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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하마글방 Aug 19. 2020

평행선의 끝을 상상하기

하마글방 8기 선랑의 글

 말로 다 할 수 있다면 그것은 아직 사랑이 아니다.

 허창옥의 수필 “말로 다 할 수 있다면”의 마지막 구절이다. 재밌는 점은 그의 글이 저 구절로 마무리되기 전까지 자신의 동반자에 대한 사랑을 표현하려 부단히 노력하고 있다는 점이다. 허창옥이 그랬듯, 많은 사람이 사랑을 말로 다 하고 싶어하는 것 같다. 사랑에 대한 나름의 정의를 내려보기도 하고, 남들이 내린 정의와 비교해보기도 한다. 사랑하는 사람에게 ‘사랑하는 사람’이라는 이름을 붙이고, 서로의 사랑이 표현되기를 원한다. 사람들은 그렇게 ‘사랑’을 끊임없이 상상하고 표현하려 한다.

 나 또한 나도 모르게 사랑을 정의한 경험이 있고, 이 글은 어느 한 사람에 대한 사랑을 표현해보려는 시도이기도 하다. 그런데 만약 사랑이 말로 다 할 수 없는 벅차고 경이로운 것이라면, 그래서 그것을 표현하는 데에 어려움을 겪어야만 필연적으로 ‘사랑’이라는 이름표를 붙일 수 있는 것이라면, 우리는 무엇을 위해 말로 다 할 수 없는 마음을 상상하고 표현하려 하는 걸까?      


 그날은 오랜만에 집 근처 동네를 떠나 친구와 둘이 놀기로 한 날이었다. 우리는 뮤지컬을 보기로 했고, 공연장 근처에 도착했을 때는 뮤지컬 시작 1시간 전이었다. 붕 뜬 시간에 공연장 근처에 있는 벤치에 앉아 수다나 떨기로 했다. 앉아서 이런저런 이야기를 하다가, 친구가 대뜸 사랑이 무엇인지 모르겠다고 물었다. 사랑이 무엇인지 고민해 본 적이 없지는 않았고, 그런 질문을 처음 받아보는 것도 아니었다. 다만 언제나 ‘사랑이 사랑이지, 뭐겠어’ 하고 답변을 회피하곤 했을 뿐. 그런데, 그때는 그냥 그러면 안 될 것 같았고, 그러기 싫었다.

 “사랑은, 음…. 잘 쌓은 탑? 뭐 그런 거 아닐까?”

 단 한 번도 생각해 본 적 없었던 답변이 갑자기 입에서 튀어나와 놀랐다. 그리고는 친구의 표정을 살폈다. 조용하게 반짝이는 눈으로 친구는 되물었다. 너는 지금 그 탑을 함께 쌓고 싶은 사람이 있느냐고. 순간 당황한 나는 얼버무리면서 있는 것 같다고 대답했다. 그 순간을 예상치 못했던 이유는, 그런 탑을 함께 쌓아가고 싶었던 사람이 너였기 때문이었다.     


 내 답변이 흥미로웠는지 너는 내 말을 빌려 질문을 이어나갔다.

 “그 사람이랑 탑을 함께 쌓아가고 싶다고 생각하게 된 이유가 뭐야?”

 그때 나는 다정하고 말이 잘 통해서 좋아하는 것 같다고 목적어를 비워둔 채 대답했고, 거기에는 거짓말이 약간 보태져 있었다. 너랑은 말이 잘 안 통했다. 사랑이 무엇인지 모르겠다는 질문처럼 엉뚱한 질문을 해오는 사람을 재밌어하기는 하지만, 너와의 대화는 이상하게 그다지 재미가 없었다. 

 그런데도 너와 함께 탑을 쌓아가고 싶다고 생각했던 것은 너의 진지함 때문이었다. 자기가 던진 엉뚱한 질문에도 누구보다 진지하게 고민하고, 그런 진지함이 관계를 맺어가는 과정에서도 보였다. 잘 놀다 헤어지고 나면 ‘00아, 너는 참 따뜻한 사람인 것 같아.’하면서 어울리지 않는 말투로 쉼표에 온점까지 다 찍은 카톡을 보내오는 것부터, 다리를 다쳤다는 나의 말에 걱정스러운 표정으로 ‘힘들지 않았으면 좋겠다.’라고 답해준 것까지. 아무튼 문득문득 튀어나오는 답지 않은 그 진지함이 좋았다.

