만년필은 잉크를 주입하고 오랫동안 쓰지 않으면 잉크가 마르고 졸아서 잘 나오지 않는다. 이것이 물론 만년필 건강에 좋을 리는 없으나 잉크도 증식된 만큼 여러 색을 동시에 쓰고 싶은 욕구가 있다 보니 여러 자루에 펜입을 해두곤 한다.
만년필이 여러 자루면 아무래도 편애하는 애들이 생긴다. 반면 호기심에 구입했던 녀석들 중에 확실히 손이 덜 가거나, 쓰면 쓸수록 실망스러운 녀석들도 있다. 이 만년필들에도 잉크를 넣어두나 자주 쓰지 않으니 잉크가 졸게 되고 잘 안 나오고 그러다 보니 또 실망하고 더욱 천덕꾸러기 신세가 되는 굴레에 놓인다.
그중 한 자루에 검은색 잉크를 주입해서 일터에 데리고 갔다. 서명을 할 때도, 작성할 일이 있을 때도 좀 즐거워졌다! 왜 이 생각을 진즉에 못했을까? 좋아하는 것은 일터에도 데려갈 수 있는 일인데.
내 집 안에 많은 만년필 중에 너는 을도 아닌 정이었을지 몰라도 만년필 없는 여기에서는 네가 1등이다! 게다가 책상 위에 두고 막 굴려도 부담이 없으니 애정이 샘솟는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