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 마왕님 신해철
마왕 신해철을 생각하면 가슴이 아픈 사람이 참 많을거라 생각한다. 나는 그가 진짜 오래 오래 살면서 삐딱이 같은 소리도 자주 하고 속이 뻥 뚫리는 록음악도 계속 들려줄 줄 알았다. 그런데 그렇게 허무하게 떠나버리다니..
N.EX.T Featuring 신해철 콘서트는 내 첫 공연이었다. 2003년 나는 돔아트홀이라는 곳에 중고신입으로 입사했고 거기서 지금 내가 알고 있는 공연 전시 행사의 기본을 다 배웠다.
누구나 첫 번째는 다 소중하고 남다르고 애잔하겠지만 내 첫 공연은 마왕 신해철의 공연이어서 더 마음에 깊이 남는 것도 같다. 그리고 무엇보다 나는 그 공연 중 마왕에게 아주 큰 빚(나만 알 수도 있겠지만)을 졌다.
그 날 우리 팀은 이미 거의 일주일을 밤을 새다시피하며 공연을 준비했음에도 장난아니게 바쁘게 움직이고 있었다. 2천석의 제법 큰 공연장인데 기획팀 실무 인원이 겨우 세 명이었으니 사실 그럴 수 밖에 없었는데 그 때는 그런 것도 모르고 혹시라도 실수할까봐 잔뜩 긴장한 채 물 한 모금 못 마시고 현장에 있었다.
정말 한 가지도 빠뜨리지 않고 잘 챙기고 있다고 잠시 한 숨을 돌리려던 찰라, 사건은 터지고 말았다.
대부분의 록밴드 공연이 그러하듯 아무리 좌석제의 공연이라도 결국은 모든 관객은 전부 일어서서 공연을 즐기게 되어있다. 특히나 무대 앞까지 확 밀려온 관객들로 무대 앞쪽은 스탭도 가기 힘든 상황이 되어있는데 열정적으로 공연하던 넥스트 기타리스트가 특수효과에 사용하려고 무대 맨 앞에 놓아 둔 화염방사기를 관객 방향으로 쓰러뜨린것이다. 게다가 공연 순서 상 바로 다음에 불기둥이 나올 차례이고 워낙 시끄럽고 무전기조차 잘 안들려서 특수효과 감독님과 소통도 안되는 상황이었다. 만약 저 불이 관객 쪽으로 나온다면...상상할 수도 없는 대형 참사인 상황이었다. 어쩔 줄 몰라 동동거리며 관객들을 비집고 앞으로 가보려는 나를 관객들은 새치기하는 관객인 줄 알고 밀쳐내기만 했다. 아무리 스탭 비표를 들고 저 스탭인데 좀 가게 해주세요 라고 외쳐도 아무도 들을 수 없는 그야말로 아찔한 상황이었다. 그런데 이 상황은 내가 상상하지도 못한 방법으로 나이스하게 해결이 되었다. 무대 앞 까지 나온 마왕님은 쓰러져있는 화염방사기를 힐끗 보더니 정말 아무도 눈치채지 못하게 마치 무대 퍼포먼스의 하나인 냥 세상 세련된 몸짓으로 그 화염방사기를 발로 툭 차서 세워놓았다.
당시 그 공연을 맨 앞줄에서 봤던 사람들도 그 당시가 얼마나 긴박한 상황인지 몰랐을 것이다. 하지만 나는 마왕님을 생각할 때 마다 대형사고로부터 공연장을 지켜낸 히어로로 기억된다.
마왕을 생각하며 검색하다 우연히 찾은 사진이 있다. 진짜로 마왕은 저 동네에서 저러고 있을 것 같다.
저기 있는 저 모든 아티스트를도 마왕의 매력에 흠뻑 빠지리라 확신한다.
그립다 마왕