호주로 돌아와 처음 한 일, 부동산에서 배운 호주의 방식
좋은 기회로 호주의 부동산에서 일을 할 수 있는 기회가 있었다.
지금으로부터 약 두 달 전부터 파트타임으로 근무를 시작했고, 짧지 않은 시간 동안 현지의 시스템과 문화를 직접 경험하고 있다.
호주부동산, 시스템 중심!
한국의 부동산 거래가 '사람 간의 신뢰'와 '노하우'에 의해 움직인다면,
호주의 부동산은 보다 명확한 규정과 문서화된 절차를 중심으로 돌아간다.
모든 과정은 기록으로 남겨져야 하며, 그 기록이 법적 근거로 기능한다.
예를 들어, 세입자의 입주 전 점검 (Entry Condition Report)과 퇴거 시 점검 (Exit Condition Report)는 매우 꼼꼼히 작성된다.
벽에 생긴 작은 흠집부터 전구의 작동 여부까지 항목별로 사진을 첨부하며, Licensee in Charge의
서명 후 시스템에 업로드 된다.
이 과정이 철저해야 나중에 보증금 반환 시 불필요한 분쟁이 발생하지 않는다.
부동산 일을 시작할 수 있는 최초 단계의 법적 자격은?
나의 경우, 호주 부동산 Certificate of Registration 의 소지자이다.
호주 NSW에서 부동산 관련 일을 하려면 반드시 등록된 에이전트(Assistant Agent) 로 일해야 하며,
그 첫 단계가 바로 “Certificate of Registration (COR)” 취득이다.
이건 말 그대로 부동산 사무소(licensed agency) 에서 일할 수 있도록 주 정부(Service NSW)에 등록하는 입문 라이선스이다.
COR 단계에서 할 수 있는 일은?
현재 내가 갖고 있는 기본 자격증 내에서 할 수 있는 일은 다음과 같다.
(1) Sales Assistant / Leasing Assistant
오픈홈 운영, 리스팅 준비 보조, 광고 게시, 고객 문의 대응
직접 계약은 불가, 매니저나 라이선스 보유자의 지시하에 활동 가능
(2) Property Management Assistant
인스펙션(inspection) 보조, 테넌트 연락, 수리 요청 정리, 임대 관련 서류 준비
수리 승인·계약 변경 등 법적 결정권 없음
(3) Administration / Office Support
데이터 입력, 문서 관리, 키 관리, 임대료 수납 내역 정리, 이메일 대응
백오피스 중심 실무 지원
(4) Entry-level Real Estate Agent Trainee
고객 응대, 임대·매매 보조, 현장 방문
Licensed Agent의 감독 아래서만 가능
그래서 나는 주로 고객 응대, 인스펙션 지원, 인스타그램 등에 광고 올리기 등의 일들을 주로 하고 있다.
호주 부동산에서 일을 하면 좋은 점?
개인적으로, 호주로 돌아온 지 얼마 되지 않은 시점에서 호주 부동산 일을 경험하게 되어 가장 좋은 점은, 호주 지리/ 지역에 대해 정말 많이 알게 된다는 점이다.
처음에는 거리 이름조차 낯설고 교통 동선조차 감이 잡히지 않았다.
하지만 매일 다양한 매물과 주소를 다루다 보니, 자연스럽게 시드니 각 지역의 구조와 생활권이 머릿속에 그려지기 시작했다.
예를 들어 ‘Lidcombe은 오래된 주택가와 신축 아파트 단지가 공존한다’,
‘Epping이나 Eastwood은 교육 인프라 중심의 가족 단지’ 같은 지역적 특성이 자연스레 눈에 들어온다.
단순히 지명만 아는 것이 아니라, 그 지역의 생활감·교통 편의성·주거 수요의 흐름까지 감각적으로 익혀간다는 점이 이 일의 큰 매력이다.
또한 부동산 업무를 하다 보면 사람을 관찰하는 눈도 생긴다.
같은 지역의 집이라도 어떤 사람에게는 ‘직장과 가까운 실속형 주택’이 되고,
어떤 사람에게는 ‘아이 학교를 위한 장기적 투자처’가 된다.
그들의 대화 속에서 주거에 대한 가치관, 삶의 우선순위, 문화적 차이가 드러나고,
그것을 이해하는 과정에서 자연스럽게 호주의 라이프스타일을 배워가게 된다.
그리고 무엇보다 호주 부동산은 시스템이 투명하고 절차가 명확하다.
수리 요청, 인스펙션, 계약 절차 등 모든 과정이 문서화되고,
이메일을 통해 공식적으로 기록이 남는다.
이런 구조 덕분에, 일을 배우는 입장에서도 책임의 경계가 뚜렷하고 업무 프로세스를 단계별로 익히기 쉽다.
하루하루의 작은 업무들이 단순 반복이 아니라, 하나의 구조를 이해하는 학습 과정처럼 느껴진다.
개인적으로는, 호주에서 살아간다는 실감을 가장 크게 느끼는 순간이 바로 이 일을 할 때다.
부동산은 단순히 건물이나 계약이 아니라, 사람들의 삶이 이어지는 공간을 다루는 일이기 때문이다.
어느새 거리의 표지판이 익숙해지고, 각 지역의 이름이 지도 속 주소가 아닌 ‘사람이 사는 동네’로 다가온다.
이 과정이야말로 호주 사회에 자연스럽게 녹아드는 가장 생생한 경험이 아닐까 싶다.
