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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샤론의꽃 Nov 26. 2024

10. 그는 나에게 부자냐고 물었다

나는 부자다고 대답하고 싶었다

“Are you rich?”


비자카드를 받기 위해 이민국에서 기다리고 있는 나에게 당당자가 다가와서 묻는다. 

살면서 거의 받아보지 못한 질문이라 설마 나에게 묻는 질문인가? 싶어서 주변을 둘러봤더니 모두 업무를 보고 있는 직원들뿐이다. 

그는 다시 한번 묻는다. 당신 부자냐고. 

나는 애매모호한 미소 (이를 두고 흔히 썩은 미소. 썩소라고 하지)로 대답을 대신한다. 

정색을 하며 Are you kidding me?라고 하고 싶었지만 썩소로 나의 의도를 표현했다. 

나의 썩소에 그 역시 애매모호한 미소, 썩소를 보였다. 

아!! 그제야 나는 그 질문의 의도를, 그 썩소의 의미를 눈치챘다. 

“당신이 우물을 팠다는 이야기를 들었다. 왜 당신의 선의를 그곳에서만 베푸냐. 좀 더 많은 이들에게 베풀어라.”

즉 그는 ‘나에게 너의 선의를 베풀어라. 뇌물을 달라!!’였다. 


이미 나는 비자를 받기 위해 복잡한 행정 절차를 모두 밟았고 

(여기 가라. 저기 가가. 이것 떼와라, 저것 떼와라. 어찌나 요구상황이 많든지) 

행정절차를 도와주는 현지 목사님의 수고비와 진행비가 포함되어 있는 천 달러가 넘는 비용도 지불했다. 

일주일 내내 지워지지 않았던 퍼런 잉크 열 손가락 가득 묻혀 지문도 찍었고, 사무용품과 건축자재를 함께 파는 가게에서 보정은 상상도 할 수 없는 증명사진도 찍었다. 

(내 인생 최악의 증명사진이었다. 이 사진이 박힌 비자카드는 공포영화 소품으로도 충분히 사용될 수 있겠다 싶을 정도로 무서웠다.) 

그리고 마침내 카드가 나왔다. 

이제 나는 이민국에서 비자카드만 받으면 마음 놓고 어디든 무엇이든 마음 놓고 할 수 있는 권리를 부여받게 되는 것이다.   

그런데 나의 비자카드를 손에 쥔 관리자가 ‘너 이 비자카드 받으려면 나에게 뇌물을 줘야 해’라며 딴소리를 한다. 


나는 단호하게 이야기했다. 

I'm not rich. So I can't pay any more

이에 그는 비자를 내어줄 수 없다며 자리에서 일어나 나가버렸다. 

나의 비자카드를 자신의 호주머니에 집어넣은 채 말이다. 

뭐 이런 개 같은 경우가 있나? 

순간. 화가 난 나는 그를 붙잡고 이건 부당한 일이라고 따지고 싶었다. 

그러면서 한국 가?라는 생각도 했다.

비자신청을 하면서 너무 많은 에너지를 쏟아부었기 때문이었다.       

뇌물은 정말 목에 칼이 들어와도 주기도 받기도 싫다. 

내가 살면서 한 번도 해보지 않은 것 중에 하나가 뇌물을 주고받지 않는 것이었다. 

(사실, 한 번도 해보지 않은 것이 수없이 많긴 하다.)

아이가 어렵게 들어간 예술 고등학교를 끝내 졸업하지 못하고 검정고시를 봐야 했던 이유 중 하나가 노골적으로 봉투를 원하는 교사에 반응해 줄 수 없었던 나 때문이었다.

(지금도 내 아이가 그 교사의 제자가 되지 않은 것에 어떠한 후회도 없다.)  

 

뇌물을 주지도 받지도 않았다는 것은 나의 자존심이자 자부심이기도 했다. 

(사실, 살다 보니 뇌물을 받을 일도 줄 일도 없었다)

그런데  대가를 모두 치르고 발급받은 비자를 받기 위해 부당한 뇌물을 줘야 한다고?     


나의 주머니가 쉽사리 열리지 않을 것이다를 알게 된 그는 더 완강하게 나왔다. 

