짥게 기억나는 아티스트들의 뒷 얘기
1. 2008년 옥슨80 공연
백스테이지를 정말 사랑하지만 내가 무대에 나가는 것은 정말 힘들어한다. 사실 뭐 내가 무대 앞에 나갈 일은 거의 없어서 별로 고민할 거리도 아니지만 이렇게 가끔 나를 무대 위로 부르는 아티스트들이 계신다.
홍서범&조갑경님이 바로 그랬다. 공연 중 행운번호 추첨 시간이 있었는데 추첨박스를 테이블 위에 올려드린다고 했는데 굳이 굳이 내가 들고 나오라는 거다. 당시엔 나는 일개 조연출이라 감독님과 아티스트가 시키는 일은 다 해야하는 상황이었고 어쩔 수 없이 추첨박스를 들고 쭈뼛쭈뼛 나가 추첨하시는 두 분 옆에 삐질거리며 서 있었다.
이 날 이후 내가 무대에 불려나간 때는 송창의 배우님 팬미팅 때 딱 한 번 빼고 전혀 없었다. 아마 앞으로도 거의 그렇지 않을까 싶다.
2. 2010년 야나체크 오케스트라 내한공연
야나체크 오케스트라 내한공연은 내가 아주 잠시 한겨레 신문 문화사업국에 있을 때 진행했던 공연이다. 마침 무리카미 하루키의 책 1Q84가 출간된지 얼마 안 되었을 때라 꽤 많은 사람들이 야나체크 라는 작곡가의 이름에 반응했었다. 당시 공연의 협연자는 피아니스트 서혜경 선생님이셨는데 유방암 치료 후에도 여전히 파워 넘치는 라흐마니노프를 보여주셔서 많은 사람들이 큰 감동을 받았다.
사실 공연 전 오케스트라와 서혜경 선생님의 첫 협연 리허설 당시 지휘자와 서혜경 선생님 사이에 약간의 문제가 발생했다. 음악적 견해의 차이 때문인 듯 했는데 꽤 예민하게 제법 긴 실랑이가 이어졌기에 조마조마한 마음으로 감히 끼어들지도 못한 채 지켜보고 있었다. 그런데 웃기려고 의외의 방향으로 잘 정리가 되었다! 지휘자와 서혜경 선생님의 대화 중 서혜경 선생님께서 "내가 줄리어드에서 어쩌고..."라고 말 하시는 순간 지휘자가 환한 얼굴로 "줄리어드 졸업하셨습니까?" 라고 물어본 것이다. 그러면서 자기도 줄리어드 나왔고 몇년도 피아노 졸업생이라고 말했다. 선생님 또한 환한 얼굴로 나는 몇년도 졸업생이다 라고 밝힌 후 상황은 종결되었다. 지휘자가 본인이 선생님 보다 한참 후배라며 선배님의 견해를 따르겠다고 양보를 한 것이다.
그 때 알았다. 학연은 우리나라에만 있는 게 아니라는 것을.
그 날 서혜경 선생님은 피아노가 부서질 듯 라흐마니노프 2번을 연주해주시고 협연자임에도 앵콜까지 받아 연주를 해 주셨다.
* 이래서 사람이 정리하는 것이 참 중요한 것 같다. 분명 나는 이보다 더 많은 공연을 했고 더 많은 에피소드들이 있었지만 어떤 공연에서의 에피소드인지 연결이 안 되는 것들이 너무나도 많다.
이제 아티스트는 그래도 돼 챕터는 10편으로 마무리 해 볼까 한다. 하지만 나중에라도 저 연결되지 않는 에피소드들이 명확해진다면 번외편으로 다시 연결될 수도 있을 것이다.
그간 나와 함께해준 많은 아티스트분들에게 경의를 표하며 그분들이 언제까지라도 아티스트로 남아계셔서 늘 그래도 되는 분들로 남아주셨으면 좋겠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