처음 호주에 온 이민자로서는 잘 알지 못했던 부분들도 많이 알게 된다.
예를 들어, 이 멋지고 으리으리한 아파트인 올림픽 파크의 Opal tower는 사실상 거의 모든 유닛들이 현재 에어비앤비로 운영되고 있다고 한다.
사실 몇년 전 부실공사 때문에 사고가 났던 아파트라서 현지인들은 실거주를 꺼려하기 때문에
에어비앤비나 숙박 업소로 이용된다.
이 아파트 앞에는 큰 Stadium이 있는데, 세계적으로 유명한 가수나 스타들이 공연을 하는데 자주 이용된다. 그래서 그런 빅이벤트들이 있을 때마다 관광객들이 몰려들어 숙박업소로 매우 인기있는 지역이라고 한다. (나도 몰랐는데 몇 주 전 여기서 트와이스 공연도 했다구..!)
사실 이런 내용들은 부동산에서 일하지 않는다면 알지 못하는 내용들인데
손님들과 이야기하거나, 손님들과 에이전트들이 이야기하는 내용들을 보면서 접하게 된다. 매우 흥미롭다!
세입자 권리에 대한 인식
호주 부동산 시장에서 인상 깊었던 점은 세입자의 권리가 매우 강하게 보호된다는 점이었다.
수리 요청이나 불편 사항이 발생했을 때 세입자는 주저하지 않고 요청하며, Property Manager는 일정 기한 내에 대응해야 한다.
예를 들어 수도 누수, 전기 문제, 곰팡이, 가스 누출 등은 ‘긴급 수리(Urgent Repair)’로 분류되어, 즉시 조치가 이루어져야 한다.
대응이 지연될 경우, 세입자는 주택청(Fair Trading)에 신고할 수 있다.
또한 세입자 점검(Inspection)은 반드시 사전에 공지되어야 하며, 정해진 횟수를 초과해 방문할 수 없다.
모든 방문 일정은 이메일로 사전 통보되어야 하고, 세입자가 거부할 권리도 명확히 보장된다.
이러한 제도적 구조 덕분에 ‘주거 공간은 개인의 사적 영역’이라는 인식이 자연스럽게 정착되어 있다.
갈등이 해결되지 않을 때 가게 되는 곳 'NCAT'
부동산에서 일을 하게 되면 세입자와 집주인, 그리고 부동산 간의 갈등 상황을 자주 접하게 된다.
단순히 집을 빌려주고 빌리는 일 같지만, 그 안에는 생활 방식, 책임의 범위, 그리고 서로 다른 기대가 얽혀 있다.
누군가에게는 작은 수리 문제일 수도 있고, 다른 누군가에게는 일상에 큰 불편을 주는 사안이 되기도 한다.
그렇다 보니 부동산의 역할은 단순한 중개자가 아니라, 감정과 법 사이의 균형을 잡는 조정자(mediator)에 가깝다.
최근에는 몇 차례 NCAT (New South Wales Civil and Administrative Tribunal)의 Tribunal을 참관할 기회가 있었다.
이곳은 임대차 분쟁이 끝내 조정되지 않을 경우, 마지막으로 문제를 해결하는 공식적인 법적 절차의 장이다.
생각보다 많은 사람들이 이 과정을 통해 자신의 권리를 주장하고 있었다.
세입자는 “약속된 수리가 이행되지 않았다”고 말하고,
집주인은 “예정된 비용 부담을 초과했다”고 항변한다.
그 사이에서 판사는 양측의 증거를 확인하고, 계약서·이메일·사진 등 모든 기록을 근거로 결정을 내린다.
흥미로웠던 점은, 이 절차가 비난이나 감정의 대립이 아닌 ‘증거의 대화’로 진행된다는 것이다.
누가 더 크게 목소리를 내느냐가 아니라,
누가 더 명확한 기록과 근거를 가지고 있느냐가 결과를 좌우한다.
그리고 그 ‘기록’을 관리하고 체계화하는 사람이 바로 부동산이다.
즉, 우리는 단순히 열쇠를 관리하는 사람이 아니라, 사람의 권리를 지켜주는 데이터의 관리자이기도 하다.
NCAT을 지켜보면서 느낀 것은,
이 사회가 분쟁을 피하려 하지 않고 공정하게 해결할 수 있는 시스템을 만들어뒀다는 점이다.
세입자든 집주인이든 누구나 자신의 입장을 법적으로 주장할 수 있고,
그 과정에서 감정보다 절차가 앞선다.
이는 곧 호주의 부동산 문화가 ‘제도 속 신뢰’를 중심으로 유지되고 있다는 사실을 보여준다.
이런 장면들을 가까이에서 보면서,
나는 ‘부동산’이라는 일이 단순히 집을 사고파는 산업이 아니라,
공정한 사회의 한 축을 지탱하는 시스템적 역할임을 깨닫게 되었다.
서류 하나, 이메일 한 줄, 점검 리포트 한 장이 모두 사람의 삶과 직결되어 있다는 사실을 실감할 때,
이 일이 결코 가벼운 일이 아니라는 생각이 든다.
결국 부동산의 본질은 공간이 아니라 사람이다.
그리고 그 사람들 사이의 관계를 투명하고 공정한 절차로 이어주는 것,
그것이 호주 부동산에서 일하며 내가 배우고 있는 가장 중요한 가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