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HERA Jan 17. 2020

첫 전시 기획 도전

처음 전시를 시작하게 되었을 때를 기억해본다.

2010년 10월 29일 목요일은 평생 잊을 수 없는 날이다.

내가 첫 전시 기획자로 정식 데뷔를 한 날이기 때문이다.

이 전 까지는 늘 콘서트나 뮤지컬 등의 공연 기획을 주로 해 왔었기 때문에 전시는 공연과 완전히 다른 장르로

내가 절대 시도할 수 없는 장르라고 생각했었다.


아 물론 전시 보는 건 참 좋아했었다.

공연은 품앗이로 일 도우면서, 또는 지인에게 부탁해서 거의 초대로 보던 내가(그때의 나 반성합니다.)

전시는 일 년에 세네 번 꼬박꼬박 내 돈 내고 보러 다녔기 때문이다.

그때 본 '르네 마그리뜨 전시'와 '러시아 거장전' 등은 왠지 압도되는 느낌 때문에 이걸 내가 할 거라고는 생각조차 해 보지 않았다. 

당시 전시 기획에 얼마나 내가 무지했던지 산업전(코엑스 킨텍스 등에서 하는 부스 전시)과 미술전, 갤러리 전시를 구분할 줄도 몰랐다.


당시 나는 이직을 준비 중이었고 기왕이면 내가 잘한다고 생각하는 내한공연 회사로 이직을 하고 싶었다.

큰 조직에서 행정을 보는 일보다는 컨텐츠를 "만드는 일"을 다시 하고 싶었더랬다.

그래서 한 회사와 면접을 진행하게 되었다. 내가 좋아했던 공연을 한 회사여서 꽤나 기쁜 마음으로 면접을 보았고 2차 면접 제의를 받았을 때 공연이 아닌 "전시"를 해 보겠냐는 얘기에 놀랍지만 겁났고 이렇게 다른 장르에 도전하기에 삼십 대 중반이 너무 늦은 게 아닐까 라는 생각도 들었고 괜찮을까 싶었지만 이상하게 신났다.

아니 전시 경험이라고는 1도 없는 나한테 왜 전시 팀장을 제안하는지..

그래도 못 할 일이라 생각이 들지 않은 건 역설적으로 삼십 대였기에 지금 아니면 못할 것 같단 생각에

덜컥 시작해버린 것 같다.


그때 겁 없이 전시로 덤빈 건 진짜 내 인생의 "신의 한 수"였다.

물론 내가 선택한다고 되는 건 아니지만 (그때 나를 전시로 끌어당겨주신 박대표 님 무한 감사드립니다.)


정말 많은 선배들이 하는 말이 있다.

"일 다 거기서 거기지."

이 말은 반은 맞고 반은 틀린 것 같다.

일단 공연에서 전시로 넘어온 내게 전시 업무는 절대 거기서 거기의 일이 아니었다.

하지만 흥행 사업이라는 프로세스 안에서 또 일의 맥락은 비슷했다.


공연을 하기 위해 기본 절차는

1. 누구의 어떤 공연을 하겠다(컨텐츠 선정)

2. 어디서 하겠다(베뉴 결정)

3. 이걸 하는데 얼마가 드니 얼마를 투자받자.

(예산안 작성, 수익 계산, 투자)

4. 얼마에 팔아서 얼마를 남기겠다(마케팅 홍보)

5. 공연 실행

6. 정산 수익 분배 공연 종료

이 정도인데 전시도 거의 비슷했다.

다만 공연과 전시의 다른 점이라면 여기서 내가 말하는 공연은 대부분 콘서트) 공연은 호흡이 짧아서 빨리 결단이 나기 때문에 공연 임박해서는 이 공연이 손해가 난다 하더라도 예산을 아끼거나 리스크를 줄일 방법이 별로 없다.

그러나 전시는 호흡이 비교적 길기 때문에 (보통 유료 블록버스터 전시의 경우 최소 두 달 이상은 한다.)

전시 중에도 리스크를 줄일 방법들이 있다.

이런 부분은 꽤나 매력적으로 느껴진 부분이었다.

그래서 '전시 해 볼만 하겠다'라고 겁 없이 생각한 듯도 하다. (철이 몹시 없었던 것 같다.)


나의 첫 전시는

"내셔널지오그래픽 사진전"이었다.

첫 전시부터 검증된 컨텐츠를 할 수 있다는 건 아주 큰 행운이었다.

하지만 그래서 정말 많은 사람들이 잡지로 인터넷으로 다 본 사진을 누가 돈 내고 보겠니 라는

우려 섞인 말을 많이 들었다. 

게다가 콘서트를 할 때와 다르게 기획자가 결정해야 할 일이 정말 많았다.

보통 콘서트 기획을 한다고 하면 가수 선정은 기획자가 할 수 있다 쳐도 그 가수가 부르는 노래를

기획자가 이래라저래라 하긴 솔직히 어렵다.

물론 협의할 수도 있지만 보통은 공연곡은 가수 본인이 결정하게 된다.

그런데 전시는 첫 작품을 뭘로 할 것인지 들어가는 입구의 벽 색깔은 뭘로 할 것인지세세하게 결정 하고 정해야 할 것이 그야말로 "수천 가지"였다.

(그래서 더 전시기획이 재밌고 신나기도 했지만..)


결과가 좋아서 좋은 전시의 추억으로 남았지만 만일 결과가 안 좋았더라면 지금 계속 전시 기획을 하고 있지 않을 수도 있었겠단 생각이 든다.


삼십 대 중반 새로운 장르에 도전하기 좀 늦은 게 아닐까 그런 생각을 접어두길 참 잘했다.

그렇다고 이 이후 내가 공연을 전혀 안 한 건 아니다.

폴 모리아 오케스트라 내한공연도 했고 웨스트라이프 마지막 내한공연도 했다.

그리고 만일 나에게 또 기회가 주어져 다른 장르에 도전할 상황이 생긴다면

나는 또 도전할 거다.

내 첫 전시 때 사람들이 좋아했던 전시 엔딩 멘트


#나도작가다공모전 #나는기획자입니다 



작가의 이전글 나는 컨텐츠 만드는 사람입니다.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