천재 외과의사인 내가 회귀했더니 동네 이발사인 건에 대하여?!
몇 달 뒤면 차기작이 나올 의학 드라마 슬기로운 의사생활에 나온 것처럼 응급상황에서 전문적인 술기로 환자의 목숨을 구하고, 억대의 연봉을 받으며, 동시에 낭만적인 병원 라이프도 놓치지 않는 외과 의사의 모습을 보고 학생들은 가슴을 설레곤 하지 않던가. 하지만 이익준이나 채송화가 어느 날 트럭에 치여 중세 유럽 사회로 회귀하게 된다면, 그들은 어떤 대우를 받을까?
지금 와서는 상상하기 어렵지만, 과거 중세 시대에 외과 의사들은 천민 취급을 받았다. 중세까지만 해도 의 사들은 갈레노스(Galenus AD 129-199)가 돼지나 원숭이를 해부해 얻은 지식을 근거로 서술한 해부학을 절대 불변의 진리로 믿고 있었고, 이를 기반으로 한 갈레노스 의학은 교회의 지지를 받는 신성불가침의 영역에 속해 있어 감히 반기를 드는 사람조차 없었다. 사람의 신체를 해부하는 일은 불경한 것으로 여겨 금기시되었던 것은 덤이다. 따라서 중세인들은 갈레노스의 저서를 줄줄 읊으며 약을 처방하는 내과 의사만을 ‘진짜’ 의사로 여겼고, 인체를 해부하거나 절단하는 외과 의사는 천한 직업으로 생각했다. 심지어 칼에 익숙하다는 이유만으로 이발사가 외과의를 겸하기도 했으니 당대 그들이 받던 처우를 알 만하다.
이러한 외과의 암흑기를 벗어나게 한 인물은, 안드레아스 베살리우스(Vesalius 1514-1564)라는 해부학 교수다. 훗날 근대 해부학의 시조가 되는 이 인물은 사람의 시체를 직접 해부한 결과를 1543년 <인체의 구조에 관
하여 (De Humani Corporis Fabrica)>라는 책에서 발표했다.
교수씩이나 되는 사람이 당대에 천시되던 작업인 해부를 ‘직접’ 한다니 꽤나 임팩트가 있었으리라 싶다. 갈레노스의 의학이 원숭이를 포함한 동물들의 해부 지식을 기반으로 한 말도 안 되고 낡은 지식이라는 것 - 갈레노스는 베살리우스보다 무려 1400년 전 사람이다! - 을 폭로한 것도 그의 업적이라 고 할 것이다. 그의 업적으로 외과 의사들은 내과의만큼의 지위를 회복했고, 의학의 역사는 완전히 새로운 국면에 접어들었다.
베살리우스 이후로 의학은 ‘인간’을 해부한 결과를 기반으로 눈부시게 발전하였고, 현대 외과학의 뿌리가 되었다. 베살리우스가 없었다면 우리는 오늘날까지도 집 앞 미용실에서 맹장 수술을 받았을지 모를 일이다.
Editor. 소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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