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허브티 내음

작지만 큰 스승

by 허브티 Nov 30. 2024

매일 오후 3시가 되면 나는 몸집 작은 스승을 만난다.

오전 활동에 쏟은 에너지를 낮잠으로 재충전하고 일어난 어린이집 영아들의 배변을 돕고 오후 간식 지도를 하는 것으로 나의 근무 일과가 시작된다. 

간식을 다 먹고 유희실로 나가서 신나게 놀이한다. 미끄럼틀에 수없이 오르고 내리고, 대롱대롱 매달린다. 공을 굴리고 던지고, 블록을 쌓았다가 무너뜨리기를 반복한다. 자동차를 타고 이리저리 활달하게 누비고, 피아노를 치고 탬버린을 찰찰 거리고 리본 막대를 흔들며 리듬 감각과 흥을 표현한다. 

한편에서는, 삼삼오오 모여서 소꿉 놀잇감에 과일과 채소를 담고, 냉장고를 여닫으며 고기를 넣고 우유도 넣고, 오이를 꺼내고, 작은 수건으로 그릇을 닦는 역할놀이를 한다.     

영아는 정말이지 역동적이고 자유롭게 자신의 흥미에 따라 놀이 욕구를 왕성하게도 채운다.


나는 지나치게 들떠있고 흥분이 고조된 분위기를 환기하고 진정시키는 방편으로 “얘들아! 우리 책 보자.”하고 책 읽어주기를 애용한다. 그러면 영아들은 자신이 좋아하는 책을 골라 후다닥 내 앞으로 모여 앉는다. 책을 골라 온 순서대로 둥글게 둘러앉아 함께 본다. 물론 자기 책부터 읽어달라고 떼를 쓰기도 한다.   

 영아들은 과장되거나 귀엽고 색상이 화려한 그림책도 좋아하지만, 사실적인 사진과 그림으로 이루어진 ‘자연 관찰’ 책을 더 좋아하여 인기가 많다. 

고래, 조개 등 바다 생물책을 보다가, 내가 입을 크게 벌린 연어의 뾰족한 이빨에 손가락을 댔다가 얼른 떼며 “앗 따가워!”하고 아픈 척을 한 적이 있다. 그러자 바로 영아가 내 손을 가져다가 호~ 불어 주었다.  

“어머 고마워, 아픈 게 싹 났네” 하니 그때부터 영아들 사이에서는 물고기 그림책을 보다가 이빨만 나오면 너도나도 손을 댔다가 떼며 아야! 하고, 옆 친구는 호~ 해주는 의식 같은 것이 생겨났다.     

거미와 개미, 무당벌레 같은 곤충류 책도 좋아한다. 

곤충을 잡아먹는 파리지옥이랑 주머니처럼 생긴 네펜데스가 있는 책을 단골로 골라 온다. 

영아가 책을 보다 ‘파리지옥’에 붙은 파리에게 “어서 도망가야지!” 외치며 손으로 파리를 떼어 날려 보내주는 시늉을 하길래, 내가 “아이고 파리지옥 배고파!”하니 이번엔 영아가 반대로 하늘에서 곤충을 잡아다가 파리지옥에 갖다 대주는 시늉을 한다. 

어느 입장에서든 생명을 존중할 줄 아는, 이 얼마나 박애적인 스승인가!

식물 책들도 좋아하여 포자가 날리는 버섯 사진을 보면 버섯이 뽕~ 방귀를 뀌었다며 우습다고 깔깔 웃는다. 사과 씨, 감 씨, 복숭아씨 등 씨앗 책도 잘 본다.     


블록을 쌓아서 욕조를 만들어 목욕 놀이를 할 때였다. 바가지로 물을 푸는 시늉을 하며 아기 인형을 씻겨 주기도 하고, 자기 머리도 감는다고 바쁘다.

 “선생님! 욕조 안에 쌍둥이 코끼리가 있어요! 물을 먹고 있어요! 우리가 물을 다 쓰면 쌍둥이 코끼리가 목말라요!”. 

눈에 보이지도 않는 상상 속의 코끼리를 이렇게나 걱정을 해주는 영아 덕분에 또 한 번 배움을 얻는다. 

일일이 다 열거할 수 없이 영아의 풍부한 상상력과 기발한 발상, 순수한 마음씨와 진심 어린 표현, 사랑스러운 몸짓과 표정이 순간마다 감동을 안겨준다. 

영아는 내게 배움을 주는, 몸집은 작아도 크게 훌륭한 스승이 틀림없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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