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지인 May 31. 2023

사전을 만드는 37년의 시간 ②

책 <배를 엮다>

<배를 엮다>는 한 출판사에서 <대도해('바다를 건너는 배'라는 뜻)>라 불리는 2천9백 여 페이지의 사전을 37년을 거쳐 만드는 여정을 담은 소설이다. 1편에 이어  조금 더 이야기 하고 싶어서 두 번째 글을 쓴다. 개인적으로 출판과 책 역사에 관심이 많아서 이번 소설에서 한 권의 사전이 만들어지는 과정이 무척 인상적이었다. 


https://brunch.co.kr/@herbs/565



소설에서는 "우리(일본)처럼 다른 나라와 달리 출판사가 직접 사전을 만드는 경우는 드문데 그 이유를 아느냐"며 사전을 만드는 궁극적인 의의에 대해 대화를 나누는 부분이 있는데, 깜짝 놀랐다. 그동안 단 한번도 생각하지 않은, 못한 부분이어서. 아아 오오 그래 그래. 사전을 국가에서 만든다와 출판사가 만든다는 건 분명 다르다. 



소설에서는 출판사 내부에서 조차 무시 받는 사전 편집부 소속이라는 현실에서도 사전을 만드는 프로젝트에 굉장히 큰 자부심을 느끼는데, 그 이유는 아무리 예산이 빠듯하고 시간이 오래 걸려도 출판사가 자체적으로 사전을 만드는 일은 매우 중요한데, 그 이유는 사전은 한 나라의 말과 생각 즉 철학과 사상을 기록하는 중요한 문서이기 때문에 만약 국가가 개입하거나 외부 예산에 기대게 되면 그 중립성과 창의성이 흐트려질 우려가 크기 때문이라고 한다. 공감했다. 



그러고보니 우리나라는 어떤가. 우리나라는 양쪽이 - 국가 산하 기관과 출판사가 각자 - 다 따로 모두 출판하는 것 같다. 우리 집에 있는 오래된 종이 사전들을 보면 모두 출판사 제작이다. 그리고 현재 인터넷에서 확인 가능한 사전들을 보면 대부분 국가 지원으로 정부 기관이나 정부 산하 연구소/단체, 대학 등에서 만들어지는 것 같고.(혹시 제가 잘못 알고 있는거라면 정정 부탁드립니다) 나는 이런 흐름이 국가 개입에 대한 염려나 경계보다는 단순히 IT 기술에 따른 시대적 변화일 뿐이라고 생각했는데, 책을 읽으면서 아아 그게 아닐 수도 있겠다는 생각이 들었다. 실제로 영국같은 나라에서는 왕립연구소에서 사전을 제작한다고 한다. 




실제로 소설에서 사전이 만들어지는 과정을 들여다보면 37년이라는 시간과 2천9백 여 페이지가 넘는 방대한 양은 차치하고라도 그 사전을 만드는 관계자들 - 그러니까 출판사 직원, 외부 고문 및 전문가들, 그들에게 받는 단어 리스트와 이와 관련된 논의, 편집, 피드백, 과거 시대상과 현 시대상 반영, 인쇄 종이 선정 등등 고려해야 할 사안들이 내가 상상했던 것 이상으로 많았다. 담을 내용이 방대하니 지속적으로 관찰하고 체계적으로 움직이지 않으면 쉽게 지리멸렬할 수 있는 과정이었다. 왜 같은 출판사 직원들 사이에서도 유독 사전 편집부 직원들이 무시받는지 이해 할 것 같았다. 하는 일이 티가 전혀 안난다.   



"사전은 바다를 건너는 배"이기 때문에 <대도해>라는 이름이 붙은 사전이 만들어지는 과정은 다음과 같다. 


            먼저 회사와 "끈기 있게 교섭"해서 "간신히 국어사전 <대도해> 편찬을 정식으로 허가"를 받는다. 

            5천여 명의 전문가를 선정한다.          

            5천여 명의 전문가에 보낼 집필 요령을 사전 편집부가 작성한다.           

            여기서 집필 요령이란 "한 가지 항목에 관해 '어떤 정보를, 어떤 문자로, 어떤 형식으로' 담아야 하는지 구체적인 예를 들어 제시한 것"이다.          

            집필요령에 준하여 편집부원이 '견본 원고'를 써본다. 실제로 원고를 써 보고 집필요령 지시에 맞지 않거나 누락된 관점이 없는지 확인한다. (물론 견본 원고를 만드는 것은 수록될 예정인 표제어 중 극히 일부에 지나지 않는다. 대개 그리 중요하지 않은 작은 항목이지만, 견본 역할을 해내기 위해서는 다양한 요소가 포함되어야 한다. 지명, 인명, 숫자가 들어갈 항목, 도판을 넣을 항목 등을 다양한 품사에서 고른다. 편집부 내에서 견본 원고를 작성하고 검토하여 사전의 방향성과 질을 더욱 다듬는다.)          

