부모의 시선

내 마음 먼저 살피기

by 히나

오랜만에 아이와 단 둘이 박물관에 갔다.

아이는 성격이 급하고 호기심이 많다.


일단 쭉 둘러보면서 관심 가는 것들을 모두 둘러본다.

그러고 나서 다시 반복을 시작한다.


아이는 경주마처럼 흥미가 있는 것에 직진을 한다.

그런데 문제는 앞만 보고 달려서 주변을 살피지 않는다.


옆에 사람이 있건, 먼저 온 아이가 체험을 하고 있건,

무작정 들이민다.


아이가 5살 이전에는 아직 규칙이나 배려 같은 것을 모른다고 생각해서,

그때마다 아이를 저지시키고 줄을 서라고 이야기하거나, 내가 통제를 시킬 수 있었다.

그러나 마음속에서 화가 나지는 않았다.


그런데 아이가 7살이 되었는데도 아직도 그런 행동을 보이니 화가 올라오는 나를 느꼈다.

아니 7살이나 됐는데, 아직도 저런 행동을 한다고?


내가 상상하는 내 아이는 배려할 줄 알고, 줄을 서서 기다릴 줄 아는 진득한 아이,

누가 보아도 칭찬받을 만한 그런 아이인데,


내 이상과 현실은 너무 차이가 크다.

그러니 서서히 화가 난다.


혹시 저 아이가 사회성이 떨어지는 거 아니야?

왜? 몇 번을 가르쳤는데도, 아직도 저러는 거지?

아이를 쫓아다니면서 나의 감정이 걱정에서 분노로 바뀌는 것이 느껴진다.


어차피 아이는 이미 흥밋거리들에 마음이 뺏겨 내 이야기가 들리지 않는다.

나는 계속 쫓아다니면서 아이에게 잔소리를 한다.

그리고 계속해서 화가 차오른다.


집에 돌아오면서 가만히 내 마음을 들여다본다.

요즘 부모들 너무 자기 아이만 귀하다고 자기 아이를 우선으로 한다는데,

나는 아이에게 규칙을 강조하고 아이가 지키지 않는다고 아이에게 화를 낸다.

화가 일어나는 내 마음이 옳은 걸까?


아이는 지금 배워나가는 과정인데, 내가 그 과정을 지켜보지 못하고 아이가 이미 모든 것이 완성된 아이이길 바라는 걸까? 남들에게 자랑할 만한 아들이길 바라고 있는 것은 아닐까?


부모로서 아이가 사회의 규칙을 배워서 사람들과 조화를 이루며 살 수 있도록 훈육해야 하는데,

이때 화를 내지 않고, 아이가 될 때까지 천 번이고, 만 번이고 반복해서 이야기해 주어야 한다는데,

부모로서 기다림의 시간을 충분히 즐겨야 하는데, 조급하게 바라보고 있다.


아이의 기질을 발견하고, 그 아이의 기질에 맞추어 아이가 잘 따라올 수 있도록 도와주어야 하는데,

나는 그저 '나를 따르라'는 돌격대장의 모습으로 아이를 다그치고만 있었다.


웨인 다이어의 '우리는 모두 죽는다는 것을 기억하라'에서 읽은 '부모는 아이가 편히 쉴 수 있는 시간과 공간이 되어주라'는 한 문장을 다시 떠올려 본다.


과연 내가 내 아이에게 시간과 공간이 되어줄 수 있을까?....


규칙은 가르치는 것이 맞다. 하지만 아이가 그 규칙을 익힐 수 있게 도와주어야 하고, 기다려주어야 한다.

그저 몇 번 잔소리를 했는데 아이가 못 알아듣는다고, 화를 내는 일은 하지 말자고 다짐해 본다.


왜? 화를 낸다고 달라질 것이 없기 때문이다. 그저 아이와 나 사이의 거리만 더 멀어질 뿐이다.

아이가 사춘기가 오기 전에 부지런히 마음공부를 해서 아이와 나 사이의 거리가 멀어지지 않게 지금부터 큰 그림을 그려야 한다.


아이의 행동에 화가 날 때마다, 아이를 문제의 시선으로 바라보기보다

우선 내 마음을 먼저 살펴보기로 한다.


모든 괴로움과 얽매임을 잘 살펴보면 다 내 마음이 일으킨다.
[정토회 수행문 中]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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