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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수수한 Jul 14. 2023

[수수한그림일기]3년된 유기초의 선물

2023.7.13

20년 7월이었다.

엄청나게 뜨거웠던 낮, 가장 더운 시간에 분리수거장에서 축 처진 화분 속 초록이들이 내 눈에 띄었다. 코로나가 닥치고 식집사의 첫발을 내딛던 시기라 보였던 것이지 그전이었으면 무심코 지났쳤을 것이다.

"아고고. 어째. 너무 덥지?"

나도 모르게 가여워 풀이 죽은 잎을 만져본다. 그 화분에는 난 종류로 보이는 식물, 스파트필름, 호야가 담겨있었다. 그 더위에 무거운 화분에서 흙과 장식 플라스틱, 스티로폼을 싹 거두어내고 정리한 뒤 집으로 데려왔다.

초라하고 죽은 것처럼 보였던 아이들이 화분에 옮겨 놓고 씻기고 보니 말갛게 예뻤다.


난을 좋아하는 아빠에게 난을 주었고, 스파트필름과 호야는 내가 키웠다. 아빠에게 보낸 난은 간지 얼마 되지 않아 꽃을 보여주었다. 그 꽃을 볼 때마다 마음이 일렁인다.


그리고 오늘 아침, 스파트필름의 흰 꽃대를 보았다. 우리 집에 온 지 3년째 되었는데 꽃을 보여주는구나.

물때를 놓쳐서 축 쳐져있다가도

데리고 온 그날처럼

"아고고. 너무 목말랐지. 미안미안." 하고 물을 주면 몇 시간 뒤 벌떡 일어나는 너그러운 녀석이다.


아직도 처음 만났던 장소와 그 낮의 눈부심과 뜨거움이 생생하게 기억난다. 기르는 초록이들과 각각의 이야기가 있는데 스파트필름과 호야는 생명을 거둔 대단한 기분을 3년 동안 선물해주고 있다.

거기에다가 꽃까지 보여주다니, 은혜 갚은 스파트필름 이네. 상토를 가져와 화분 안에 넣어 도톰하게 덮어주며, 고생했어. 열심히 꽃 피우렴 하고 부드러운 흙을 토닥인다.


보기 그렇게 귀하다는 호야의 꽃도 욕심내어 기다려본다.

호야의 꽃을 보면 무척 감격스러울 것 같다.

이미 꽃이 핀 식물을 들이는 것, 또는 사온 식물에서 꽃을 보는 것과 또 다른 결의 감격스러움.

그러고 보면 식물과의 연도 인연이다 싶다.

난 여러 호야가 섞여 있어도 내 호야를 알아볼 수 있어. 이런 기분이랄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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