04. i형인 내가 첫 요가 수업을 해낸 방법

첫 수업의 조력자는 모 요가원 원장님과 우황청심원이다.

by 허둥지둥

난 요가지도자과정을 이수하고 수업을 하지 못했고 안 했다. 지도자 과정 마지막 날에 선생님들이 강사로 활동할 생각이면 최대한 빨리 수업을 시작해야 한다고 말씀하셨지만 그러나 나는 자신이 없었다.

남 앞에 서서 수업을 하는 건 뭔가 특별한 게 있어야 한다고 생각했다. 몸을 엄청 잘 쓰거나, 티칭능력이 뛰어나거나 안타깝게도 난 둘 중 어느 하나도 해당되지 않는 편에 속했다.

그래서 강사 일은 차일피일 미루고 망설이고만 있었다. 이래서 잘하는 걸 하는 게 쉽다. (혹시나 이 글을 읽고 계신 여러분 지금 오래 하고 계신 게 있다면 그건 잘하는 일입니다. 못하면 그렇게 길게 못해요.)

그렇게 시간만 보내던 중 놀면 뭐 하냐 돈이나 벌러 가자 하고 면접을 보러 간 한 요가원에서 진로상담을 받게 되었다. 비싼 돈 주고 선 자격증은 따놓고서는 백수로 놀면서 아까운 시간만 버리고 있는 이 어리바리한 강사가 영 안타까우셨는지 오지랖 넓으신 원장님이 카운터 면접은 보지 않으시고 진심으로 내 강사 커리어 상담을 해주셨다.


강사님,
지금 카운터 일을 할 때가 아니에요.
수업을 해야 해요

그 말이 이상하게 내 심금을 울렸고, 몇 개월 간 강사일은 내팽개치고 미적지근하게 질질 끌며 미루던 일상을 벗어날 수 있게 내 등을 떠미는 기폭제가 되었다. 그날 이후로 난 대강공고가 나오면 족족 지원을 하기 시작했다. 그러나 하나같이 답변은 거절, 씹힘의 연속이었다. 그러던 중 한 곳에서 문자가 왔다. 와 대박! 외쳤다. 기쁨과 놀라움의 외침. 왜냐면 첫째는 진짜 기뻐서였고 둘째는 혹시나 하고 보낸 대전피트니스에서 올린 GX대강문자에서 답변이 왔기 때문이었다. 그렇다. 그곳은 대전 성심당의 도시. 지금 내가 있는 시티는 서울시티. 연락 오는 곳은 무조건 한다는 일념아래 난 바로 오케이를 외쳤다.

그렇게 난 첫 수업을 대전에서 시작하게 되었다. 수업까지 한 이틀 정도 여유가 있어서 한 20~30번 정도 혼자서 대모연습을 했다. 드디어 수업 당일이 되었다. 5시에 서울역에서 출발하는 기차라 시간이 남아서 아침에도 한 3번 정도 연습을 더했다. 난 서울역에 도착해서 바로 약국으로 달려 달려갔다.

‘우황청심환을 사 먹기 위해서...’

굳이 이런 거까지 내가 사 마실 정돈가?라는 의문이 들다가도 안 사 먹으려니 나의 쫄보기질이 발동하여 사시나무 떨 듯 엥~모기목소리로 수업하면 어쩌지라는 걱정에 맘먹고 약국 앞에 섰다. 근데 막상 사 먹으려니 좀 민망해져서 약사님께 소심하게 "우황청심환 하나 주세요"라고 말했다. 약사님은 무심히 "마시는 걸로 드릴게요 9000원입니다. "라고 하셨다. ‘엇? 내가 예전에 먹은 건 분명 동그랗고 커다란 구슬 같은 '환'이었는데 이제 마시는 액상이라니’ 새삼 신기했다.

난 그렇게 우황청심원을 사들고 대전으로 향하는 5시 기차에 탑승했다. 나약해 빠진 인간 이거 한 병 샀다고 이렇게나 든든할 일인가 싶다가도 그래도 나 조금 귀여운 느낌, 훗 뭐 그거면 됐다.

달리는 기차에서도 대본을 보면서 복습했다. 서울에서 한 시간 만에 도착한 대전역 도착하니 저녁 6시. 금요일 출퇴근시간이라 길이 많이 막힐까 싶어 난 서둘러서 움직이기 시작했다. 그리고 가는 길 중간에 다이소도 잠깐 들렀다 전자시계가 없어서 타이머를 사려고 들렀는데. 하나같이 정말 달리기 기록용 무감성 초시계였다. 나는 한 3초 정도 고민하다가 그래 요가도 스포츠 맞긴 하지 스스로 합리화하며 3000원짜리 초시계도 구입했다.

대강비 삼만 원에 서울에서 대전으로 가는 교통비만 거의 이만 원 지하철비 삼천 원 초시계 산다고 삼천 원 쓰고 시간이 애매하게 남아서 카페 가서 마신 커피값 사천 원 허헛 대강비보다 교통비나 기타 비용으로 더 지출이 많은 초보강사의 삶. 결코 녹록하지 않다. 이것이 현실이다!


이윽고 수업시간 30분 정도 전쯤, 드디어 난 우황청심원을 마셨다.

맛을 좀 표현해 보자면 들판에서 이런저런 잡초를 다 뜯어와서 믹서기에 넣고 갈아서 만든 맛이랄까. 엄마가 어릴 때 몸에 좋다고 갈아서 준 녹황색 채소 케일즙보다도 맛이 없었다. (이거 정말 심한 욕인데....) 난 꿀꺽꿀꺽 물을 냅다 마셔버리고 싶었는데 헹여나 약이 희석될까 봐 물도 바로 마시질 않았다. 진심 약빨을 바랬던 나. 그렇게 심신을 약으로 안정시키고 난 첫 수업에 들어갔다.

고백하자면 다행히 수업은 잘 끝났다 도중에 한번 동작을 까먹었지만 친절하신 회원분 덕분에 스무스하게 넘어갔다.

신기하리만큼 첫 수업이라고 해서 나에게 엄청난 임팩트는 없었다. 마치고는 그냥 '카운트 잘 세었나? 쿨다운에서 좀 여유가 있었으려나? 동작 설명이 빠르진 않았나?' 등등의 여러 의문점이 머릿속에 둥둥 떠다녔을 뿐.

무엇보다 '끝마쳤다'라는 사실이 나에게 더 크게 다가왔다.


‘ 어떻게 하지?’에서 ‘마침내 해냈다.‘ 로

수업을 하기 전에는 마냥 물음표였던 것이
수업을 한번 하니 마침표가 되었다.


그리고 뒤늦게 깨달은 바는 '첫발을 디뎠다'라는 사실.

그런 여러 복잡한 마음을 추스르곤 난 다시 서울로 향하는 기차에 몸을 실었다.


돌아오는 차 안에서 그동안 막연하게 희뿌옅던 강사의 삶이 약간은 선명해진 느낌이 들었다.


동시에 '그럼 이제 언제 또 수업하지. 다시 호호요가 들어가서 대강공고 찾아봐야겠다.' 그런 생각을 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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