40대 회사원의 이야기 - 13. 앙버터 대첩! - 입사 동기
"빨랑 빨랑 안 오나"
"어우 저 성격 급한 건 변하질 않네. 이제 나이도 먹었는데 좀 찬찬히 하죠?"
"이런 어린놈의 쉬키가~ 하나 둘 셋 센다 얼른 뛰어온다 실시"
아 그냥 다시 집으로 가까?
까톡까톡
어젯밤. 설계 프로그램 못해서 그분께 책잡히며 욕을 먹는 현실 같은 악몽으로 잠을 설쳤다.
그냥 열대야라서 개꿈 꾼 거 치고는 너무 리얼해서 아침 출근길이 먹먹하다.
셔틀버스가 고장 나서 안오길 바라는 아침에
새벽 6시부터 카톡이 울려 된다.
"혹시 회사 일일까? 아침부터 인가?"
마음이 쿵쾅쿵쾅. 떨려오는 마음을 붙잡지 못한다.
"오늘 벙개하려는데 가능한겨?"
"휴~"
긴장이 탁 풀렸다. 아니 이 새벽에 카톡으로 올 내용은 아닌 것 같은데...
"아니 누가 새벽 6시에 당일 번개 카톡을 보내요?"
"급벙이야. 빨리 이야기 안 했다고 머라 하지 않기. 밥 사주게~"
"얼씨구~"
우리는 17년 전에 만났다..
17년 전 어느 여름날. 정장 입고 캐리어를 하나씩 끌고 신입 연수 가던 20대 후반의 청년들.
수더분하지도 않은 데다 그해 남자 애들 중 내가 제일 어려서 눈만 끔벅끔벅 어리바리 칠 때
날 챙겨준 이제는 함께 늙어가는 아저씨들이 있었다
불화살 동기님은 직선적이다. 빠르고 말도 화도 급하다. 근데 뒤끝은 1도 없다.
물대포 동기님은 그에 비해 어른스러운데 가끔 한 마디씩 "빵"하고 한방을 터트린다.
두 사람은 불화살이 활활 타오르려고 하면 어디선가 물 대포 한방으로 불타오르던 모든 상황이 정리되곤 했다.
처음에는 "둘이 싸우는 건가?" 난 얼어붙은 채로 눈치만 봤었는데..
기숙사 바로 옆방.
공통 교육 1달. 그리고 현장 실습 1달 - 거진 60일을 매일 보니
형들에게 모르는 것도 물어보고 의지하게 되었다. 지금 생각해 보면 그들도 이 회사 처음
다니기는 마찬가지였을 건데 머를 안다고 챙겨줬을까 하는 생각이 든다. 우선 고마운 사람인 거 인정.
그렇게 신입 연수가 끝나고 각자 부서 적응 하고 살다 보니 차츰차츰 희미해져 갔다.
그래도 빠지지 않고 결혼식도 가고 지나가다 보면 친근함의 험한 말들을 하면서
인연의 끈을 놓지 않고 살았지만 매일 보던 사람들이 부서 사람들로 바뀌다 보니 서로
소홀해지는 건 어쩔 수 없었다.
또한 코로나라는 시간은 모든 관계가 정리되었던 시간이었다.
응당 있었어야 할 의례적인 모음과 회식들. 모일 수 없고 모여서도 안 되는 시간이었기에
"언제 밥 한 번 먹자~" 이 말이 얼마나 어려운 말이었는지 알게 되었던 그런 시절.
멀어졌다고 생각했고 아니 잊혔다고 생각하며 살았다.
그런데도 이런 급벙을 쳐도 하나 어색하지 않으니 그냥
평생 볼 팔자 인가보다
언제나 이야기 주제는 동일하다.
17년 전 만나서 서로 어리바리했던 이야기들. 오늘의 고단한 회사 생활 이야기
지금은 곁에 없지만 그때 함께 하던 동기들의 최신 근황이야기.
돈 많이 버는 재테크 이야기, 가족과 함께 가기 좋은 여행지 이야기
다 고만고만한 사연에 시간 가는 줄 모른다.
저녁을 먹으며 그렇게 영양가 없는 수다를 끝도 없이 떨었지만
헤어지기 아쉬워 맥주 한잔을 더하자고 아무 술집이나 들어갔다.
"그래서 안주는 머 먹을래?"
"전 아저씨들이 시키는 거 아무거나 먹겠습니다"
불화살 아재가 불현듯 크게 외친다 "그럼 이거 앙버터 인절미 앙!"
물대포 아저씨가 나지막이 혼잣말하듯이 읊조린다.
'무슨 앙버터를 처먹겠다고!'
.
.
(일동 물대포 아재를 쳐다본다)
"아 쏘리~! 마음속 말이 그냥 튀어나와 버렸어!"
.
.
"휴 내가 참는다~"
불화살 아재는 뒤끝 없이 카메라를 켠다~
"자 그럼 기념사진이나 한방"
물대포 아재는 신속하고 소리 없이 테이블 위에
놓여있던 앙버터 인절미를 살포시 집어 사진 각도를 잡는다. "치즈~~ 스마일~~ 찰칵!"
우리의 그날 추억은 앙버터와 함께 마무리되었다.
잠시 동안 침묵이 흐르고
서로 얼마나 깔깔 웃었던지 서로 집에 가는 내내 톡으로 앙버터만 이야기해도 제껴대며 웃어댔다.
서로 격 없이 편하게 이야기할 수 있는 사람들이 여기도 있었는데 나는 잊고 살았구나.
누군가의 아빠, 남편 그리고 아들
내 가정을 지켜야 하는 가장으로서의 무게감
17년 전 스물 후반의 청년들보다 지켜야 할 것도 해야 할 것도 많아지고 몸도 마음도 버거워졌지만
그때보다 우리는 코코는 소리만 더 커졌을 뿐 우리들의 존재는 변한 건 아무것도 없다.
"앙버터는 이제 항상 시킬 거다! 그리고 니들 다 내 와이프한테 이를 거야~"
저 형 이제는 뒤끝 생겼나 보다.
앙버터만큼 맛있었던 하루
또 봅시다! 곧!