어쩌다 직장인 독서일기 Vol.16
모두 같지만, 모두에게 다른
개인적으로 2020년대 한국 문학의 핵심 장르는 SF라고 생각한다. 시대의 흐름과 트렌드를 기반으로 근미래나 상상 속 미래 모습이 그려지는 이야기의 재미가 갈수록 풍성해지고 있다. 그 중 ‘천선란’ 작가가 그려내는 미래 이야기에 자주 주목하게 된다. 이번 <모우어> 역시 작가의 <천개의 파랑>, <나인>을 통해 미래 이야기로 독자의 감성을 한껏 채워주는 필력을 경험했기에 서점에서 기대감을 갖고 고르게 되었다. 앞서 언급한 두 작품이 장편 소설이었다면 <모우어>는 총 8개의 단편을 엮은 소설집이었다.
그 중 ‘뼈의 기록’의 이야기는 이 소설 속 가장 기억에 남는 이야기였다. 장의 로봇 ‘로비스’의 시선으로 느껴지는 죽음에 대한 이야기가 묵직하게 다가왔다. 소설 초입부터 뻔한 클리셰 요소가 등장해 결말에 대한 기대가 떨어지는 아쉬움이 있기도 했다. 하지만 장의 로봇이 더이상 SF 상상이 아닌 곧 다가올 미래로 실감이 되는 시점이기에 도입부터 흥미롭게 읽을 수 있었다. 무엇보다 천선란 작가의 특기인 감수성을 체득하는 사물(로봇)에 대한 전개가 설득력 있게 독자에게 전달되는 점이 좋았다.
“너는 어떻게 인간을 위로할 줄 알지?”
“죽음이 무엇인지 몰라서 그런 것 같습니다.”
“저는 모르기 때문에 두렵지 않고, 짐작할 수 없기 때문에 섣불리 말할 수 있습니다.”
사랑하는 이의 죽음이라는 엄청난 슬픔을 겪는 유가족에게 장의 로봇 '로비스'가 건네는 위로에 대한 작가의 표현은 이 소설의 압권이었다. 특히 ‘로비스’에게 장례 절차를 맡기는 이들의 상당수가 무연고 혹은 저소득층을 상정하는 작가의 설정을 보면서 미래의 냉정함을 환기하는 장치가 되기도 했다. 더불어 각자의 죽음과 관련된 사연으로 서술되는 이야기를 마주할 때마다 ‘삶과 죽음’이라는 철학 주제이자 엄존하는 현실 명제의 간극을 소설로 실감하게 되었다.
‘죽음이란 모두 같은 모습을 하고 있지만 모두에게 다르며, 볼 수 없는 존재의 삶을 끊임없이 보고 있는 뼈의 아름다움과 같은 것이로구나.’
‘뼈의 기록’의 결말에서 ‘로비스’가 느끼는 죽음에 대한 정의를 읽으며, 작가 천선란의 다음 작품을 기대하게 되었다. 인간의 ‘뼈’와 로봇의 ‘기능’을 결합해 ‘삶과 죽음’을 이렇게 수려한 표현으로 정의한다는 게 놀라웠다. ‘뼈의 기록’ 외에도 <모우어>에서 만난 이야기 각각이 보여주는 미래 혹은 SF 세계관을 통해 조금 더 넓은 시야를 갖는 독자들이 늘어나길 바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