            견본 원고를 쓰는게 중요한 이유는 견본 원고를 쓰면 글씨 크기나 조판, 페이지 디자인을 대충 정할 수 있고, 전체 페이지, 수록할 수 있는 표제어 수며 가격도 대략 산출할 수 있기 때문이다.          

            이제 선정된 5천여 명의 전문가들에게 완성된 집필요령과 견본 원고를 표준 양식으로 돌리며 원고 의뢰를 한다.          

            사전에 한번 실린 말을 삭제하는 것은 새로운 말을 추가하는 것보다 더 신경이 쓰인다. 거의 사어에 속할 만큼 현재에는 사용 빈도가 낮은 말이라 해도 사전ㅇ르 찾는 사람이 절대로 없을 거라고 단정할 수는 없기 때문이다.          

            신중한 토론이 거듭되었다. 주로 마쓰모토 선생과 마지메가 채택과 삭제를 판단하는 담당이었다. 독자들이 보낸 지적과 요망 사항도 검토의 대상이 된다. 실제로 사전을 사용하는 사람들의 의견은 사전을 보다 좋게 만들기 위해 유효한 것이 많았다.          

            표제어를 추가하거나 삭제할 게 생기면 경우에 따라서는 주위의 항목 지수도 조정해야 한다. 사전은 한 페이지 속에 정연하게 여분의 공백 없이 문자가 들어가 있다. 최종적으로 문자가 보기 좋게 들어가도록 앞뒤 몇 페이지에 걸쳐 꼼꼼하게 손질할 필요가 있었다. 어떤 말을 찾아보니 '00를 봐라'하는 지시가 있는데 정작 '00'라는 표제어가 개정판에서는 삭제되어 어디를 찾아봐도 보이지 않는다, 하는 사태가 일어나면 큰일이다. 사전의 신용 문제여서 개정 작업으로 모순과 차질이 생기지 않았는지 면밀히 체크해야 한다. 이 작업에는 마쓰모토 선생과 마지메뿐만 아니라 겐부쇼보 내외의 교열자도 동원되었다. 방대한 교정지에 묻혀 주야장천 빨간 펜을 휘두르는 날들의 연속이다.           

             새로 보탠 표제어의 용례가 타당한지도 검토해야 한다. 국어학이나 국문학 등 주로 인문 계열을 전공하는 대학원생을 아르바이트생으로 20인 정도 채용했다. 용례로 인용된 문언이 원전에 충실한지, 표제어의 구체적인 사용례로서 적확한지 확인하기 위해서다.           

            견본 조판은 완성된 원고를 바탕으로 몇 페이지분만 시험 삼아 인쇄해 본 것이다. 완성된 원고는 아직 한참 적어서 인쇄할 수 있는 것도 몇 페이지뿐이다. 그렇지만 예정된 크기대로 인쇄소에서 찍어 보면 지면 이미지를 떠올리기 쉬워진다. 글씨 크기며 서체며 행간의 여백은 이것으로 좋은가. 도판 위치는 적당한가. 숫자와 기호는 알기 쉬운가. 읽기 쉽고 보기 쉬운 사전을 만들기 위해 견본 조판을 참고하여 기능성을 높이고, 외양도 보기 좋게 만든다.           

            보관해야 할 교정지가 가장 정리하기 힘들었다. 한 권의 사전을 만드는데 초교에서 5교까지 교정지가 다섯 번이나 편집부와 인소소 사이를 왔다 갔다 하는 것 같다. 교정지에 수정을 해서인쇄소로 돌려주고, 수정이 반영될 것을 인쇄소에서 보내 오면 또 확인하고,그런 작업을 5회 반복하는 것이다.          

            인쇄 종이. 두께는 50미크론. 무게도 1제곱미터당 45그램밖에. 게다가 이렇게 얇은데 뒷면이 거의 비치지 않습니다. (페이지 뒤에 글씨가 비치는 것) 색깔도 중요. 여기서 종이 인쇄 회사는 새로운 초지기 도입이 문제였나 고민. 종이를 뜨는 기계. 종이를 만들기 위해서는 원료나 약제의 미묘한 배합이 중요.          

            용례채집카드를 수시로 검토한다.           

            인쇄. 출간.          












매거진의 이전글 어? 브런치 영화 분야 추천 작가도 되었습니다.
작품 선택
키워드 선택 0 / 3 0
댓글여부
afliean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