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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하마글방 Nov 24. 2020

#내가이제쓰지않는말들

하마글방 11기 하리보의 글

말의 속도는 무척이나 빠르다. 그것들은 내 안에 꼭꼭 눌러져 있다가 가끔씩 내가 붙잡을 수도 없는 사이에 흘러나오고는 한다. 나에게는 7살이 많은 한 명의 오빠가 있다. 서울에서 학교를 다니다 코로나 이후 비대면 수업이 진행되면서 본가가 있는 춘천에서 지내는 나와 달리, 그는 한 공기업에 합격해 대전에서 거주하다 1년전쯤 서울로 발령을 받아 나와는 떨어져 지내고 있다. 나와 7살 차이가 나고, 중학생 때부터 대학교까지 중국과 미국, 호주를 돌며 지낸 그와는 한 집에서 지내는 시간이 거의 없었다. 오빠는 오랜 해외 생활을 하면서도 병원에 가야 할 만큼 아픈 일이 거의 없이 건강했다. 반면에 나는 고등학생 시절부터 원인을 알 수 없는 구토와 속 메스꺼움, 두통 등으로 병원을 자주 방문했다. 명절을 맞아 오랜만에 마주한 오빠와 차를 마시는데, 어쩌다 나온 이야기인지 기억은 나지 않지만 간 수치가 높아져 의사로부터 주의를 들었다고 했다.


일전에 집에 왔을 때에는 치킨을 시켜 먹자는 내 말에 오빠가 치킨 알러지가 생겼다고 말한 적이 있다. 올 때마다 하나 둘 씩 아픈 곳이 생기는 그에게 무심코 “병원에는 갔어? 간에는 밀크 시슬이 좋다는데 챙겨 먹어?”라는 말을 건넸다. 그는 한달에 한번 정도 맥주 한 캔을 마시는 것 외에는 음주를 하지 않았고, 비흡연자였다. 그런데도 간 수치가 높아진 것이다. 사실 나는 오빠가 아프게 된 이유를 알고 있었다. 노동 환경이 그 원인이었다. 잦은 야근과 많은 업무량은 일상의 균형을 쉽게 무너뜨린다. 그 때문에 오빠의 이직 의사는 명확했지만 고용 불안정성이 큰 한국 사회에서 정년과 안정적인 급여가 보장되는 직장이 흔하지 않기 때문에 가족들과 친척들은 그에게 직장에 계속 다닐 것을 권유했다. 오빠는 여가 시간을 확보할 수 있는 공기업으로 이직을 준비 했다. 그러나 매일 늦은 시간에 퇴근하고 오면 피곤해서 주말에도 자기 소개서에 시간을 들이기가 힘들고 그로 인해 계속 이직에 실패하는 것 같다고 말했다.


노동자가 매일 출근하는 일터 때문에 아프다면 그것은 사회적 문제였다. 노동 환경이 개선되지 않는 한 밀크 시슬을 복용하고 간 수치 검사를 정기적으로 받는다고 해도 계속 아플 가능성이 농후하기 때문이다. 나는 대학교에 입학한 이후 이런 질병의 사회적 원인을 찾아내고, 노동자를 아프게 하는 사회 구조에서 문제의 원인을 찾고 싶어서 보건학 복수 전공을 시작했다. 그라니 나도 모르는 사이 개인이 병원에서 정기적으로 검진을 받고, 의사의 지시대로 약을 복용하고, 운동을 하고, 영양제를 먹으면서 건강을 챙겨야 한다고 그에게 말을 보태고 있었다. 구조의 문제를 개인의 탓으로 돌려 원인을 선명하게 바라보지 못하게 만드는 말들을 경계하면서도 나 역시 여전히 그런 말에서 벗어나지 못했다. 의사들은 간 건강을 위해 어떤 음식을 먹고, 무슨 약을 복용하고, 일주일에 몇 번 운동을 해야 하는지에 대해서 알려줄 수 있었다. 하지만 그건 근본적인 해결책이 아니다.


입시에 실패하는 것이 큰 인생의 실패로 여겨지는 한국 사회에서 그 압박감으로 계속 아팠던 나에게 의사들은 스트레스를 받지 말라는 말과 함께 처방전을 건네고는 했다. 명확한 원인을 찾기 위해 소화기내과, 신경외과, 안과, 정신건강의학과 등을 전전하던 나는 내가 속해 있는 사회와 환경이, 공동체가 안전하지 못하면 내가 아프게 된다는 사실을 누구보다 잘 알고 있었다. ‘건강 관리도 실력이야’ , ‘멘탈 관리 잘해’ 같이 개인의 건강 상태를 하나의 능력으로 여기는 건강 중심주의적 말들에 상처를 받았던 내가 오빠에게 같은 말을 하고 있었다. 그에게 그러니까 아픈 건 오빠 탓이 아니라고 말을 하고 싶었다. 그러나 나는 그러지 않았고 위로의 말도 건네지 않았다. 나는 아프다고 말하는 오빠와 주변 사람들에게 ‘병원에 가봤어?” “약 잘 챙겨 먹어”와 같은 말을 하지 않고 싶다. 그저 그들의 이야기를 듣고, 아픈 것은 당신의 탓이 아니라는 말을 건네고 싶다. 보건학과 의료인류학을 배우고 있는 중이지만 몸과 건강, 질병에 대한 내 언어는 여전히 서툴고, 부정확하고, 때때로 차별적이다. 나에게는 적확한 질병의 언어가 아직 없지만, 그래도 병원에 가보라는 말 대신, 그가 아프게 된 이유를 함께 고민하고 문제를 제기할 수 있을 때가 오면 그때는 다시 내가 이제 쓰지 않는 말들에 관해서 쓰고 싶다.


작가 하리보

건강의 사회적 책임을 찾는 일에 관심이 많습니다. 요가를 좋아하고 배우고 읽고 쓸 때 자주 즐겁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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