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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수수한 Apr 14. 2023

[수수한그림일기]주 2회 마주보는 사이

2023.4.13

이 요가원을 다닌 지 얼추 1년이 다 되어가는 것 같다.

처음 갔을 때는 나 말고 세 명의 회원이 있었는데 요가원이 이사를 하면서 나만 남았고, 그 사이 한 명, 두 명의 회원이 들고 나기도 하였으나 요즈음은 다시 선생님과 나 이렇게 단둘이 수련을 하고 있다.


아마 다른 회원들과 함께 요가를 한 날들보다 선생님과 단 둘이 요가한 날이 더 많을 것 같다.


요가원이 이사를 할 때, 다른 회원들은 다 그만둔다는 말에 고민을 했었다. 요가는 하고 싶었으나 단둘이 요가를 하는 장면을 상상하니 부담스럽기도 하고 선생님에게 미안하기도 해서.


그러나 그 마음을 이겨낸 여름날이 있었기에 지금도 요가하는 사람이고 요가하는 날들을 가질 수 있었다.

처음의 마음은 어려웠지만 이제는 빈 공간에 우리 둘만 마주 보고 있는 순간이 익숙하다.


서로의 나이도 모르고, 선생님은 내가 무슨 일을 하는 사람인지도 모르고  묻지 않으시지만

어쩌면 다른 사람은 알아차리지 못하는 다른 차원의 나를 알고 있다는 생각이 들었다.


이를테면 어제처럼.

요가를 마치고 "나마스떼"와 함께 고개 숙여 인사하자마자

"오늘 몸이 가벼우셨죠?"라고 건네신 말처럼.

내 몸이 어떤지 한 시간을 오롯이 바라봐주는 사람.

내가 어느 근육을 쓰고 있고, 어디에 힘이 들어가 있으며, 어디를 더 내려야 하는지 나보다 더 잘 알고 있는 사람.

그제의 내 몸과 오늘의 내 몸이 다르다는 것을 알아차려주는 사람이 선생님이라는 생각이 들었다.


일상에서는 없는 전혀 새로운 차원의 관계이다.

나는 거의 비슷한 요가복만 바꿔 입고 가므로 일상의 나를 알 수는 없을 테지만

어쩌면 다른 사람은 전혀 모르는 나를 알고 있는 관계이다.


요가를 마치자 선생님이 수줍게 내미신 검은 봉지 안에는 떡볶이가 들려있었다.

"00 시장 아시나요? 여기 떡볶이가 맛있어서요."

나는 어른이지만 이런 예기치 못한 호의에는 또 마음이 어려워진다. 많이 고맙지만 이렇게 받아도 되나 쭈뼛쭈뼛 어색한 손으로 검은 봉지의 고리를 받아 쥐며 말한다.

"감동~제가 떡볶이 좋아하는 걸 어찌 아시고."


집에 돌아와 나의 두 꼬마들과 작은 포크를 꺼내 냠냠 먹었다. 과연 내가 딱 좋아하는 맛의 떡볶이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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