다자이 오사무의 <인간실격> 이야기
너무나도 유명해 이제는 제목만 들어도 모두가 아는 다자이 오사무의 <인간실격>
인간실격 책을 감상한 독자는 두 가지로 분류된다. 첫 번째, 주인공 요조에게 연민을 느끼고 이해하며, 안타까워하는 독자. 인간실격 책이 주인공 1인칭 시점으로 진행되다 보니 독자는 자연스럽게 요조에게 동화된다. 그 과정 가운데 감정적으로 이입하고 연민을 느끼는 것이다.
두 번째, 그냥 요조 개 때리고 싶어 하는 독자
필자는 이 경우에 해당하는데, 끊임없는 자기 합리화와 무력감에 분노가 끓어오른다. 요조의 모든 인간실격의 과정은 본인의 선택을 통해 이루어졌다. 외압은 없었다. 인간실격은 “부끄럼 많은 생애를 보냈습니다”라는 말로 시작한다. 소설 첫 장을 펴서 이 문장을 읽을 때와 마지막 장을 읽고 다시 돌아와서 첫 문장을 읽을 때의 마음이 다르다. ‘알긴 아나 보네’하며 말이다. 무력한 인간에 대한 거부감이 강하기에, 어쩌면 치열하게 살아가는 21세기 대한민국의 청년이기에 그럴지도 모른다.
물론 독자로 하여금 이러한 풍성한 감정을 느끼게 했다는 것은 작가에게 기쁜 일일 것이다. 다자이 오사무의 피를 끓게 하는 능력은 다른 방식의 위로를 전해준다. 요조를 반면교사 삼아 더 나은 삶을 살라고.
헤르만 헤세의 <데미안>에는 이런 구절이 있다.
"우리가 어떤 사람을 미워하는 경우는 대개 그의 형상 속에서 우리 자신의 내부에 있는 무언가를 보고 미워하는 것이지. 우리 자신의 내부에 없는 것은 우리를 흥분시키지 못하니까."
싱클레어의 또 다른 스승이 되는 피스토리우스의 조언이다. 이처럼 두 번째에 해당하는 독자들이 <인간실격> 책에 커다란 불편함을 느끼는 이유는 어쩌면 요조의 불안하고 불완전한 모습에서 나를 보았기 때문이었을 것이라는 결론이 선다.
많은 사람들이 이 책을 읽으며 불편함을 느낀다. 누구는 무기력하고 부당함에 "인간으로서" 당연하게 반응해야 하는 것을 하지 못하는 요조의 모습에 정의감이 발현되었을 수도 있다. 누구나 삶의 순간순간 겪게 되는, 요조와 같아지는 "나의" 순간들에 불편함을 느끼게 된다.
책의 내용과는 별개로 다자이 오사무의 글은 너무 울어서 기진맥진한 사람의 이야기를 듣는 듯한 느낌이 든다. 전쟁 이후 일본의 지식인들이 느꼈던 무력감이 이 책에도 고스란히 묻어난다. 담담한 듯 풀어내는 문체와 그의 자전적인 내용의 결합이 <인간실격>을 만들어 냈다고 생각한다.
인간실격된 모든 인간에게-
이 책을 조심스럽게 추천해 본다.
Editor. 주인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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