 너를 생각하면 그냥 기분이 좋아졌던 적도 많았다. 그때 사랑이 잘 쌓은 탑이라고 대답했던 것은 우연이나 충동이 아니었던 것 같다. 정말로 너와 특별한 모양의 탑을 쌓아나가고 싶었고, 하루의 마무리가 그 탑을 상상하는 일이었을 때도 많았다. 탑은 무너지기도 쉬워서, 더 소중했다. 탑을 한 층 더 쌓고 싶어 애쓰던 한편, 혹여나 탑이 무너질까 마음을 졸였고, 완성된 탑과 무너져버린 탑의 잔해를 번갈아 상상하면서 그렇게 하루하루를 보내곤 했다.      


 다시, 말로 다 할 수 있다면 그것은 아직 사랑이 아니라는 말을 떠올려본다. 그리고 허창옥의 글을 읽고도, 너와 하나의 탑을 쌓아가고 싶었던 마음을 글로 다 적어내려 했던 이유를 생각해본다. 너와의 감정을 말로 다 한 뒤에 그 감정에 붙어 있는 사랑이라는 이름표를 떼고 싶었던 것일까, 아니면 무슨 다른 이유가 있는 것일까.

 초등학교 때였던가, 평행선의 정의를 처음 배웠을 때가 떠오른다. 나는 평행선의 끝을 상상해내려고 끙끙대면서 애를 쓰고 있었고, 선생님께서 이렇게 말씀하셨다. 

 “평행선은 끝이 없는 선이어서 현실에 실제로 존재한다고 할 수는 없어. 실제로 존재하지는 않지만, 우리는 여러 가지 수학 문제를 해결하기 위해 끝이 없는 선을 상상해보는 거야.”

 이 말을 듣고 평행선을 그릴 때 더 이상 평행선의 끝을 상상할 필요가 없다는 것을 깨달았다. 끝이 없는 선이 실제로 존재하지 않는다는 것을 알게 되었으니까. 말로 다 할 수 있다면 아직 사랑이 아니라는 말을 할 때의 마음은, 어쩌면 평행선의 끝을 상상하지 않아도 된다고 말씀하신 선생님의 마음과 같을지도 모른다. 말로 다 할 수 있다면 그것은 아직 사랑이 아니어서, 우리는 그것을 굳이 말로 다 할 수도 없고, 말로 다 할 필요도 없다.      


 그리고 허창옥의 말은 사랑은 잘 쌓은 탑이 아니라, 완성되지 않고 계속 지어나가야 하는 탑이라는 말처럼 들린다. 그 탑을 완성하고 싶어하는 사람들에게 ‘사실 그거 다 지으면 사랑이 아니야.’라는 응원의 메시지를 보내는 것 같다. 사랑을 상상하고 표현하는 과정에서 우리는 말로 다 하기 어려운 그 마음을 알고 싶어 하고, 알게 하려고 애쓴다. 이런 과정은 탑에 벽돌을 쌓아나가는 과정과도 같아서, 끝도 없이 탑을 쌓으려다 보면 도대체 언제 탑을 다 지을 수 있을지 감을 잡을 수 없어 지치는 순간이 찾아온다. 그래서 말로 다 할 수 있다면 그것은 아직 사랑이 아니라고 말한다. 그러면 우리는 사랑을 그릴 때 더 이상 완성된 탑을 상상하지 않아도 된다. 

 나는 너와의 그 탑이 대충 얼개를 갖추었을 때, 내가 설계한 모양대로 지어지고 있는 것이 아님을 깨달았다. 그래도, 그냥 지어지는 대로 두기로 했다. 내가 원하는 모양대로 탑을 지으려다 다 지었던 부분마저 무너질 것 같아서, 그냥 두기로 했다. 그렇게 지어지는 대로 탑을 쌓다보니 원래 내가 원했던 모양이 이제는 잘 생각나지도 않는다. 그렇지만 내 설계와는 다른 모습으로 지어지고 있는 탑이 10년이 지나고, 20년이 지났을 때 무슨 모양이 될지 궁금했고, 나는 어떤 마음으로 탑을 짓고 있는 것인지 궁금했다. 그때의 마음을 글로 다 적어내려 했던 이유는 바로 이거였다. 다만, 나는 이제 말로 다 할 수 있다면 아직 사랑이 아니라는 말의 뜻을 알게 되었다. 나는 이제 평행선을 그릴 때 평행선의 끝을 상상하지 않을 수 있다. 




작가 선랑

말랑말랑하고 명랑한 글을 쓰는 연습을 하고 있어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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