치팅데이의 반대말은 퍼펙트데이이다.
치팅데이의 반대말은 퍼펙트데이이다. 불만족스러움에 대한 보상심리를 찾는 날이 아니라, 하루하루의 평범하지만 충분히 스스로 만족스러운 날을 보내는 것을 말한다.
치팅데이라는 말은 다이어트 도중 약간 느슨하게 식단을 풀어주는 날을 말한다. 그런데 이 단어를 잘 들여다보면 지금 우리가 살아가는 사회의 단면을 그대로 보여주는 것 같다는 생각이 든다. 지나치게 소비가 강조되는 사회. 소비재는 넘쳐나고 우리는 그 속도를 따라가기 벅찰 정도이다. 계속해서 빠르게 새로운 것이 생산되고, 그것을 해야만 한다고, 할 수밖에 없도록 만드는 많은 매체들과 상황들. 결국 그 안에서 따라가지 못하는 이들은 소비의 허기를 느끼고, 시류에 따르는 이들은 채워지지 않는 결핍 때문에 계속 소비의 갈증을 느낀다.
극단적인 다이어트는 결국 극심한 치팅데이를 부르는 것처럼. 과도한 절제는 폭력적 탐닉으로 이어지기 쉽다. 이런 행위들은 반복되며 습관이 되고, 영원히 채워지지 않는 허기는 어느 순간 펑하고 터져버리고 만다. 그때 우리는 텅 비어버린 속을 어떻게든 도파민으로 충족시키려 한다. 무엇보다 쉽고 빠르게 충족되기 때문이다. 결국 스스로에게 굴레가 되어 끊임없이 극단적인 방식들을 취하는 것으로 이어지게 된다.
영화 퍼펙트데이즈를 보면 이러한 모습과 정확히 대척점에 서있다. 흔히 말하는 ‘졸린 영화’라고 불릴 만큼, 이 작품에는 사랑싸움이나 불륜을 저지르거나 치고받고 싸우는 장면은 전혀 등장하지 않는다. 그저 도쿄 곳곳의 공공화장실을 돌면서 정갈하게 묵묵히 청소를 하는 중년남성의 하루하루를 보여줄 뿐이다. 이 영화에서 가장 자극적인 장면을 꼽자면, 함께 일하는 동료가 주인공의 오래된 카세트테이프를 레코드숍에 가져가 가격을 물어보고 생각보다 비싼 값에 놀라는 순간과 그가 돈을 빌려달라고 하는 부분 정도랄까. 흔히 말하는 빈티지 재테크가 될 수 있지만 주인공은 카세트테이프를 팔거나 하지 않는다. 여전히 이동하는 자신의 차 안에서 그 노래를 들을 뿐이다.
탐하지 않고, 과하지도 않고, 살아가는 주인공 히라야마
지금의 자신의 삶에 만족하는 사람이었다. 그렇다고 특별한 성취를 이루지도 않았다. 그저 평범하고 고루한 일상을 성실히 살아간다. 그 모습이 오히려 나에게 깊은 인상을 주었다. 영화를 보고 나서 이런 생각이 들었다.
“어쩌면 나는 내 삶에 너무 많은 것을 요구하고 있지는 않은가?”
“스스로에게 필요 이상으로 ‘치팅데이’를 강요하며 살고 있지는 않은가?라고 말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