책&영화 <시간여행자의 아내>
책과 영화에는 크게 3가지 차이점이 있습니다.
1. 책과 영화의 시작점
2. 자유의지, 그리고 '일어날 일은 일어난다'라는 말.
3. 결말 - 책: 유서 그리고 2053년. 영화: 유서 없음. 그리고 포옹. 또 볼 수도 있음을 암시
책과 영화의 시작점이 매우 다릅니다.
이 차이가 중요한 이유는 작가와 감독이 각각 어떤 점을 더 부각시키려 했는지 알 수 있기 때문이죠.
먼저 책의 경우 앞서 언급했던 바와 같이 클레어가 20살 때, 헨리가 28살 때 만나는 장면으로 시작합니다. 이러한 설정은 작가가 다른 무엇보다도 헨리와 클레어의 만남을 작품에서 가장 중요시 여긴다는 것을 알 수 있습니다.
반면 영화의 시작은 헨리가 시간 여행을 처음하게 되는 순간 - 즉 어머니와 함께 차를 타다가 어머니가 교통사고로 돌아가시는 장면으로 시작해요.
이 장면을 작품의 시작점으로 두었다는 점은 감독이 헨리와 클레어의 사랑보다는 헨리의 시간여행 능력에 더 초점을 두었다는 점을 알 수 있습니다. 차 사고로 어머니를 잃은 헨리는 자신이 엉망진창이 된 차에서 조금 떨어진 곳에서 벌거벗은 채 벌벌 떨고 있는 자신을 보게 되죠. 그리고 어떤 아저씨가 자신에게 다가와 괜찮다며 옷을 입혀줍니다. 그리고 계속해서 이렇게 말합니다. 괜찮다고, 걱정하지 말라고, 이 사건은 네 탓이 아니고, 네가 아무리 이 사건이 일어나지 않게 하려고 여러가지 일을 해도 결국 무조건 일어나게 되어 있으니 마음 아파하지 말라고. 지금 너는 처음 시간여행이라는 걸 한 거라고. 앞으로 자주 경험할 거고, 내가 도와줄 거라고. 이 아저씨는 바로 밀의 자기 자신이었던 거죠. 하지만 어렸을 때 헨리는 이 남자가 자신처럼 시간 여행을 할 수 있는 수많은 사람들 중 하나라고 생각해 언젠가 이 사람들을 만날 생각에 기대를 하고 있었는데, 그 사람이, 자신을 도와주었던 사람이 알고보니 자기 자신이었다는 것을 알게 되었을 때 기쁘면서도 심한 허탈감을 느낍니다. 그리고 정말로 자신과 같은 능력을 지닌 사람은 자신 하나밖에 없다는 것을 알게 되죠.
영화에서는 등장하지 않지만 책에서는 시간여행에 따르는 의문점에 대한 대화가 많이 존재합니다. 특히 인간의 자유의지와 선택, 책임감에 대한 이야기가 자주 있어요. 특히 어떤 사건이 터졌을 때 그 사실을 왜 미리 알려주지 않냐는 질문에 나이 든 헨리는 이렇게 말합니다.
"너는 미래를 바꾸자고 얘기하지만, 나한테 이건 과거야. 내가 할 수 있는 건 아무것도 없어. 말하자면, 나는 노력했지만 결국은 그 일이 일어나게 도와주었을 뿐이라는 거지. (...) 엄마 사고 때도 마찬가지야. 언제나 다시, 언제나 똑같아. (...) (인간의 자유의지에 대해) 얼마 전 난 1992년에서 온 나 자신과 그 얘기를 나눈 적이 있어. 그가 흥미로운 얘기를 하더라. 인간의 자유 의지는 제때에, 현재에서만 발휘될 수 있는 거래. 과거로 갔을 땐 우리가 예전에 행동했던 대로 할 수밖에 없고, 우리가 그곳에 있었던 그대로 존재할 수밖에 없다는 거야."
"글쎄 생각해봐. 네가 미래로 가서 뭔가 행동을 취하고 현재로 되돌아온다고 치자. 그럼 네가 한 그 일은 네 과거의 일부가 되는거야. 그러니까 그것 역시 피할 수 없는 일이겠지. (...) 그리고 모든 일은 이미 일어난 일이고. (...) 하지만 (미래의) 그는 네가 자유 의지가 있는 것처럼, 네가 하는 일에 책임을 져야 하는 것처럼 행동해야 한다고 말했어."
"왜 그런다고 뭐가 달라져?"
"우선 그렇게 생각 안하면 매사가 재미없잖아. 우울하고."
"그 사람도 개인적으로 겪어 봐서 아는 거겠지?"
"응"
이렇게 자기 자신과의 대화 뿐만이 아니라 클레어와도 다양한 이야기를 나누어요. 그 중에 하나가 언젠가부터 헨리가 자주 말하는, "일어날 일은 일어난다"라는 말이죠.
