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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수수한 May 16. 2023

[수수한그림일기]매일을 그리게 한 공신은,

2023.5.15

같은 만년필이라도 어느 잉크를 넣느냐, 어느 종이에 쓰느냐 느낌이 달라진다.

이는 같은 잉크라도 어떤 만년필에 넣어 쓰느냐 느낌이 달라진다는 이야기이기도 하다.

이를 만년필의 세계에서 '궁합'이라고 한다.

여기에 하나의 궁합을 더하자면 쓰는 이와 만년필 사이의 그것이다.


나에게는 여러 자루의 만년필과 여러 개의 잉크가 있으므로 다양한 조합을 만들어 내는 것이 가능하다. 당연한 이야기로, 모든 경우의 수는 시도해보지 않았다. 다행인 사실이고, 흥미의 여지가 남아있다.


센츄리 만년필의 카트리지 용량이 워낙 커서 잉크를 소진하는데 꽤나 오래 걸렸다.

잉크가 더는 나오지 않고 뻑뻑해지는 순간 너무나 반가워졌다.

오랜만에 누들러 그레이 잉크를 꺼냈다.

이 둘의 조화가 어찌나 좋던지 선 하나하나를 즐거운 마음으로 그렸다.

원래도 연필빛이라 여기며 좋아하던 잉크였는데 사각이는 얇은 선을 내는 만년필로 쓰자니 그 느낌이 배가되었다.

그런데 그 연필빛이 너무나 촉촉해. 그 촉촉함이 서서히 말라가는 게 보여. 이 얇은 선에서.


'만년필은 그림 그리기에는 적당한 도구는 아니지요.' 하는 댓글을 한 커뮤니티에서 읽었다. 아. 그런가. 그건 몰랐네 싶었다.


이전에도 그리려고 시도했던 나날이 있었다. 그러나 이내 그만두고는 했다.

내 인생의 역사상, 어릴 때 다닌 미술학원을 제외하고 가장 오랫동안 그리고 있는 나날이 지금이다.

그 가장 큰 공이 만년필이라 생각한다.

만년필이 아니었으면 나는 오늘까지 그리지 못했을 거야.

만년필을 쓰고 싶어서 다시 그리기 시작했으니까.


나와 만년필 사이의 궁합.

꽤나 잘 맞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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