600 달러를 내고 스페셜 비자를 다시 받아야 된다고 한다. 

"누가 모를 줄 알고? 그거 니 주머니에 넣겠다는 거잖아!!!" 

부당함에 싸우고 싶었지만 행정절차를 도와준 현지 목사님이 그를 설득해 보겠다며 나를 달랬다. 

그리고 잠시 후 어떻게 설득을 했는지 100달러만 내면 카드를 주겠다고 해서 타협을 봤다고 한다. 

나는 "누구 마음대로 타협을 하냐?" 며 오히려 화를 냈지만 결국 100달러를 낸 후 비자카드를 받을 수밖에 없었다.  

나는 평생을 지켜온 자부심에 흠집이 생긴 것 같아 화가 났고, 부정부패가 판치는 이놈의 나라 라며 악담도 퍼부었다.      

“뇌물이 아닌 선물을 주었다고 생각해요. 사실 그들도 우리의 편의를 봐주긴 했어요”

그게 무슨 소리인가? 했는데 

이곳에는 관광비자로 있는 관광객들은 가족이라는 것을 증명한 이의 집에만 머물려야 한다고 한다.  

즉, 관광객은 타인의 집에 머물면 안 되는 것이다. 

관광객들은 무조건 숙박시설을 이용해야 하는 것이 이곳의 룰이다.

뭐 이딴 룰이 다 있나 싶지만 로마에서는 로마의 법을 따르듯 현지의 법을 따라야 한다. 

그런데 나는 관광비자로 있으면서 선교사님의 선교센터에서 지내고 있으니 어떻게 생각하면 나 역시 룰을 어긴 것이고 그들은 뻔히 알고도 편의를 봐준 것이다. 그러니 감사의 보답을 한 거라고 생각하는 게 어떻겠냐는 선교사님의 말에 내 마음의 가시들이 그제야 조금씩 뽑혀 나가는 것 같았다.      


“이해하기 어렵죠? 한국과는 많이 다르니까 삶의 지혜와 분별함이 필요해요. 하지만 우리에게 필요한 것은 긍휼 함이죠. 긍휼 한 사랑이 부정과 부패보다 힘이 더 강하니깐요”


나의 자존심에 생채기를 내었다고 성질내고 이해할 수 없다고 역정을 내고 이도 모자라 확 짐 싸고 가버릴까 옹졸하게 반응했던 좀 전의 내가 부끄러웠다. 

하늘의 뜻을 깨닫는 지천명의 나이가 되어도 하늘의 뜻은 고사하고 사람 하나 품지 않으려고 하는 나의 인색하고 가난한 마음을 또다시 들켜버린 것이다.    

다시 한번 묻는다. 

“나 여기 왜 왔지?” 

분명한 것은 여행하러 온 것은 아니라는 것이다.   

여행자로 왔다면 마음에 안 들고 기분 나쁘면 언제든 짐 싸고 가면 그뿐이다. 

그리고 SNS를 통해 탄자니아에서 겪은 부당함에 대해 리뷰를 남길 수도 있고 여행 어땠어? 묻는 이들에게 냉소적으로 입술을 비틀면서 고개를 으쓱할 수도 있다. 

하지만 나는 그러고 싶지 않다. 

순간 화가 나서 이놈의 나라 확 가버릴까 보다. 싶었지만 1년 동안의 이곳에서의 삶을 포기하고 싶지 않다. 

그렇다고 선교사로 거창한 사역을 감당할 자신도 없다. 

그저 나는 이곳에서 살고 싶은 것이다. 나에게 있는 사랑을 나눠주면서 말이다. 

그것이 내가 살아가야 하는 이유. 나의 work permit 인 것이다.      


이 땅에 왜 왔냐는 나의 질문에 [사랑을 하기 위해서 왔잖아.]라고 대답하기 위해 나는 마음의 부자가 되어야 할 것 같다.  


누군가 또다시 당신 부자야?라고 물으면 응 나는 부자야. 그러니 당신 뭐가 필요해? 내가 도울 수 있는 건 도울게.라고 대답할 수 있었으면 좋겠다.   

(하지만 뇌물만큼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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