이 말은 아마도 늘, 언제 갑자기 시간 여행을 떠날지 알 수 없는 불안한 상황을 대처하기 위해, 그리고 수백번 노력했지만 결국에는 막을 수 없었던 어머니의 죽음처럼, 불안하고 무력한 상황에서 스스로 심신 안정을 위해 만든 만트라같은 것이었다고 생각해요. 그래서 어떤 일에 불안해 하는 클레어를 보면, 미래의 나를 통해 지금 걱정하는 일이 일어나지 않는다는 것을 알게 되어 그런 확신을 주고 싶어 "일어날 일은 일어난다"라고 말하지만 그런 사실을 모른다고 하더라도, 늘 자신이 자신에게 말했던 것처럼, 사랑하는 클레이어에게도 조금이라고 그녀가 편안해졌으면 하는 마음에 그 말을 하는 거겠죠.
일단 헨리에게 시간여행이란 즐겁고 재미난 경험이 아니라 무작정 자신이 통제할 수는 불안한 상황입니다.
일단 스트레스가 있을 때 발생한다는 점이 그렇고 자신이 전혀 컨트롤 할 수 없다는 점, 그래서 언제 일어날지, 어느 곳에 어느 시간대에 떨어지게 될지도 알 수 없어서 그런 상황에 대처하기 위해 자물쇠를 따고 도둑질과 소매치기, 강도질, 구걸, 무단 가택 침입, 자동차 절도, 거짓말, 폭행 따위를 저절러야 하는 상황에 처하는 것 뿐이니까요.
지금 아무리 걱정해도 무서워 벌벌 떨어도.. 그래서 현재의 집중을 못하는 상황이 오면. 그럴 필요 없어. 결국 일어날 일은 일어나니까. 걱정할 필요 없어, 라고 말하는 최면의 말 같달까. 말에는 최면의 힘이 있으니까요.
마지막으로 결말에 대해서 이야기를 하겠습니다.
책과 영화는 결말이 달라요.
그리고 결말만 두고 본다면 전 영화가 더 마음에 들었습니다.
책에서 헨리는 알 수 없는 이유로 내장이 튀어나와 피를 흘리며 죽게 되는 자신을 보게 됩니다. 그리고 그 날을 기점으로 언제 죽을 지 모르니 유서를 써놔요. 유서에는 클레어에게 자신을 기다리지 말고 행복하게 살라는 말이 담겨있습니다. 물론 자신이 시간 여행을 하긴 하지만, 대부분 과거에 갔었고 미래에 가는 경우는 매우 드물었으니 내가 죽으면 내가 올거라고 기다리지 말고 그냥 웃으면서 하루하루를 살라고. 그리고 2053년 7월 24일 목요일, 헨리가 43살, 클레어 82살의 나이로 헨리가 죽고 나서는 처음으로, 그리고 이제는 마지막으로 서로 만나는 장면으로 책은 끝납니다.
하지만 영화는 그렇게 끝나지 않아요. 영화에서 헨리는 우려했던 대로 어느 날 눈 덮힌 숲속에 떨어집니다. 그런데 그 숲이 하필이며 사냥터였죠. 사슴을 겨냥하던 사람들이 총을 쏘았고, 이 총을 헨리가 맞고 사망합니다. 여기에서는 어떤 유서도 없어요. 그런데 영화의 결말이 좋았던 점은, 태어난 딸 엘바가 이 모든 것을 알고 있었고, 자주 찾아와 아빠인 헨리와 어린 자기 자신과 이야기를 나누며 슬픔을 공유하면서도 현재를 받아들이는 방식으로 시간여행을 하는 장면이 있다는 겁니다. 마지막에는 딸 엘바가 9살 때 클레어를 만났던 곳에서 만나게 되죠. 친구들과 야구를 하고 있던 엘바는 엄마를 불러달라고 부탁하고, 달려오는 클레어를 헨리는 있는 힘껏 끌어 안아요. 왜 오늘 이 날짜에 오는 것을 말하지 않았냐는 클레어의 질문에 헨리는 이렇게 말합니다. 당신이 나만 기다리며 살기를 원하지 않는다구요. 지긋이 눈빛을 바라보며 알았다는 클레어의 대답에 둘은 키스를 하고, 헨리는 또 늘 그랬듯 갑자기사라지죠. 클레어와 딸 엘바는 옷가지를 줍고 손을 잡으며 집으로 돌아갑니다. 지금도 엘바는 과거와 미래를 여행하며 죽은 아빠를 만나는 행복을 느끼며 살아가요. 그리고 이러한 장면은 분명, 사랑하는 사람은 죽고나서도 우리 곁에 영원히 있다라는 점을 감독이 더 강조하고 싶었던 부분이라고 생각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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