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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수수한그림일기]읽었어도 읽었다하지 못하는 이유

2023.6.10

by 수수한

누구도 나무라지 않고, 알아채지 못하는데 내 마음속에 해야 할 일이라고 규정해 놓고는 하지 못해서 찝찝한 일이 몇 있다.

그중에 하나가 책리뷰.

테기가 좀 오래간다 싶게 어떤 책을 읽어도 그냥저냥 하며 다 읽지 못하고 반납하는 책이 수두룩하고 읽었다 해도 심드렁했던 시기가 눈치채지 못하게 어물쩍 사라지고, 다시 읽고 읽고 또 읽는 시즌이 도래했다.


한 책을 덮고 너무 재밌게 읽어서, 너무 좋게 읽어서 꼭 리뷰 남겨야 하는데. 데. 데. 하며 마음속에 데를 삼키고 다음 책을 편다.

그다음 책마저 마치고 나면 방금 덮은 책과 그전에 덮은 책에서 남긴 한층 두터워진 '데'의 무게를 안고 또 다음 책을 편다.

이렇게 몇 권의 책이 쌓이게 되면 어떤 것을 먼저 골라야 한다는 말인가. 이 지경이 되면 에라 모르겠다 얼른 다른 책을 펴고 도망친다.


무척이나 깊은 인상을 받았던 책은 그 문제가 더욱 심각해지는데, 생각을 잘 정리하고 싶은 욕심이 드는 만큼 쓰고자 하는 마음은 무거워지고 그래서 제대로 각 잡고 써보자 하면서 미루게 되고 그렇다고 해서 그 사이 안 읽고 있을 리가 없으니 다른 책을 읽는 동안 처음의 생생한 감동은 조금 사그라들고, 그러나 무척 좋게 읽었던 만큼 써야 한다는 마음의 부담은 여전하며 그렇게 미룬 책이 작년 책도 있는 것이다.


누가 협박하며 쓰라는 것도 아닌데, 이것에 이렇게 마음속으로 고군분투하며 찝찝해야 할 일이냐고 묻는다면

하나는 너무 잘 읽은 책의 경우에는 새로운 세계를 열어준 작가에 대한 답변이랄까. 내가 여기 있는 줄도 모르고 핑을 던져주었는데, 여기 이렇게 읽었고 내 세계에서는 이렇게 도착했다고 말해주는 퐁.

나는 내 마음이 좋아지면 그 마음을 꼭 전해주고 싶은 욕망이 종종 끓는 사람이라 당신의 글이 내 마음에 닿았다고 표현하고 싶다. 멋진 글을 읽었으니 나도 내 재주 안에서는 괜찮게.


또 하나는 아주 좋았던 책이던 그렇지 않았던 책이던 그 경중을 떠나서 읽고 나서 한 번 적고 나서야 나의 생각과 마음을 알아챌 수 있기 때문이다. 어느 지점에서 좋았는지, 나의 무엇을 건드렸는지, 나의 세계에도 작가가 말하는 그것이 있진 않는지, 아니면 앞으로 만들어 나갈 것인지, 단순히 '좋다.' '별로였다.'라는 감정을 넘어선 내 대답을 내 문장으로 옮기고 나서야 들을 수 있었다. 내가.


쓰면서 내 답을 들어보니 나니, 읽고서 쓰지 않은 책은 내 기준 읽었다 하기에 불완전한 완독의 느낌이다.

완독 했으나 완독 했다 할 수 없는 책이 내 머릿속에 가득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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