기대하진 않는다. 바퀴벌레는 그렇게 호락호락한 존재가 아니라는 걸 알기 때문이다.


하지만 집에서 또 바퀴벌레가 나온다면, 나는 신문지를 돌돌 말아 손에 쥐고 녀석을 마주할 것이다. 어렸을 적 나의 엄마 아빠가 그랬던 것처럼.


(과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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