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 남루한 기분에 대하여

1월의 글, <상실>에 대하여 2

by 그늘의 끝






식당 앞 자동문 열림버튼을 눌렀다. 먼저 뛰어 들어가는 아이를 따라 가게로 들어가니 제법 사람들이 많다. 입구 바로 옆으로 주문용 키오스크가 있었으나 기차 시간이 촉박해 포장주문을 우선으로 해 줄 수 있는지 물으려 곧장 가게 가장 안 쪽 카운터로 향했다. 홀서빙 담당으로 보이는 둘이 이야기를 나누고 있었다. 조심스레 그들의 웃음을 가르며 말문을 뗐다. “포장주문 할 건데요…” 질문의 의도를 알고 있다는 듯 여자가 건조하게 웃으며 답했다. “저쪽에서 주문하시면 돼요.” 그녀의 손이 금방 지나쳐온 키오스크 기계를 가리켰다. “포장도…” 재차 확인하는 내 말이 끝나기도 전에 “네”라는, 모서리가 선명한 답이 돌아왔다. 두 홀서버의 어색한 웃음을 뒤로하고 다시 입구로 향했다. 그사이 홀 구경을 마친 아이가 뒤돌아 선 내게 다가와 “왜? 김밥은?”하고 물었다. “여기서 주문하는 거래.” 난 기계에 줄을 서며 눈이 동그래진 아이의 머리를 쓸어 올렸다.



기계는 두 대, 두 세 명씩 서 있던 대기줄은 금방 줄어들었다. 차례가 되어 익숙하게(여전히 참치와 다른 김밥 사이에서 고민하느라 주춤했으나) 메뉴를 고르고, 포장여부를 선택하고, 더 필요한 것을 묻는 화면에 무표정하게 ‘아니요’를 누른 뒤 결제를 했다. 주문이 끝나고 영수증을 받는 찰나, 다리에 달라붙어 있던 아이 손에 힘이 들어가는 게 느껴졌다. 돌아보니 50대 중반으로 보이는 아주머니 한 분이 내게서 어슷하게 서 있었다. 기다렸다는 듯 주름진 두 눈이 웃어 보였다. “어우, 여기도 이런 거네요. 내가 이런 걸 잘 못해서… 미안한데 비빔밥 하나만 시켜줄 수 있을까요?” 그녀가 움츠렸던 팔을 뻗어 카드를 내밀었다. 그 찌푸린 웃음 사이로 얼핏 남사스럽달까 하는 기분을 본 것 같았다. 흔쾌히 그러겠다 하고 카드를 받았다. 우리동네가 초행인 이에게 근처 단골빵집 가는 길을 알려주는 일처럼 내겐 쉬운 일이었고, 그만큼 별일도 아니었다. 주문을 위해 몇 가지를 묻고, 화면에 나오는 질문을 대신하며 기계를 만지는 내 옆에서, 엄마뻘의 그녀가 주뼛거리며 서 있었다. 그런 그에게 공손하게 영수증과 카드, 그리고 서먹한 웃음을 건네며 말했다. “52번이세요. 저기 화면에 번호 뜨면…” “알아요, 알아. 고마워요. 정말 고마워요.” 말이 끝나기도 전 호들갑스럽게 시작한 답례말은 금새 차분한 미소로 이어졌다. 불안한 목소리와 웃음에 머뭇거림이 사라진 그녀는 좀 다른 사람 같았다. 내 아이와 전광판을 번갈아 바라보는 그녀의 눈은 잔잔했다.



내 포장음식이 준비되었다고 전광판이 알려주어 그녀에게 간단히 인사를 하고 김밥 든 봉지를 들고 가게를 나왔다. 내 주문과 그녀의 주문이 끝나도록 얌전히 기다려준 아이에게 고맙다고 말하며 볼에 뽀뽀를 했다. 내게 웃어 보이는 아이의 손을 잡고 역사로 빠르게 걸었다. 네가 오늘보다 편해질 내일의 세상에서 언젠가 내가 느낄 기분을 상상했다. 나는 너에게 어떤 친절과 배려를 기대하게 될까. 그것은 얼마나 남루한 현실일까.



청량리역 대합실엔 오늘도 표를 놓친 노인들이 좌석 나길 기다리며 앉아있었다. 입구가 사방으로 뚫려있어 한겨울 찬바람이 밖과 다르지 않게 불었다. 예매한 티켓을 휴대폰으로 다시 확인했다. 무궁화호 1605편, 탑승은 8번 플랫폼이다. 먼 그들 표정을 제대로 볼 새 없이 우리는 기차를 향해 달려갔다.




keyword
매거진의 이전글관계에 대하여