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매거진 1일1생각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지인 May 31. 2023

110. 갈무리

커피를 끊다.

지난 몇 년간 커피를 끊겠다면서 (그리고 실제로 한달 끊기는 했었어요) 줄이고 늘리고 줄이다가 그 부작용으로 두통과 과수면과 폭식이 오고 갔던 커피 끊기 프로젝트에 드디어 갈무리를 지어야겠다고 다짐했습니다. 신라의 누구럼 말 대가리를 자르거나 손가락 다 자르면서 나한테 다시는 말 걸지마!!라며 손절을 강요하는 아일랜드 아저씨처럼 결심을 증명할 수 없으니 여기 이렇게 글이라도 남기려고요. 커피를 끊었습니다. 뚝.


이유는?


그냥.


지난 몇 년간 계속 끊겠다고 했으면서 안 끊고 못 끊고 하는 제 자신이 처음엔 한심했는데 언젠가부터는 좀 우스워져서요. 진짜 그냥 좀 웃겨셔. 나 왜 커피 못 끊지? 마약 못 끊고 섹스 못 끊는 사람들이랑 뭐가 달라? 라는 생각이 들어서요. 저는 드립 커피만 마시지만 (그것도 아무것도 안 넣는 블랙으로) 남들이 보기에 에스프레소를 사발로 들이키는 것 같다,라는 소리를 많이 들었거든요. 게다가 이제는 정말 속도 아프고. 그래서 그만 하려고요. 기분 더러운 관계를 끝내고 싶어요.



아 물론 커피를 사랑하시는 분들에게 뭐라 할 생각은 전혀 없습니다.

커피 중독은 분명 마약이나 섹스 중독과는 다르잖아요.



그냥 음, 어느 날 나 왜 커피 마시지? 하고 진지하게 생각해봤는데 물론 커피 맛도 있겠지만 그것보다는 습관이자 '어른은 이래야 해'라는 강박에 더 가깝다는 걸 알게 되어서요.



실제로 저는 커피도 술도 대학 들어가서 마시기 시작한 정말 착한(!) 모범생이었는데, 그런 어른 말 잘 듣는 착한 모범생 삶의 반발심에 남들보다 과하게 커피와 술을 마셨던 것 같아서. 술이야 뭐, 제가 20대 때는 대학가나 일터가 술 강요 문화가 지금보다 매우 강했기 때문에 (술 안 먹겠다고 했다가 학교 호수(? 분수대;;)에 벌칙으로 빠짐...) 그런 것도 있었고. 그런데 그때 부작용인지 지금은 술을 마셔도 맥주 한 캔? 맥주 같은 경우는 그 이상 마시면 화장실 가요. 아니면 속을 부여잡고 사약 받는 심정으로 마셔야 해요ㅎㅎㅎ (차라리 위스키를 주십쇼)



커피도 같은 맥락이라고나 할까. 예전에는 사람들이 변비약 먹는다는 이야기를 이해 못했는데 어느 날 그 얘길 들으면서 제 자신이 커피를 변비약 용도로 쓰고 있다는 생각도 들더군요. 물론 지금은 운동을 꾸준히 하고 식단도 조절하니 그런 적은 없지만, 분명 예전에 운동을 전혀 안하던 저는 그때도 변비 이야기를 이해 못했거든요. 그게 아마 커피 덕분이었던 것 같아요. 아침에 일어나자 마자 커피 마셔서 그걸 내리 하루 10잔은 마셨으니.




대체 용품은... 보리차? 메밀차? 없어요 일단은.

그런데 확실히 오늘 하루종일 커피를 안 마시니 몸이 나른하고 졸리고, 피로하긴 해요. 그런데 예전에 한달간 커피 끊었을 때도 이랬으니 뭐, 당연한 수순이라고 생각해요. 다행히 최근에는 하루 1잔만 마셔서 그런지 두통은 없습니다.




그럼.


화이팅.






매거진의 이전글 109. 망중한
작품 선택
키워드 선택 0 / 3 0
댓글여부
afliean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