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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지인 Apr 10. 2023

15. 사랑

사랑은 뭐지

사랑이 뭔지 모르겠다. 좋아하는 것과 다르다는 건 알겠다. 좋아하는 건 많다. 좋아하는 사람도, 일도, 취미도, 물건도 많다. 그런데 사랑은 모르겠다. 내가 이 사람을 사랑하는 건지, 이 일을 사랑하는 건지, 이 물건을 사랑하는 건지.



특히 사람 사이에서 사랑이라는 감정은 지금도 모르겠다. 남들보다 더 좋아하고 더 신경 쓰면 그럼 그걸 사랑이라고 하는 건가,라고 생각했던 적이 있는데 그건 아니었다. 한 번은 그 느낌이 너무 궁금해서 내가 원하는 그 어떤 말이라도 하겠다는 사람에게 그럼 사랑해,라고 말해봐-라고 해서 사랑해라는 말을 들었는데, 그 순간 내가 깨달은 건 우리는 사랑이 아니고 나는 이 사람을 사랑하지 않고 이 사람이 나를 사랑하지 않아도 상관없으니 어서 하루빨리 이 관계를 정리해야겠는데 어디서 시작해야 할지 모르겠다는 것뿐이었다. 하지만 그 사람은 그 말로 인해 내가 자신을 사랑한다는 확신을 갖게 되었다. '역겨운 우월감'으로 거만해지는 그 사람을 그렇게 느끼도록 그냥 두었다. 나보다 더 외로움이 깊었던 사람이니 그 정도 왜곡은 괜찮다고 생각했다. 그리고 분명 좋아하는 건 맞았으니까. 그 누구보다도 마음 쏟았던 것도 맞고. 그러나 역시, 이렇게 마음을 주고 마음을 받았는데도 사랑이 아니구나,라는 걸 느꼈을 때 내 안에 무언가가 부서진 것 같았다. 이러다가 죽을 때까지 사랑을 모르고 가는 거 아냐. 사랑도 못 하고, 사랑도 못 받고.



남녀 간의 사랑만을 말하는 게 아니다. 남녀관계 속에 인간의 모든 감정 - 희로애락애오욕이 다 들어가기 때문에 사랑을 연애 감정으로만 한정해서 묘사하기 편한 것뿐이지, 사실 내가 궁금한 사랑은 그 이상의 모든 것이다. 우정도 사랑의 일종인데 나는 그런 우정을 느껴본 적 없다. 동물을 좋아해서 강아지와 고양이와 함께 산 적이 있어 이게 사랑인가,라는 감정에 가장 가깝다고 생각했지만 이 역시 사랑이 아니었다. 가족이라든가, 취미 생활이라든가, 종교라든가. 누구는 자식이 생기면 달라진다고 하는데 글쎄, 과연 그럴까. 만약 그렇다면 이 세상에 등장하는 그 잔인하고 슬픈 뉴스들은 뭔가. 남은 건 자기 자신에 대한 사랑뿐인가. 흐음. 나는 나 자신을 사랑하나?



지금부터 10여 년 전, 보고 나면 가족에 대한 사랑뿐만 아니라 남녀 간의 사랑으로 공감과 감동으로 눈물이 터진다는 영화가 있었다. 나쁜 평이 단 한 줄도 없는 영화였다. 나 역시 평소 좋아하는 감독의 신작이라 떨리는 마음으로 그 영화를 보러 갔다. 그런데... 난생처음 아무것도 느끼지 못했다. 내가 느낀 건 황망함뿐이었다. 그 어떤 영화를 봐도 약간의 공감대 형성은 무조건 있다고, 가능하다고 생각한 나였는데 그날 그 작품에서 나는 아무것도 느끼지 못했다. 사람들이 어디서 감동하고 어디서 우는지는 알았다. 그래서 더 충격적이었다. 그때 깨달았다. 나는 사랑을 받아 본 적이 없다는 걸. 그래서 저기 나오는 모든 장면들이 어색하고 그 어떤 것에도 공감되지 않는다는 걸. 나중에는 화가 났다.



사랑이 뭘까에 내가 지금까지 가장 공감하는 정의는 "사랑은 경청이다". 내 이야기에 나를 바라보고, 나의 이야기를 듣고, 내 의견을, 감정을 말하는데 두려움이 생기지 않는 것. 받아들여진다는 것. 경청이 있으면 대화가 있고, 대화가 있으면 이해가 있고, 이해가 있으면 좋아하게 되고 그럼 갈등이 있어도 해소된다. 사랑이라는 건 어쩌면 그 과정에서 생기는 걸지도 모르겠다. ...나에게 손절이 쉬운 이유는 그래서인가.



혹자는 누군가를 많이 좋아하는 게 사랑이라고 할지도 모르겠다. 아니면 내가 사랑이라는 단어를 너무 신격화한다고 말할지도 모르겠다. 하지만 10년 전 그 영화에서 나는 사랑이라는 걸 느꼈다. 아 저런 걸 사랑이라고 하는구나. 그리고 그 뒤 5년 후 어떤 다큐멘터리를 보면서도 느꼈다. 아 사랑이라는 건 저런 거구나. 그런 사랑을 경험한 적이 없다는 걸 깨달았을 때 무척 괴로웠다. 이 모든 게 결국 내 탓인가 하는 생각이 들면서 내 외모와 성격과 학력과 집안과 친구와 커리어와 그 외 모든 것을 해부하고 또 해부했다. 그리고 그 끝에는 아 나는 쓸모없는 인간이구나만 있을 뿐이었다. 행복한 귀결은 없다. 그래서 더럽고 슬픈 일이다. 화나는 일이기도 하고.



사랑은 뭘까.



달리기를 할 때. 그때 사랑받고 사랑한다고 느낀다. 너무 마음에 드는 책을 읽거나, 눈물 나는 영화를 볼 때도. 산책을 할 때, 비가 내릴 때, 등산을 할 때. 자연에 둘러싸여 있을 때 아 이건 사랑이야, 라고 느낀다. 그런데 사람한테 느끼는 사랑은 뭐지. 모르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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