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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지인 Apr 26. 2023

과거의 나도 사랑하는 방법 (4) - 나 사랑하기

책&영화 <시간여행자의 아내>

과거의 나도 사랑하는 방법


이 작품에서 제가 가장 좋아하는 장면이 2개 있습니다.


하나는 바로 어른인 헨리가 어린이인 헨리를 만났을 때 살펴주는 장면들. 어머니의 차사고를 겪고 나서 극심한 스트레스로 첫 시간여행을 떠났을 때 벌벌 떨고 있는 어린 자신을 보며 괜찮다고, 모든 게 다 괜찮아질 것라며 안심시켜주던 모습. 그리고 벌거벗은 몸으로 매번 어디로 언제로 떨어질지 모르는 상황에 대처하기 위해 각종 생존 기술 - 소매치기 등등을 어른 헨리가 어린이 헨리에게 교육시키는 장면을 좋아해요. 


다른 하나는 클레어가 20살이 되어 28살인 헨리를 만나 첫 데이트를 하고, 자신의 모든 것을, 심지어 시간여행까지 아는 오늘 처음 만난 이 여자가 자신을 사랑한다고 말하는 것에 대해 혼란스러워하자 그에게 이렇게 말해요.  

"미안해요 혼란스럽죠. 당신이 나에게 당신에게 천천히 다가가달라고 말했는데. 그런데 난 당신을 오래 기다렸거든요. 그런데 지금의 당신은 아직 내가 아는 당신이 아니라서 어떻게 해야할지 모르겠어요." 왜냐하면 미래의 헨리가 클레어에게 이렇게 말했었거든요. 28살이 되어 처음 만나는 나를 조금만 기다려 달라고. 그때의 나는 나쁜 놈이고 멍청한 놈이었지만, 당신을 만나고 나서부터 당신이 아는 지금 이 남자가 되어갈테니까. 인내심을 가져줘, 라고요.


첫 번째 장면은 어린 나의 상처를 어른인 내가 보듬어주는 장면이라 좋았어요. 두 번째 장면은 남들에게는 안 좋게 보여지는 내 모습도, 심지어 나조차도 나의 단점이고 취약점이라고 생각하는 부분을 이해하고 인내하면서 그 고통을 나누면서도 동시에 나를 사랑하는 사람이 이 세상에 반드시 존재한다는 점을 보여주는 장면이라 좋았습니다. 


사람은 자신의 고통을 알아주고 이해해주는 사람이 인생에 단 한명만 있어도 자살하지 않는다고 해요. 그래서 저는 호아킨 피닉스가 연기하고 만화 캐릭터 중 최초로 세계 3대 영화제 중 하나인 베니스 영화제에서 <조커>가 상을 탔을 때 그럴만한 작품이라고 생각했는데 그 이유가 바로 현대 사회가 가지고 있는 인간의 고립과 외로움을 잘 묘사했다고 느꼈기 때문이에요. 저는 지금도 조커가 자신의 인생에서 자신의 하루가 오늘 어땠는지, 힘든 일은 없었는지를 물어보는 사람이, 우는 그럴 안아주는 사람이 단 한명이라도 있었다면 그렇게 되지 않았을거라고 확신하거든요. 영화 속에서 조커가 계속 되풀이하는 말들 중에 '내 말을 듣지 않아 당신들은 내 말을 전혀 듣고 있지 않다고'라는 말이 나와요. 그리고 조커가 죽인 사람들은 모두 그를 괴롭혔던 사람들이죠. 폭력을 살인으로 갚는 조커의 행동이 올바르다는 건 아니지만, 이 작품이 흥행과 평론 모두 뜨겁고 성공했던 이유는 분명 이런 우리의 모습이 반영되었기 때문이라고 생각해요. 


그런데 세상에는 조커처럼, 자신의 인생에서 자신의 고통을 이해하고 알아봐주고 보듬어줄 수 있는 사람이 단 한명도 없는 사람이 있대요. 그럼 이런 사람들은 어떻게 하냐. 조커처럼 폭주하느냐. 아니요. 이런 사람들은 자기 자신이 자기 자신의 구원자가 되어야 한다고 해요. 자신이 자신을 안아주고, 격려해주고, 일으켜세워야 한다고 해요. 그런데 이게 제일 어렵죠. 현재 나는 고통스럽고 무기력한데 그런 나를 내가 어떻게 안아 일으킬 수가 있겠어요. 그래서 저는 어른인 헨리가 어린이 헨리를 안아주고 이야기를 나누고 생존 기술을 - 자기 자신을 보호하고 강하게 만드는 방법을 알려주는 장면을 좋아해요. 


결국 제가 좋아하는 저 두 장면은 모두 내가 나의 과거를 사랑하는 방법으로 보여요. 먼저 내가 나를 사랑하는 것. 내가 나를 구원하는 것. 그리고 그런 내가 때때로 너무나도 힘이 들어 스스로를 지키게 되지 못할 때, 그런 나를 다 알고도 기어코 내 옆에서 나와 함께 하는 사람을 만나는 것. 영화에서도 책에서도, 헨리는 그 누구에게도 시간여행에 대한 이해를 받지 못해요. 처음부터 아무 거부감없이 받아들인 건 클레어가 유일하죠. 책에서 헨리의 아버지는 나중에 헨리가 시간여행을 할 수 있다는 것을 알았을 때 왜 말 안했냐고 하고, 왜 차사고에서 너의 어머니를 살리지 못했냐고 다그치죠. 영화에서 헨리의 아버지는 아들이 시간여행을 한다는 걸 알고는 있었지만, 결혼하고 싶은 여자가 있다는 말에 대체 누가 너같은 애랑 결혼을 하냐고 비꼬고, 여기서도 왜 시간여행을 할 줄 안다면서 차사고에서 아내를 구하지 못했냐고 묻죠. 헨리는 이렇게 말해요. 수백번 시도했다고. 하지만 소용 없었다고. 가족도, 가장 친한 친구도 결국 자신의 고통을 이해하지 못해요. 


<시간여행자의 아내>는 그런 면에서 우리에게 과거의 멍청하고 나쁜 놈이었던 나조차도 사랑하는 방법을 알려주는 작품이라 좋았습니다. 저는 SF 장르를 좋아하고 그 중 스페이스 오페라와 시간 여행관련 이야기들을 주로 읽어왔는데, 이번 작품은 단순한 연애, 사랑 이야기를 넘어서 우리가 어떻게 불안한 찰나의 시간 속에서 영원을 생각하며 사랑할 수 있는지 느낄 수 있게 해주어서 기뻤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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과거의 나도 사랑하는 방법 (3) - 책&영화 <시간여행자의 아내> - 책영화 차이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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