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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지인 Mar 19. 2023

2. 과거

과거가 나를 덮칠 때. 뛰고 싶지 않다.

사실 오늘 쉐이크아웃런을 가지 않으려고 했다. 동마를 뛸 생각이 없어졌기 때문이다. 아는 언니가 부탁한 게 있어서 나가겠다고는 했지만 사실은 나가지 않을 계획이었다. 동마를 나가지 않을건데 그 전야제를 왜 가나. 운전도 하기 싫고 지하철은 더더욱 타고 싶지 않았다. 그런데 8시간만에 확인한 크루 단톡방에서 내가 사는 곳을 기억하고 차량 픽업을 제안해 주신 분이 계셨다. 이거 뭐지, 가라는 뜻인가, 하고 나를 기억한 감사한 마음에 가겠다고 했다. 하지만 새벽 4시에 픽업이 어렵다는 카톡을 보고 그럼 그렇지, 좋아 잘됐다 안가, 싶었는데 다시 6시반경에 가능하다는 연락을 받았다. 그래서 갔다. 기다리는 사람들이 있어서.



동마를 뛸 마음이 사라졌다.



애초 이번 동마 풀코스 목표는 나 혼자 뛰었던 작년 풀코스 마라톤과 대비해 선수 출신 코치로부터 훈련을 받고 러닝을 좋아하는 사람들과 함께 풀코스를 완주하며 나의 몸과 마음 상태를 비교하는 것이었다. 하지만 나는 이미 내가 지난 번 풀코스 완주 시간 - 5시간 4분 35초보다 잘 뛸 것을 알고 있고, 완주가 목표였던 그때와는 달리 이제는 당연히 내가 풀코스 완주는 가능하다는 것을 알고 있다. 그렇다면 이미 목표는 달성된 것이나 다름없다. 굳이 힘들게 뛸 이유가 없다.



과거가 나를 덮쳤다.



아주 오랜만에 친구가 되고 싶은 사람이 있었다. 간혹 사람들이 어떻게 사람에 대한 스트레스가 그렇게 없을 수 있냐라는 질문을 할 때가 있는데, 그 이유는 내가 기본적으로 인간에 대한 디폴트값이 매우 낮기 때문이다. 이런 성격이 좋은 이유는 기본적으로 사람에 대한 기대치가 낮기 때문에 기분 나쁘거나 상처받을 일이 거의 없고 자연스럽게 고마운 일은 더 감사한 마음을 가지게 된다는 점이다. 여기서 유일한 단점 아닌 단점이라면 싫어하는 사람이 없는 대신 무관심해지는 사람은 많아지고 그래서 좋아하는 사람 수가 적어진다는 것이다. 따라서 나에게 있어 누군가와 친해지고 싶다, 라는 생각은 매우 드문 일이다.



그런데. 확실하게 선을 긋는 게 느껴졌다. 대화가 이상한 곳에서 이상하게 끝났다. 처음에는 이 사람이 오늘 기분 나쁜 일이 있나, 성격이 이런 건가, 아니면 커뮤니케이션 방식이 이런건가 생각했는데, 다른 사람들과 이야기하는 방식을 보니 그게 아니었다. 나와도 다른 사람들과 함께 있을 때는 대화를 즐겁게, 유려하게 했다. 유일한 차이점은 나와 단둘이 대화를 할 때였다. 뭔가 이해가 가지 않는다, 이상하다라고 느껴지는 순간이 지난 몇 달간 연속으로 발생하자 그제서야 알았다. 그 사람은 나에게 메세지를 보내고 있었던 것이다.



'이 이상 다가오지 마.'


 

순간. 잊고 있었던 시간들이, 감정들이, 기억들이 억울함과 함께 솟구쳤다. 아. 그래. 그렇다면야 뭐. '네. 알겠습니다. 조언 감사합니다.'로 예의 바르게 돌아섰다. 당신이 그렇다면야 뭐. 그럴 수 있지. 그럴 수 있고 말고. 내가 너랑 친구하고 싶다고 너도 나랑 친구하고 싶어해야 하나. 아. 누군가가 떠올랐다. 이 사람도. 저 사람도. 쟤도. 얘도. 이 사람들과, 그때 그 사람들. 응 그래. 그때 그랬었지. 그때 그런 말을 했었고 그런 일들이 있었지. 맞아 맞아. 그랬었지.



갑자기 눈물이 쏟아졌다.

걱걱.

억억.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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