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김혜령 Apr 03. 2018

8화 걔라고 그러고 싶었겠니


사람을 미워하는 일에 에너지를 쓰고 싶지 않다.

이건 오랫동안 내가 지향해온 인간관계의 주춧돌쯤 되는 생각이다.

부딪히는 것이 싫고 누군가를 까닭 없이 미워하고 싶지 않아서다.

내가 착한 인간이기 때문도 아니고 

그냥 누군가를 미워하는 것이 나를 너무나 불편하게,

더욱 신경 쓰이게 만들기 때문이다.


마치“흰곰에 대해 생각하지 마세요!” 하면 

흰곰 먼저 퍼뜩 생각나는 것과 같다.

아무튼 그래서 되도록이면 누군가를 싫어하지 않고자

너무 많은 사람과 부대껴야만 하는 일들은 피하는 편이다.


남들은 누군가를 싫어하지 않으려 좋은 점을 더 찾아보는 등의

아름다운 방법을 선택하는 것 같지만, 나는 역시 그런 대인배는 아니기 때문에

되도록 타인이 부대낄 수밖에 없는 구조라면 끼지 않는,

말하자면 ‘원천봉쇄’의 방법을 통해 이를 실현해왔다.

 

하지만 프리랜서인 나에게도 사람들과 어울려야만 하는 상황이 생기게 마련이다.

단순 사교 현장에서도 그렇고 업무를 할 때에도 타인은 늘 존재하고 종종 갈등 상황이라든지 

누군가가 미워지는 사소한 사건도 내 마음속에서 일어난다.

그럴 때 내가 요즘 택하는 생각의 틀은 이것이다.


‘걔라고 그러고 싶었겠니’ 하고 생각하는 것.

이것으로도 모자라면 ‘걔가 알았으면 그랬겠니’까지 덧붙이면 꽤 완벽하다.

 

그 사람이 나보다 유독 악하고 비열한이라서 나에게 스트레스를 줄 것도 아닐 테고 

어쩌면 내가 옹졸하게 단 몇 마디 혹은 행동의 일부만으로 그이를 오해하거나 미워했을 가능성도 있다.

그래서 이런 문제로 화가 났을 때에는 혼자 궁시렁거리거나 믿을 만한 친한 지인에게 몇 분간 

하소연 타임을 가진 후에 저 말을 덧붙이기 시작했다.


가령 이런 식이다(많이 순화하여 적을 수밖에 없음을 이해해주시길).

 

“얼마 전에 같이 일한 누구는 제멋대로 일정을 바꾸더니 말투도 

무슨 자기네 부하 직원 부리듯이 하고 말이야. 열받아서 진짜.

근데 뭐 그 사람이라고 그러고 싶었겠니. 내가 이렇게 열받아 할 걸 알았다면 

그 사람도 그러지 않았겠지 뭐.”

 

이렇게 도를 닦는 것이다. 자못 자문자답의 형식으로 느껴져

주변인이 당황할 수는 있겠으나 반복 재생산될 나의 하소연으로부터 

주변인을 지킬 수 있는 좋은 방법이다.

남을 미워하는 일도 줄이고, 내 하소연을 들어야만 하는 

죄 없는 주변인들의 귀도 보호하고, 일석이조인 것이다.

 

이 두 마디를 덧붙임으로써 나는 꽤나 효과를 보았는데 

남이 나에게 하소연을 하는 상황에서는 그닥 효과적이지 않았다.

몇 차례 어머니에게 임상 실험을 해보았는데 

말리는 시누이가 더 미운 꼴이 되기 일쑤였으니 

이 점은 간과하지 마시고 꼭 자신에게만 사용하시길 바란다.

이전 07화 7화 실연 요정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