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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샤론의꽃 Nov 25. 2024

9. 위대한 유산

사랑과 사랑이 만나 생명수

마침내 깊은 땅 속에서 잠자고 있던 물이 땅 위로 솟구쳤다. 

땅을 파기 시작한 지 12시간 만이었다. 

킬리만자로에서 흘러나오는 물을 품은 땅이기에 쉽게 물이 나올 것이라 기대는 했지만 쉽지 않은 작업이었다. 

약한 지반은 자꾸만 무너졌고 분명 엄청난 양의 물이 있는 건 알겠는데 무너지는 지반에 막혀 물길은 쉽사리 잡히지 않았다. 

기대했던 것과 달리 물을 만나지 못할 수도 있었다.  

하지만 마침내 물길이 잡혔고 물줄기가 터졌다. 

우기 때 받아놓은 빗물로 건기를 견뎌야 했던 마을 주민들이 마음 놓고 깨끗한 물을 마시고 사용할 수 있는 우물을 파고 싶었던 선교사님의 6년 기도가 응답되는 순간이었다. 


한밤중에 솟구친 물줄기가 그려낸 풍경은 작품사진이나 다큐멘터리 방송에서나 볼 수 있는 장관이었다.

오랜 가뭄으로 어려움에 처한 이들에게는 그야말로 생명수와도 같은 물이었다. 

이제 더는 석회가 섞여 있는 더러운 물을 마시지 않아도 된다.

누구보다  이 물의 혜택을 가장 많이 받게 될 이는 벼룩에 뜯긴 자국으로 온몸이 곪아터진 나 자신이었다. 

이렇게 ‘아프리카 아이들을 위해’ 자신이 가진 전 재산을 흘려보낸 무명작가의 유산이 빛을 보게 되었다.      


시에라리온에서 다녀온 후, 암으로 투병 중인 무명작가의 이야기를 듣게 되었다.

그녀는 끝내 숨을 거두었고, 그녀의 유언대로 그녀의 가족들은 ‘아프리카 아이들을 위해 써달라며’ 그녀가 남긴 전재산 200만 원을 생면부지인 나에게 남겼다. 

난감했다.  

물론 감사했지만 도움이 필요한 수많은 아프리카 아이들이 있는데 도대체 어떻게 사용해야 할지 나로서는 딱히 방법이 떠오르지 않았기 때문이었다. 

더 의미 있는 일에 사용되어야 한다는 부담감도 있었다. 


굶주린 아이들의 한 끼의 양식이 될 수도, 교육이 필요한 아이들의 한 권의 책이 될 수도, 내전으로 부모를 잃은 난민 아이들의 작은 거처의 보탬의 될 수도 있을 것이다. 

그녀의 헌금이 필요한 곳이 너무나 많아서도 고민이었다. 

어디에 어떻게 사용해야 할지 기도하고 고민했지만 그곳이 어디든. 누구이든. 상관이 없는 것 같기도 했다.  

하지만 좀 더 가치 있는 곳에 보내고 싶었다.

기부나 헌금이었다면 이렇게 고민하지 않았을 것이나 이제는 이 세상에 없는 한때는 이 땅에서 살다 간 한 인생이 남긴 유산이지 않은가.  

그렇게 고민만 하다가 그녀의 유산은 어디에도 흘러가지 못하고 통장에서 1년을 넘게 갇혀 두었다. 

가끔 유산의 존재를 잊기도 했다. 

그러다가 가끔씩 그녀의 유산이 생각이 날 때면, 과연, 이 유산이 어디로 어떻게 흘려갈까? 정답을 내릴 수 없는 질문을 나 스스로에게 하기도 했는데 결국에는 물 때문에 어려움에 처한 탄자니아 시골 마을 사람들의 생명수가 되었다. 

사실 선교사님으로부터 마을에 우물이 필요하다는 것을 들었을 때 그녀의 유산이 생각나기는 했지만  200만 원으로는 우물을 파기엔 턱없이 부족한 재정이었다. 

어떻게 해야 하나 망설이고 있었는데 그녀가 생전에 함께 예배드리고 기도했던 공동체인 방송작가 신우회에서 마음을 모아 주었다. 

그녀의 유산이 마중물이 된 것이다. 

순식간에 우물을 팔 수 있는 필요한 재정이 채워졌고 나는 그 헌금을 들고 탄자니아로 오게 된 것이었다. 


그런데 그 물이 목마른 이들의 목을 축여주기까지는 좀 더 시간이 필요했다.

지하에서 물만 나오면 만사가 해결될 줄 알았는데 아니었다. 

전기로 물을 끌어올려야 했고, 끌어올린 물을 저장해야 했고, 많은 이들에게 물길을 닿게 하기 위해서는 땅을 다시 파서 수도관을 묻어야 했다. 

물이 터져 나온 뒤 보름이 지나고서야 우리는 물을 마실 수 있게 되었다. 

이 과정을 통해 새삼 한 송이의 국화꽃을 피우기 위해 봄부터 울어야 했던 소적새의 인고를 배운다. 

한잔의 물을 통해 수많은 이들의 사랑을 만난다. 

불과 몇 년 전만 하더라도 오늘을 상상할 수 있었겠는가?

얼굴도 모르는 이가 남긴 유산을 받고 당황했던 그때 오늘의 순간이 있으리라 짐작도 하지 못했다.

나의 핸드폰에 깨끗한 물줄기 앞에서 환하게 웃고 있는 아프리카 아이들의 사진이 저장되리라 생각도 못했다.   

막연했기에 두려움이 되기도 했던 기대가 소망이 되어 이렇게 생명수가 되었다. 

무명이었지만 하나님 앞에서는 찬란한 존재였던 한 작가의 마중물 같았던 헌신이 많은 이들의 사랑을 만나 강을 이루고 탄자니아 작은 마을의 생명수가 되었다.

이 생명수를 마시고 아이들은 자랄 것이다. 

그 사랑의 유산은 아이들의 희망이 되어 주리라 믿어본다. 

이 믿음이 나의 소망이 되어주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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