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 말이 오랫동안 걸리고 마음에 남았다. 생각해 보니 연두색이라고 말하는 어린이를 본 적이 없었다.
어린이들이 좋아하는 색을 꼽자면 분홍, 하늘, 파랑이 대부분이었으며 간혹 검정과 보라와 같은 색을 좋아한다고 말하는 이도 있었으나 살면서 연두를 좋아한다고 말하는 사람은 흔히 보지 못한 것 같다.
어른이 되어 많은 색상의 이름을 알게 되었고, 이제는 누가 좋아하는 색상을 물으면 올리브 그린이라고 말한다. 어린이들이 종종 나에게 좋아하는 색이 무엇이냐고 묻곤 하는데, "올리브 그린이라고.. 알까?"라고 물으면 예상치 못한 답변에 눈빛이 흔들리며 가지런히 놓은 색연필 중에 무엇이 올리브 그린일까 고민하는 모습을 보인다.
때때로 많은 색상의 색연필을 가진 어린이가 있어 이 색과 이 색 즈음이 내가 좋아하는 그 올리브색상에 가깝다고 말하면 어린이들은 그 어린이에게 몰려 색상을 확인하거나 빌리기 시작하고, 나는 그때부터 온통 국방색상의 옷을 입은 나의 모습으로 추정되는 그림을 선물 받거나 국방색 종이 팔찌를 손에 차고 있게 된다. 하여 좋아하는 색을 물으면 어린이들에게는 웬만하면 "모두 다"라고 얼버무리곤 한다.
올리브 그린 색을 좋아한다는 말의 의미가 모든 물건을 올리브그린 색상으로 선택한다는 이야기는 아니다. 나는 색을 사랑하는 사람이며 가지런히 놓인 갖가지 색상에는 갑자기 가슴이 두근거리는 사람이다. 그래서 물감과 색연필, 잉크와 뜨개실을 여러 색으로 소유하고 황홀해하는 사람이다.
다만, 올리브 그린 색을 보면, 연둣빛을 보면, 내가 신록이라고 칭하는 여린 초록빛을 보면 나의 마음은 다른 색을 대할 때와 다른 종류의 것이 된다.
뭐랄까.
너는 나의 색.이라고 마음속으로 되뇐다고나 할까.
지쳤던 지난 화요일, 이벤트에 당첨되어 금요일에 이 잉크를 받게 되었다. 조신하게 세척하고 기다렸던 오로라 만년필에 새 잉크를 넣고 첫 시필을 하는 순간.