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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지인 Jan 24. 2021

사람은 늘 같은 일을 되풀이하지.

영화 <이터널 선샤인>


결국 사람은 같은 일을 되풀이 한다는 이야기다.




평론과 관객 모두에게 호평받은 영화인 건 알고 있었지만 정작 내가 이 영화를 본 건 10주년 기념으로 우리나라에서 재개봉할 때였다. 지금도 그렇지만 아무리 훌륭한 영화라고 해도 기본적으로 코미디와 모험, 액션 장르를 좋아하는 탓에 이런 종류의 영화는 무료라고 해도 보지 않지만, 당시 헤어졌던 남자가 이 영화를 제일 좋아한다고 했던 게 기억나서 그냥, 마침 또 재개봉한다길래 보았다. 결론은 - 역시 듣던 대로 훌륭한 영화이고 그 남자가 왜 이 영화를 좋아한다고 했는지도 이해가 되고 그 이유도 조금은 알 것도 같았지만, 나에게는 한 번 보면 족한 작품이었다. 



괴로운 기억을 지워준다는 SF 컨셉이 좋았고, 그런 기술력이 있는 시대인데도 불구하고 사람들이 사는 환경이 지금 현재 우리와 다르지 않아서 좋았다. 역사는 반복된다는 이야기고, 사람은 변하지 않는다는 뜻이겠지. 순차적으로 가까운 기억을 먼저 지워주기 때문에 결국 상처를 주고 받던 기억들보다 그 사람과 설레이고 사랑과 애정의 절정이었던 시간들이 마지막에 남아 지워진다라는 점이 좋았다. 그래서 모든 인간관계가 그 끝이 어떻든간에 우리는 모두 소중한 시간을 보낸 것이었다고 말하는 영화의 위로가 마음에 들었다. 나도 위로를 받았다. 



그러나 결국 이 영화는 사람은 반복의 동물이라는 것을 강조하고 있다. 영화 마지막에 주인공 남녀가 다시 만나는 모습은 진정한 사랑을 보여주는 것이 아니라 사람은 계속해서 비슷한 사람을 만나는 것이라는 것을 뜻한다. 결국 사람은 반복의, 습관의 모든 것일뿐.



니체의 회귀사상과 괴테의 파우스트가 생각났다.



이미연과 박신양이 열연했던 영화 인디언썸머가 떠오르기도 했다. 그 여자는 결국 모든 혐의를 풀 수 있는 재판 결과를 기대할 수 있는데도 마지막에는 결국 지금까지 살면서 늘 함께했던 그 "익숙한 어둠" 속으로 스스로 돌아가 파멸한다. 습관. 그리고 무기력과도 관련 있다. 



얼마 전 어떤 정신과 의사가 쓴 글에서 사람은 자신의 과오를 고치고 싶다는 무의식때문에 같은 상황을 되풀이하는 경향이 있다는 걸 읽은 적이 있다. 그러니까 폭력적인 환경에서 자란 사람은 그렇지 않은 따뜻하고 건강한 친구, 연인이나 배우자를 만나기 보다는 오히려 자신에게 익숙한 폭력적 성향이 강한 사람들과 인간 관계를 맺게 되고, 계속 피해자가 된다고. 새디스트라는 말이 아니라 단지 자신의 상처를 타임머신 타고 다시 고치고 싶어하는 심리와 같은 거라고 한다. 하지만 아쉽게도 그런 심리로 인한 행동들은 자신이 가장 피하고 싶어하는 상황과 인간관계의 "reset"으로 이어지지 않고 그런 "어둠"의 되풀이 속에서 스스로 더 무기력해질 뿐이다....라고 한다. 



괜히 오르페우스한테 뒤를 돌아보지 말라고 하는 게 아니고, 센/치히로에게 터널을 다 지나가면 뒤를 돌아봐도 괜찮다고 하는 게 아니겠지. 



그러니까 진정으로 건강한 사람은 "그럼에도 불구하고" 다시는 그 "익숙한 어둠"의 전처를 밟지 않겠다는 생각과 의지로 자기자신과의 관계뿐만 아니라 타인과의 관계 역시 재정비하고 그 안에서 평화를 발견하고 유지하는 사람이라 생각한다. 



쉽지 않은 일이다.


불가능한 건 아니지만. 



추신:


그러니 애초에 그 "익숙한 어둠"이 없는 사람들은 얼마나 편한가. 그 어둠 속에서 나오려고 발버둥 치는데 사용하는 모든 에너지와 집중력을 다른 데 쓸 수 있으니.



#사람은같은일을반복하지 #이터널선샤인 #영화 #영화평 #사랑 #이별 #습관 #기억 #공드리 #반복 #무의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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